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여섯 살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들어왔다. 그 뒤로 두세 살쯤 되어 보이는 아기가 따라 들어왔다. 여자아이가 롤리팝을 사더니 제 입에다 쏙 집어넣었다. 그러자 뒤 따라온 아기가 손을 뻗으며 사탕을 달라고 칭얼거렸다.
그런데도 여자아이는 제 입만 챙기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급기야 아기가 울음을 터트리자 여자아이는 신경질적으로 사탕을 아기 입에 넣어주고는 자기는 다시 새 것을 입에 물었다.
“동생이니?” “아뇨. 내 딸이에요.” “딸?” 나는 너무도 놀라 카운터 안에 있다가 밖으로 나왔다. “딸? 너 몇 살인데?” “13살” “아기는?” “3살”
모녀가 사탕을 맛있게 빨면서 큰 길을 건너갔다.
제니가 10살 때였다. 학교에서 파하고 친구들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작은 몰이 있는데 그 곳에 잡화가게가 있었다. 머리핀을 사려는 친구를 따라 가게로 들어간 제니는 이것도 갖고 싶고 저것도 갖고 싶었다.
그 때 종업원이 다가와 상냥하게 웃으며 제니에게 예쁜 머리 핀 하나를 주었다. 그 뒤로 제니가 혼자 갈 때마다 그는 물건을 주었고, 주인이 없는 어느 날 오후 가방을 쥐어주는 녀석을 따라 창고로 들어간 제니는 10달 후에 올가를 낳았다. 제니의 엄마가 그 가게로 달려가 보았지만 녀석은 이미 종적을 감춘 뒤였다.
어느 누구도 올가를 돌보아줄 사람이 없었다. 제니의 엄마는 미트볼 공장에서 일하고 제니의 아빠는 막 노동을 하고 돌아오면 지쳐서 늘 맥주 한 캔으로 하루를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제니는 학교를 고만 두고 하루 온종일 올가만 데리고 큰 길을 건너오고 건너가곤 했다. 혼자 건너와 사탕을 사갈 때, 올가 주라고 사탕 하나를 더 주면 자기가 홀랑 먹어 버렸다.
이따금 제니의 친구들이 올가를 데리고 와서 사탕을 사주면 기특하게도 올가는 그 사탕을 꼭 손에 쥐고 있다가 엄마 입에 넣어 주었다. 3살짜리 딸이 13살짜리 엄마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그러던 어느날 낯선 녀석이 마켓에 나타났다. 녀석은 사탕과 초컬릿을 잔뜩 사들고 나갔다. 꼭 쥐새끼처럼 생긴 녀석이었다. 녀석은 제니와 친구들이 길을 건너오는 것을 보고는 불쑥 제니 앞으로 다가갔다. 친구들이 올가를 데리고 마켓으로 들어왔다. “저 녀석 누구니?” “올가 아빠에요.”
녀석은 비굴할 정도로 제니에게 알랑거리고 있었다. 자기 딸 올가에게는 관심도 없었다. 오로지 제니만 유혹해서 어디론가 끌고 갈 생각인 것 같았다. 제니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녀석이 호주머니에서 조그만 상자를 꺼내더니 제니의 목에다 반짝이는 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제니의 입이 귀밑까지 벌어졌다.
올가 할머니가 벼락치듯 녀석에게 달려든 것이 바로 그 때였다. 커다란 빗자루를 휘두르며 내리치는 순간 녀석은 제니의 등 뒤로 숨고 제니는 빗자루에 정통으로 머리를 맞았다. 녀석이 비실비실 도망가기 시작하고 올가는 아-앙- 울음을 터트리며 엄마에게 달려가고 친구들도 우르르 제니에게 모여들고 올가 할머니는 고래고래 악을 쓰며 녀석을 쫓아갔다.
녀석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올가 할머니는 씩씩거리며 돌아와서는 제니의 등을 다시 한번 빗자루로 냅다 갈겼다. 그리고는 제니의 목에 걸려있는 목걸이를 잡아채 길가로 던져 버렸다.
올가가 울며 엄마에게 매달렸다. 제니의 눈물과 터진 입술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한데 섞여 턱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친구들이 제니와 올가를 데리고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제니가 절뚝거렸다. 올가도 절뚝거렸다. 길도 절뚝거렸다. 그 날 하루가 온 종일 절뚝거렸다.
이윤홍 / 시인·자영업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