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미국의 최고법인 연방 헌법이 만들어진지 220주년이 되는 해다. 노예제 인정 등 중요한 결함에도 불구, 연방 헌법이 없었더라면 미국이 오늘 같은 대륙 국가가 되는 것은 불가능했으리라는 것이 학자들의 중론이다. 미국 헌법에 얽힌 이야기를 살펴본다.
노예제보장 등 결점 불구 강한 미국 가능케 해
상·하원 분리 큰 주·작은 주 권력 균형 유지
1785년 3월 어느 날 조지 워싱턴은 마운트 버논에 있는 자신의 저택에서 눈 내리는 포토맥 강을 바라보면서 이웃 조지 메이슨과 마데이라 포도주를 마시고 있었다. 워싱턴보다 7살 많은 메이슨은 워싱턴과 40년을 사귄 친구로 그가 흉허물 없이 터놓고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었다.
<필라델피아 제헌의회 회의 장면.>
1781년 미국이 요크타운에서 승리함으로써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지 4년, 1783년 파리 조약을 통해 이를 공식 인정받은 지 2년이 지났지만 당시 상황은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다. 각자 이해 관계가 다른 13개 주들은 사소한 문제를 놓고 다투기 일쑤였다.
이날 두 사람의 만남은 발아래 내려다보이는 포토맥 강의 이용권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버지니아와 메릴랜드의 분쟁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목적이었다. 당시 코네티컷과 펜실베니아는 접경 영토 분쟁에 휘말려 있었고 뉴욕과 뉴햄프셔는 누가 버몬트를 관리하느냐를 놓고, 뉴저지와 뉴욕은 통관세 문제로 다투고 있었다.
두 사람은 더 이상 주들 간의 다툼을 방치할 수 없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메릴랜드의 대표와 버지니아 대표로 뽑힌 메이슨을 워싱턴에 불러모아 타협안을 마련키로 했다. 사흘간 계속된 이 회의 결과 포토맥 강을 ‘공동 하이웨이’로 선포하기로 하고 세금과 어로권, 등대 유지비 등에 관한 모든 사항에 대해 합의했다.
<연방헌법 원문>
이에 고무된 이들은 이를 연례 행사화 하고 다른 주들도 초대, 1786년 메릴랜드 애나폴리스에서 모임을 갖기로 했다. 그러나 ‘애나폴리스 회의’로 불리는 이 모임에 대표를 보낸 것은 5개 주뿐이었다. 뉴잉글랜드와 남북 캐롤라이나, 조지아 등 남부 주, 심지어는 주최측인 메릴랜드까지 대표를 보내지 않았다.
당시 주변 상황은 약체 미국을 우습게 본 영국이 파리 조약에서 합의한 철군 약속을 지키지 않고 변경 요새를 강화하고 스페인은 미시시피 강을 봉쇄하는 등 첩첩산중이었다. 지중해 해적까지 미국 배들을 나포해 선원들 몸값을 요구하는 형편이었다. 독립 전쟁을 치르느라 진 빚을 갚지 못해 미국의 신용은 날로 추락하고 당시 각주의 연합체인 ‘동맹 의회’(Confederation Congress)는 조세권과 징병권도 없이 속수무책인 상태로 정부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다.
애나폴리스에 모인 5개주 대표들은 새로운 형태의 정부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다음해 5월 필라델피아에서 새 헌법 제정을 위한 회의를 갖기로 했다. 지난 220년간 미국을 지탱해 온 연방 헌법은 이렇게 해 탄생됐다.
숱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영국과 피 흘려 싸워 독립을 쟁취한 미국인들은 강한 정부 수립에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1878년 초 미국인들의 생각을 바꿔놓는 결정적 사건이 발생했다. 소위 ‘셰이스 반란’이라고 불리는 농민 봉기다. 미 독립 전쟁의 영웅이자 농부였던 대니얼 셰이스가 이끄는 2,000명의 농민군은 그 해 1월 중과세와 농가 차압에 항의하며 법원을 습격, 판사를 내쫓고 한 때 기세를 올렸으나 매사추세츠 스프링필드의 무기고 탈취에 실패하면서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농민 봉기는 진압됐으나 미국의 허약함을 극명하게 드러낸 이 사건은 새 정부 수립 필요성을 절감케 했다. 로드아일랜드를 제외하고 필라델피아에 모인 12개주 대표들은 조세권과 주법에 우선하는 연방법을 제정할 수 있는 연방 의회, 의회가 선출하는 정부 수반이 통솔하는 행정. 종신직 판사로 구성되는 사법부 설립 등을 골자로 하는 ‘버지니아 플랜’을 모델로 토론에 들어갔으나 두 가지 암초에 걸리고 만다.
하나는 모든 주들이 동등하게 한 표를 갖는 당시 시스템과 달리 인구 비율로 대표를 선출할 경우 ‘큰 주의 횡포’에 시달릴 군소 주들의 반발과 남부 경제의 핵심 요소인 노예제 폐지 주장에 대한 남부 주들의 반대였다. 결국 이는 의회를 상하원으로 나눠 하원은 인구 비례로 하되 상원은 모든 주가 동등하게 투표권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타협하고 노예제 문제는 향후 20년간 노예 무역을 허용하고 노예 한 명을 자유인 3/5명으로 쳐 남부 주에게 인구 가중치를 주는 쪽으로 합의가 이뤄진다.
이는 사실상 남부 주의 주장을 거의 그대로 들어준 것으로 노예제를 헌법 차원에서 보장해줌으로써 남북 전쟁이란 비싼 대가를 치르고서야 노예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를 만들었다. 그러나 노예제 문제로 13개 주가 갈라져 연방 헌법이 채택되지 못했더라면 미국은 유럽처럼 군소 국가가 난립하고 유럽 강국이 개입하는 상황이 발생, 지금 같은 대륙 국가로 성장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렇게 어렵게 마련된 연방 헌법은 1787년 9월 17일 채택되지만 각주의 인준을 받아야 하는 어려운 절차가 남아 있었다. 법적으로는 9개 주의 승인만 받으면 되지만 뉴욕 등 큰 주가 가입하지 않을 경우 사실상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때 모든 주가 결국 이를 인준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문서가 나왔다. 그 해 10월부터 다음해 8월까지 인디펜던트 저널과 뉴욕 패킷에 실린 기고문이다. 후에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스’로 불리게 된 이 기고문은 제임스 매디슨, 알렉산더 해밀턴, 존 제이 등 연방 헌법 주창자들이 왜 이 헌법이 필요한가를 설명한 글로 미국 정부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필수불가결한 문서로 평가받고 있다.
1788년 6월 뉴햄프셔를 필두로 각 주들은 연방 헌법을 인준하기 시작, 결국 13개 주 모두가 하나의 연방 정부 하에 뭉치는데 합의하며 이때부터 진정한 미국의 역사가 시작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헌법인 연방 헌법은 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27개의 수정 헌법 조항에도 불구, 골격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노예제 등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오늘 날 세계 유일의 수퍼파워인 미국을 가능케 했다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거의 없다.
헌법 제정자들의 숨은 면면
미국 헌법이 어떻게 만들어졌나를 묘사한 책 중 대표적인 책은 캐더린 드링커 보웬이 쓴 ‘필라델피아의 기적’(Miracle at Philadelphia)라는 작품이다. 연방 헌법을 만들기 위해 필라델피아 모인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합의에 도달했으며 그 개개인의 면면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이 책을 토대로 새로 발굴된 사료를 보충해 연방 헌법 제정 경위를 적은 데이빗 스튜어트 작 ‘1787년의 여름’(The Summer of 1787)이 주목받고 있다.
루이스 파월 대법원 판사 서기를 역임한 변호사이기도 한 저자는 알렉산더 해밀턴, 거버너 모리스, 에드워드 랜돌프 등 제헌 의회 대의원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이들이 얼마나 가까스로 합의에 도달했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무슨 일이든 이루기는 어렵고 비판하기는 쉽다. 연방 헌법의 결점을 탓하는 사람들은 이를 제정한 이들이 겪었던 고통도 조금은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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