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가주 프레스노, 지하터널 조사 작업 활발
소문으로 전해오던 ‘지하 차이나타운’ 확인 목적
“어려서 터널에 가봤다” 중국 노인들 증언도
중가주 프레스노에서 요즘 가장 큰 관심거리는 ‘땅굴’이다. 지금은 폐허가 된 옛 차이나타운 지하에 방대한 규모의 땅굴이 있으리라는 기대로 조사 작업이 한창이다. 이 도시에는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차이나타운 지하에 터널이 미로처럼 얽혀 있어서 땅 밑으로 어디든지 다닐 수 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였다. 이제 그 ‘전설’이 사실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시정부가 나섰다.
프레스노의 사적보존 담당관인 카래나 해터슬리-드레이튼은 지난 8월 일단의 고고학자들을 이끌고 차이나타운으로 갔다.
오래 전에 폐허가 된 그곳의 한 식당 겸 가정집으로 들어가 골동품 도자기들을 찾아보려는 목적이었다. 도처에 널린 인분과 하수구에서 나는 악취를 마스크로 겨우 피하며 일행은 지하로 내려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 계단 아래 만들어진 비밀공간에서 희귀한 그릇과 접시들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지하실 동쪽 벽에 판자로 가려진 나지막하고 캄캄한 공간이 있는 것이었다. 옛날부터 프레스노에서 소문처럼 전해 내려오던 바로 그 지하터널의 입구인가? - 학자들은 긴장했고 지금은 도시 전체가 그에 대한 호기심을 잠재우지 못하고 있다.
프레스노 차이나타운의 지하 터널은 그 규모가 방대해서 햇빛 한번 보지 않고도 그 일대를 다닐 수 있다는 것이 전설 같은 소문이었다. 그 중 한 터널은 과거 백인지역과의 분리 경계선을 따라 만들어져서 백인지역 남성들이 몰래 차이나타운의 주류밀매 업소를 드나들 수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고고학 팀의 작은 발견은 ‘지하의 차이나타운’에 대한 폭발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현재 시정부는 지각침투 레이다를 동원, 인근 거리들을 조사하고 있다. 아울러 호기심에 찬 방문객들이 많아지자 지역 단체들은 차이나타운의 몇몇 지하실들을 안내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그곳 한 이발소의 지하실로 내려가면 비밀스런 여러 출입구들이 콘크리트로 막아져 있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프레스노에 차이나타운이 생긴 것은 1872년이었다. 당시 주민들은 대부분 캘리포니아 철도 건설에 동원된 노무자들. 20세기 들어서면서는 상가가 줄줄이 들어서고 타운이 수 블록에 걸칠 정도로 중국인 커뮤니티는 팽창했다. 당시 프레스노 전체 인구 1만2,000명 중 거의 10%가 중국인이었다.
그러나 2차 대전이 터지고 중국인들이 교외로 이주해 나가면서 차이나타운 인구는 급속히 줄었다. 남은 건물들은 판자로 막아져 폐허가 되고 나이든 주민들은 세상을 떠나면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던 차이나타운의 역사도 희미해져갔다.
잊혀졌던 차이나타운이 다시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은 수년전. 그 일대의 수도관을 교체하던 노무자들이 식탁과 의자 몇 개가 있는 옛 지하통로를 발견하고 부터였다.
지하터널 소문이 소문만은 아니라는 확신을 심어준 것은 실제로 그곳에 가본 적이 있다는 노년층 중국인들의 증언.
1950년대 차이나타운에서 자란 릭 루(57)씨가 그중 한 사람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도박업소를 운영하고 주류를 팔면서 초기 차이나타운에서는 꽤 알려진 인물이었다고 그는 전했다. 그는 어려서 차이나타운 땅 밑에서 8피트 정도 넓이의 통로를 통과해본 기억이 있다.
“내가 아마 두세살 때였을 것이다. 아버지가 나를 업고 할아버지 리커 스토어의 뒷방으로 갔다. 그리고 카펫을 치우니 바닥에 지하로 연결되는 쪽문이 있었다. 지하실로 내려가니 동쪽 벽에 터널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었다”
터널의 바닥은 더럽고 대롱대롱 매달린 전구로 불을 밝혔는데 그곳에서 이웃 사람들을 여럿 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중국 전통 의상을 입은 여성을 두명 보았는 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들은 창녀들이었던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터널은 수십피트 정도 길이로 옆 건물과 연결되어 있었다.
인종차별 극심했던 당시 중국인들은 백인 비즈니스 출입이 금지되었고, 달리 여흥거리를 찾을 길 없던 그들이 지하로 내려가 매춘, 밀주 등 불법업소를 운영했던 것으로 그는 분석했다.
할아버지가 1900년대 초 프레스노에 정착했다는 진 수(56)씨도 7살 때 쯤 지하터널을 경험했다. 친지의 가게를 방문 중 얼음과자를 사 먹으러 갔을 때였다. 당연히 가게 밖으로 나갈 줄 알았는데 그 집주인은 지하실로 그를 데려갔고 지하터널로 가보니 얼음과자 집 지하실로 연결되더라는 것이었다. 터널의 벽은 붉은 벽돌로 지어졌고 넓이가 8피트 정도, 전구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는 기억이 루씨의 말과 일치한다.
은퇴경찰인 잭 에노스(73) 씨 역시 1950년대 차이나타운 일대를 순찰하면서 지하 터널에 관해 들었다고 전했다. 차이나타운의 중심 도로인 차이나 앨리를 사이에 두고 건물 지하실마다 터널로 통하는 문들이 있어서 맥주 장사를 하던 그의 친구는 지하 터널로 맥주 배달을 했다고 그는 말했다.
현재 진행 중인 레이다 탐사 결과를 보면 차이나 앨리 지하에 수도관이나 하수구로 보기에는 너무 넓은 공간들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것이 정말 ‘지하 차이나타운’인지는 좀 더 조사해봐야 알 수 있다.
차이나타운 마다‘지하터널’ 소문
대개는 중국인 혐오 분위기가 만든 허구
차이나타운이 지하터널로 연결되어 있다는 소문은 프레스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LA등 캘리포니아는 물론, 전국의 차이나타운들은 “땅 밑으로 터널이 있다”는 소문에 휩싸여 왔다. 하지만 지하실에서 지하실로 연결되는 정도 이상의 통로가 확인된 적은 아직 없다.
특히 LA의 본래 차이나타운(현 유니온스테이션 자리)은 터널들이 거미줄같이 연결되어서 사창가, 밀주거래상 등 불법영업 업소들로 통한다는 소문이 20세기 초부터 구전으로, 신문 보도로 끈질기게 전해져 내려왔다. 드디어 1990년 LA 카운티 메트로폴리탄 교통국이 지하철 건설을 위해 일대를 파보았지만 터널은 없었다.
차이나타운을 끼고 도는 지하터널 소문은 중국 문화에 대한 오해, 그리고 극심한 편견의 소산으로 일부 역사학자들은 보고 있다. 전국 중국역사학회의 필 초이 전회장은 지하터널의 존재에 회의적이다. 19세기 미국의 극심한 인종차별 분위기가 만들어 낸 것이라는 설명이다.
“중국인들을 몰아내려는 시도가 항상 있어 왔다. 눈에 가시 같은 인구집단이니 가능한 한 뭔가 수상쩍은 분위기로 몰아 가고 싶었던 것이다”
현재 프레스노에서 일고 있는 터널 발굴 작업에 대해서도 재미 중국계 역사 전문가들은 부정적이다. 중국인 혐오증을 유발하던 과거의 편견들을 되살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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