예상대로 이명박 후보가 제17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새로운 정부의 탄생은 크게 축하할 일이지만 감동과 기대보다는 걱정과 우려가 앞선다. 새 정부는 국민통합에 힘써야 하고 정치권은 민의를 수용해 이명박 정부가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번 대선은 ‘BBK 선거’라고 할 만큼 정책보다는 이 후보를 둘러싼 의혹을 축으로 정치 공세가 선거판을 휘어잡았다. 지난 15대와 16대 대선에서 경험했던 열정이나 감동은 실종되었고, 낮은 투표율에서 나타나듯이 정치에 대한 냉소감이 표출된 선거이기도 했다.
1년 이상에 걸친 이명박 후보의 독주는 지난 10년간의 진보정권에 대한 피로감, 특히 노무현식 정치에 대한 반감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이명박 후보의 승리에는 이 후보가 노무현 대통령과는 정반대의 정치 스타일을 가진데 대한 반사이익 측면이 크다.
반면 북풍의 소멸이나 지난 대선에서 두드러졌던 반미정서나 민족주의가 이번 선거에서는 별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지역주의가 약화되었다는 점은 한국 유권자의 성숙함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여당에서 야당으로의 두 번째 수평적 정권교체라는 점에서 절차적 민주주의는 한결 성숙되었으며, 이회창(우), 이명박(중도 우), 정동영(중도 좌), 문국현/권영길(좌)로 이루어지는 이념적 스펙트럼이 정립되었다는 점도 평가할 만하다.
이러한 정치구도는 내년 4월의 총선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번에 여야 모두 단일화를 이루지 못한 것은 내년 봄 총선이라는 정치일정 때문이다. 즉 대선에서 지더라도 완주해야만 총선에서 일정한 지분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의 종료는 곧바로 총선의 서막을 의미한다. 여야 모두 정치적 이합집산이 이루어질 것이며 곧 바로 총선 체제로 전환될 것이다. 정책은 여전히 실종될 것이고 정치의 계절이 내년 봄까지 이어질 것이다.
가장 중요한 관전 포인트는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 간의 관계설정이다. 박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총선까지는 같이 갈 것이다.
문제는 총선 이후이다. 특히 예상대로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과반수를 차지할 경우다. 박근혜 전 대표와 적절한 관계를 정립하여 국회에서 과반수를 차지하고 정치력을 발휘하면 비교적 안정적인 통치기반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역대 대통령이 그러했듯이 이명박 당을 만들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해 한나라당이 깨지고 여당이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경우 이명박 정부는 정치적 불안정과 함께 급속한 레임덕으로 빠져들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보수적 실용주의(conservative pragmatism)를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들이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 이유도 정치적 이념이나 도덕적 가치보다는 실용주의에 기초한 그의 통치능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는 단기간 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하는 부담을 갖고 있다. 그런데 경제 등 국내 문제나 북핵 등 외교안보 문제 등 풀어야 할 난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이명박 정부가 자리를 잡고 새로운 정책을 펴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소위 정권 초기의 ‘허니문 프리미엄’을 제대로 살리지 못할 수도 있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대한 본격적인 토론은 내년 총선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다.
많은 의혹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후보가 압도적 지지로 당선된 것은 그만큼 새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와 열망이 크다는 것을 반영한다. 여야는 정쟁에서 벗어나 이러한 민의를 겸허히 수용하고 새로운 정부의 정책이 실현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할 것이다.
신기욱
스탠포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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