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유난히 남보다 병치레를 많이 하던 나는 병원 옆에 집을 얻어놓고 유모 할머니와 자랐다. 칠순이 넘으신 분을 엄마라 부르며 살던 나는 가끔 다른 아이들의 엄마에 비해 유난히 주름도 많고 허리도 구부정하신 그분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난 사람이 낳고 자라고 늙는다는 세월의 흐름을 모르는 채 사람들이 다 그 나이로 태어났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 생각에 그 유모 할머니는 노인네로 태어났고 난 더 클 수도 없는 여섯살짜리 꼬마로 태어난 것이다. 길가에 다른 사람을 보아도 누구는 20대 청년으로 누구는 30대 엄마로 태어났다고 믿으며 꼬마로 태어난 나도 억울했고 노인네로 태어난 유모 할머니에 대해서는 불쌍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남보다 철이 일찍 들어 생각하는 것이 어른스럽다는 말을 종종 듣던 나였지만 난 어른들이 상상할 수 없고 말도 되지 않는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요즘 출산율의 저하로 한 자녀만 둔 가정이 많다. 그러다보니 자녀를 귀하게 잘 대해주는 것도 쉽게 볼 수 있고 어른들과의 대화 속에서 어른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로 어른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대화능력을 보이는 자녀를 흡족하게 여기고 자랑하는 부모들을 쉽게 대할 수 있다. 과연 그 아이들의 인지능력이 부모가 느끼는 그런 수준일까? 인지능력을 재는 도구가 대부분 언어능력에 기초해 있지만 인지능력이라고 하면 꼭 말재주나 셈하는 능력만을 말하지 않는다.
브롬(Bloom)의 지식체계를 보면 말로 표현해 내는 지식의 양을 가장 낮은 단계의 인지능력으로 보고 있다. 지식을 이해하고 실제상황에 적용하는 능력, 상황을 분석하고 통합할 수 있는 능력과 비교 비판하여 평가를 내리는 능력을 보다 높은 인지능력으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듣고 되뇌는 단어에 만족하기보다는 아이들이 상황을 이해하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판단력과 행동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실천력과 자신의 행동을 평가하고 변화를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이 키워지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인지발달 연구의 일인자인 피아제(Piaget)는 아동의 인지발달을 단계별로 구별 지어 성인의 인지능력에 비해 양적인 차이뿐만 아니라 질적인 차이가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 말은 아동이 성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적은 양을 이해한다는 의미보다는 생각하고 이해하는 방법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피아제는 아동의 인지발달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같은 사고를 하는 아이들끼리의 대화와 인간관계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질적으로 다른 인지능력을 가진 부모나 성인은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일부러 져준다거나 일방적으로 어른의 입장을 피력하는 것은 아이들이 이해할 수 없고 그것이 아동의 인지발달을 자극하거나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슷한 인지수준의 아이들끼리 대화하고 갈등을 해소해 가는 과정이 바로 아동의 인지발달이 촉진되는 지름길이란 설명이다.
그래서 학교 교육은 아동에게 지식의 전달기관으로서 뿐만 아니라 같은 또래 아동들 간의 만남을 통해 사회성과 인지발달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역할을 하기에 중요한 것이다. 이제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학습만을 강조하지 말고 좋은 친구를 사귀고 다양한 친구들과 활발한 대화를 통해 자녀의 인지발달이 자극을 받도록 인간관계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가정에서 자녀와의 대화중에 친구들과 어떻게 지내는지 자주 물어보는 것이 좋다.
김효선 교수
<칼스테이트 LA 특수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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