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대통령의 지지자들에게는 부시 집권의 설계자이며 최고 참모다. 부시의 정적들에게는 부시의 ‘두뇌’다. 31일로 사직하는 백악관 비서실 차장 겸 고위 보좌관 칼 로브에 대한 평가는 그처럼 정반대다.
여러 대학에 적을 두기는 했었지만 졸업은 하지 않은 로브는 머리가 명석한 사람임에는 틀림없는 모양이다. 부시 집안과의 30년 넘는 관계도 6년 이상 현 대통령의 지근 참모로 활동하는데 일조했음직하다.
선거 책략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모사로 이름을 날린 로브가 한번은 실패한 적이 있었다. 로브는 아버지 부시의 보좌관으로 있다가 아들 부시가 텍사스 주에서 연방 하원의원으로 출마했을 때 선거운동을 주도했지만 결과는 낙선이었다. 그러나 부시가 텍사스 주지사로 두 번 당선되게 하고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우세였던 존 맥케인을 꺾고 부시가 공화당 후보가 되는데 수훈갑을 한 덕으로 로브는 부시의 가장 가까운 참모로 자리를 굳혔던 것이다.
그는 부시 임기 중 미국 정치 판도를 완전히 바꾸어 공화당이 계속 집권할 수 있는 골격을 갖추겠다는 엄청난 야심을 가졌었다. 낙태나 동성애의 범람 때문에 리버럴한 민주당에 신물을 느낀 기독교 보수파를 공화당으로 흡수하고 점점 늘어가는 히스패닉계 미국 시민들을 이민법 개정으로 공화당 지지층으로 만드는 동시에 부유층에 대한 감세정책으로 돈줄을 확보하면 공화당 장기집권이 가능해진다는 계산이었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반대가 비등하기 시작했지만 2004년 대선에서 부시가 케리를 이겼을 뿐 아니라 상, 하 양원에서의 공화당 의석수조차 늘었던 것도 로브의 공, 또는 비열한 선거 전략으로 돌려지고 있다. 월남전에서 무공훈장을 받은 참전용사 케리에 대한 사실 호도 및 비방 메시지로 월남전 부근에도 안 가본 부시가 케리보다 국방 안보의 적격자로 보이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명분이 없는 이라크 전쟁의 수렁은 2006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상, 하 양원의 소수당으로 전락하게 만들었다. 또 얼마 안 있으면 4,000에 육박할 미군 전사자들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TV 앞에서 볼 수 있는 이라크 민간인들의 처참한 살육전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판국에 2008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패배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도 로브의 사직을 촉발했을 것이다.
부시는 로브가 사표를 낸 후 그와 함께 텍사스의 자기 농장으로 여름휴가를 떠났다. 8월에는 의회도 휴회이므로 대통령이라고 휴가를 가서는 안 된다 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화씨 100도가 넘는 이라크의 더위에 방탄복마저 입어 땀이 비 오듯 하는 상태에서 언제 어디서 테러리스트의 저격이나 가설 폭발물들이 터질까봐 조마조마 하면서 움직이는 군인들을 생각해보면 대통령이 한번쯤 휴가를 반납하고 워싱턴을 지켜 군인들의 노고에 보답하는 것이 순서일지 모른다. 이라크 국회의원들이 8월 한 달 휴가를 보내고 있어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 상기된다.
그리고 미니애폴리스에 있는 미시시피 강 상류의 35번 하이웨이 다리가 붕괴되어 다리나 터널 같은 기간시설의 안전도에 대한 우려가 표출되고 있는 시점에 1주일에 10억 달러 든다는 전쟁비용의 도덕성도 논의될 만하다. 미국의 다리들이 약 60만개인데 그중 4분의 1인 15만개 정도가 구조상 결함이 있다는 통계가 있다. 그것들을 온전히 보강하자면 수조 달러가 들게 되겠지만 엄청난 전쟁비용 앞에서 기간시설 보수는 엄두조차 못 내고 있다. 대통령 잘못 뽑으면 어떤 결과가 오는지 부시와 로브가 보여준다고 하면 지나친 혹평인가.
남선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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