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과거사 청산에 수 년간 매달려온 나로서는 이번 일본군 성노예 (위안부) 결의안 하원 통과를 현장에서 지켜본 감회가 남달리 깊다. 연방하원 435석중 한국계 의원은 한 명도 없는 척박한 정치 현실에 굴하지 않고 한인사회가 마이크 혼다 의원과 끝까지 합심하여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것은 한 편의 장쾌한 드라마라 아니할 수 없다.
7월 30일 하원 본 회의는 탐 랜토스 국제관계위원장의 강력한 개회 연설로 시작되어 민주, 공화당을 가리지 않고 10명의 지지 발언으로 이어졌는데, 일본이 감히 반대 목소리를 낼 수 없게끔 랜토스 위원장이 치밀한 사전 작업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연방의회에서 유일한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랜토스 의원. 그는 6월 중순 LA 한인타운 방문에서 ‘HR121을 통과시키는 것이 나의 책무’라고 한 말을 굳건히 지켰다.
팔레오마베가 아시아 태평양 환경소위원장은 지지발언 중 상당 부분을 1993년 일본정부의 개입과 책임을 인정한 고노 관방장관 성명에 할애했다. 고노 담화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내려가며 이를 ‘기록에 남기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결의안이 통과되자 회의장 밖으로 나와 이용수 할머니와 감격의 포옹을 나눈 혼다 의원은 안경 너머로 연신 눈물을 훔쳐냈다.
본 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펠로시 하원의장은 혼다 의원의 자축 리셉션에 늦은 저녁 시각에도 기쁨에 가득찬 얼굴로 나타나 ‘정말 기쁘다. 우리가 해야할 일을 했다.’며 이용수 할머니의 손을 오래 동안 꼬옥 잡고 있었다.
과거 레인 에반스 의원이 결의안을 하원에 수 차례 상정했었지만 의회지도부의 지지까지는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이번에는 무엇으로 하여금 미하원 지도부의 강력한 신념으로 굳어질 수 있었을까.
국제정세의 변화도 무시할 수 없다. 미일 관계가 부시-고이즈미 하의 끈끈한 동맹관계에서 이제는 필요한 이슈에 따라 공조하는 유동적인 관계로 바뀐데다가 후진적 역사의식을 가진 일본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동북아에서 미국의 이익에 해가 된다는 의식의 전환이 의회내에서 있었을 것이다.
또한 1990년도 초반부터 위안부 문제를 국제 사회에 제기 하기 위해 애써온 수 많은 피해자와 활동가들의 끈질긴 노고가 밑걸음이 되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과거의 운동이 일본을 규탄하고 성토하는 데 머물러 있었다면 뉴욕 유권자센터를 중심으로 한 이번 캠페인은 위안부 문제가 세계적인 인권문제요, 여성문제라는 보편성을 가지고 의원들을 설득했다.
워싱턴에서의 로비활동과 서부지역을 중심으로한 하원들의 지역구 사무실 방문을 통해 동시박차를 가한 것도 주효했다. 특히 의원들을 설득하는데 영어소통에 불편함이 없는 1.5세대 활동가들의 활발한 참여가 커다란 자산이었음은 물론이다.
무엇보다도 이번 쾌거의 주역은 평범한 우리 한인들이다. 청원서에 서명하고 한푼 두푼 모아 주머니를 연 평범한 한인들의 깨알같은 정성이 결국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힘없는 절규에서 미의회를 움직이는 거대한 함성으로 바꾼 것이다.
혼다의원에게 “일본계인 당신이 이 결의안을 주도하고 우리 한인들이 이를 밀었다는 사실 자체가 화해의 시작입니다” 라고 말했더니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화해와 치유의 역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앞으로 대승적인 차원에서 일본에 접근해 그들이 소아적인 역사인식과 결별하고 화해의 역사에 동참할 수 있도록, 위안부 결의안에 면면히 흐르는 정신을 이 시대의 시대정신으로 승화시키자. 결의안 통과는 인권과 평화, 진정한 인간 존엄성 회복의 시대를 여는 장엄한 역사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정연진 / 바른역사 정의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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