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밀리 망원렌즈로 사진을 찍으면 부분은 확대 되지만 배경을 제대로 볼 수 없고 앞뒤가 붙어 거리를 짐작하기 힘들다. 14밀리 광각렌즈로 찍으면 옆으로 펼쳐지고 목표 대상물이 튀어 나오지만 이번에는 앞뒤가 너무 떨어져 사물간의 진짜 거리를 파악하기 힘들다.
눈으로 보는 것과 흡사하게 그림을 만들어 내는 렌즈가 카메라에서는 50밀리 렌즈다. 그래서 이 렌즈를 표준렌즈라고 부른다. 박력은 없지만 가장 실물과 가까운 사진을 만들어 낸다. 한국의 대통령 선거는 몇 밀리 렌즈를 갖고 들여다보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나타난다. 외국에서 온 나 같은 사람의 눈은 50밀리 렌즈일 수밖에 없다. 현장을 보는 것이 사실파악의 첩경이다.
지금의 광화문 촛불시위는 5년 전과 너무 다르다. 기자는 당시와 지금의 광화문 시위를 모두 따라 다녔다. 그때는 데모대의 구호가 ‘반미’였다. 당시 젊은 여성들이 아이들을 안고 나와 데모에 참가하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랐었다. 지금은 ‘검찰규탄’이다. 구호가 맥이 없고 성냥불로 젖은 나무에 불을 붙이려는 무리함이 보인다. 지나가는 행인들도 한번 힐끔 데모대를 쳐다 볼 뿐이다. BBK는 이제 한물갔다. 검찰규탄 구호가 국민들의 마음에 와 닿지를 않는다.
시대에는 흐름이 있다. 당시에는 월드컵 열기로 젊은이들의 주체의식이 반미로 불이 당겨졌으나 이번 선거에서는 ‘반미’구호가 자취를 감추었다. 민주주의? 북한과 잘 지내보자? 양심적인 지도자를 뽑자? 웃기네 하는 표정들이다.
돈을 벌자. 취직하자. 편안히 살자. 행복하게 살자. 이런 생각들이 신자유시대의 흐름을 메우고 있다. “Money Talks”가 사람들 생각의 주류다. 구청 청소미화원 채용시험이 100대 1이나 되고 대학출신들마저 몰려오는 시대다. 젊은이들을 만나보면 한국인의 가치관에 대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서울 사는 사람들은 실감나게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런 시대에 ‘이명박’이 등장한 것이다. ‘이명박’이 리더십이 있어서가 아니다. 시대가 ‘이명박’을 만들어 낸 것이다.
집집마다 차를 갖고 있고 저마다 핸드폰을 들고 다니는 시대다. 백화점 지하 식품코너에 가보면 그 화려함에 입이 벌어질 지경이다. 이미 눈은 높아졌는데 수입은 줄어드니 모두 미칠 지경이다. 돈 없는 사람은 분노하고, 중산층은 직장을 잃을까봐 불안해하고, 돈 있는 사람들은 한국이 사회주의 경제체제로 변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명박’에 맞서려면 이회창이나 정동영후보가 두꺼운 얼굴을 하고 “잘 살아보세”하면서 시대에 맞는 춤을 추어야 하는데 차마 그렇게는 못하고 정의, 정직, 평화 어쩌구저쩌구 하고 있으니 구두신고 발을 긁는 셈이다. 더구나 정동영 후보는 새 시대를 외치고 있지만 그의 옆에는 이해찬, 김근태, 유시민씨등의 얼굴이 비쳐 청산의 대상인 노무현 정권의 후계자처럼 보이는 우를 범하고 있다. 죽음의 키스다. 겨울인데 여름옷을 입고 있다.
한방이 헛방이 되어버린 지금 이명박 리드가 주춤하려면 이회창 후보의 인기가 치솟으며 이명박 후보를 밟는 동시 범여권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회창’의 인기가 떨어지고 있으니 그럴 가능성은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명박 후보를 밀어 줍시다”라고 외치면 선거판이 달라질 것이라는 조크가 유행할 정도다. 대통령선거는 검찰의 BBK 발표가 있던 날 이미 끝났다고 본다. 50밀리 표준렌즈로 들여다보면 그런 그림이 나온다.
<서울에서>
이철 고 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