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00km 필사의 도피...돕지 않을 수 없었다
탈북자들의 어려움을 보고, 순수한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이들을 도왔다가 중국에서 4년여의 옥고를 치르고 풀려나 추석인 지난 25일 뉴욕에 도착한<본보 9월26일자 A1면> 스티브 김(한국명 김승환)씨는 지금도 전혀 후회가 없다고 말한다. 지난 99년부터 2003년까지 중국내 100여명의 탈북자에게 숙식 및 일자리를 제공하고, 이중 30여명을 한국으로 보냈다는 김씨는 앞으로도 “탈북자의 인권을 위해 미국에서 돕겠다”고 말했다. 26일 김씨를 롱아일랜드 자택에서 만나 탈북자 지원 계기와 중국 감옥에서의 수형 생활, 앞으로의 활동 계획 등을 물어봤다.
▲탈북자를 도운 혐의로 5년형을 받은 스티브 김씨는 연길 간수소와 장춘 감옥을 거쳐 외국인 수감자들을 모아놓은 북경감옥 수용실에서 복역했다. 사진 오른쪽은 스티브 김씨가 수감될 당시 사진이며 오른쪽은 북경감옥 외국인 수용실에서 점호를 받는 모습이다.
-왜 탈북자를 돕게 됐는가.
“87년부터 중국 광동성에서 가구 공장 및 가구 도매 비즈니스를 해왔다. 탈북자를 돕기 시작한 99년 당시 심천의 ‘섬기는 교회’를 다녔는데, 이 교회의 광고를 보고 탈북자들이 찾아와 도움을 청했다. 한국인들은 중국 공안의 처벌이 무서워 직접 도와주기가 어려웠고, 그래서 미시민권자인 내가 나섰다.”
-어떻게 도왔는가.
“당시 회사가 있는 동관쪽으로 나와 방을 구하고 아는 공장에 취업시켰다. 한국가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숙식 제공에 주력했다. 한때는 22명까지 숙소에 있다가 공안에 붙잡혔고, 뇌물을 써서 빼오기도 했다. 당시만해도 탈북자 문제가 허술할 때여서 가능했던 일이었다.그러나 이런 임시방편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 한국으로 보내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안
전하고 가격도 저렴한 베트남 경유 루트를 만들었다.“
-얼마나 저렴한가.
“한국에 가는 비용이 중국돈으로 1만원-3만원 등 천차만별이었다. 그런데 베트남을 경유하면 300달러, 중국돈 2,400원 정도면 충분했다. 하지만 탈북자가 돈이 어디 있는가. 그래서 미국에 와서 이들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고, 비용의 절반은 내가 맡고 나머지 절반은 후원을 받기도 했다.”
-광동성쪽에는 탈북자들이 얼마나 있었나.
“탈북자들이 한국가는 방법을 찾다가 홍콩을 경유하면 쉽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그래서 홍콩과 가까운 심천까지 정말 어렵게 내려왔다. 생각해봐라. 북한과 중국 국경에서 심천까지 5,400Km 정도 되고, 돈도 없고, 중국어도 서툰 탈북자들이 얼마나 힘들게 그곳까지 왔겠는가. 많지는 않았지만 매주 교회에 수명이 찾아왔다. 몇 개월을 구걸하다시피 내려온 사람들이 ‘북에서 왔다‘고 말하면 어떻게 안도와줄 수 있나.”“지난 97년 북한에 큰 기근이 들어 300만명 정도가 굶어 죽었다고 한다. 식량난이 가중되면서 북한 주민들이 대거 탈출하게 된 것 같다.”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들이 있는가.
“30여명 정도 되는 것 같다. 숙소를 거친 사람들은 100여명 되지만 각자 상황에 따라 뿔뿔이 흩어지곤 했다. 한국에 보낸 탈북자 중 일부는 내가 감옥에 있을 때 ‘아버지’라고 부르며 찾아오기도 했다. 내가 본 북한인들은 대부분 똑똑했다. 어딜 가든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반드시 한국에 가겠다고 나온 것은 아니지만 먹고 살겠다고 나와보니까 한국에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중국 감옥에서는 어떻게 지냈나.
“처음에 연길 간수소(구치소)에서 11개월을 보냈고 장춘 감옥에서 15개월동안 수감돼 있다가 북경 감옥에 이감돼 22개월을 복역했다. 가혹행위는 없었고, 감시는 심한 편이었다. 종교 생활이 금지돼 새벽에 몰래 기도회를 갖다가 적발돼 불이익을 당하기도 했다. 장춘 감옥에서는 영하 28도의 추운 날씨속에서도 더운물이 안나와 고생했다. 나중에 옮겨진 북경 감옥은 UN 등 외국인 방문자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으로 시설이 무척 좋아 비교적 편안하게 지냈다. 다행히 크게 아픈 적도 없었고 4년동안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았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내 석방을 위해 노력해준 워싱턴의 인권단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 탈북자를 지원하다가 체포된 사람 중 내가 가장 장기 복역한 사람이라고 하더라.(웃음) 미국 시민이 중국에서 사업하다가, 어려운 사람을 도왔는데 이런 피해를 본 것이다. 중국에서 골머리를 썩고 있는 탈북자 문제를 미국정부나 한국정부가 도울 수 있도록 여론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고 싶다.”
-4년 만에 집에서 잠을 잔 소감은.
“4년 전에 심었던 밤나무가 열매를 맺었다. 추석 명절에 와서 가족, 친지들과 좋은 얘기 많이 나눴고, 그동안 고생했던 가족들과 즐겁게 삶을 보내고 싶다. 탈북자 문제는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도울 예정이다.”
<김주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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