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가까이 지내오는 미국인 목사님이 들려준 이야기이다.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아프리카 오지에 간 때는 그의 나이 일곱 살 무렵,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70년 전 일이다.
부모가 선교활동 하는 중 미국 선교본부에서 이 부족의 마을에 예배당, 학교. 의료시설을 설립하도록 기금을 보내왔다. 이윽고 선교사 부부는 한 복판에 큰 아름드리 고목이 자리 잡고 있는 땅을 매입하기에 이르렀다. 매매가 끝나고 소유권이 이양된 지 얼마 후에 그 땅에 부족의 사람들이 와서 그 고목을 캐내어 가져 가려는 듯 했다.
당연히 이 목사 부부가 그들의 하는 일을 중지시키고 계약서를 내밀었더니 “땅을 팔았지 나무는 팔지 않았다” 며 오히려 당당한 태도였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은 선교사 부부는 끝까지 나무의 소유권을 주장했다. 그러자 족장과 마을사람들은 “나무를 못 내 주겠다면 너희들이 떠날 수밖에 없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며칠이 지났다. “떠나야 한다”는 원주민들의 말이 무슨 뜻인가 하던 차에 거센 모래 바람으로 한치 앞이 안 보이는 어느 날 어떤 사람이 문을 두드려 엄마를 불러내더란 것이다. 오랫동안 엄마가 돌아오지 않자 아버지가 뒤 따라 찾아 나섰는데 두 사람 모두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그 부족의 사형방식은 예고 없이 집행되는데 악천후를 택하여 데리고 나가 목을 친다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떠나야 한다”는 말은 죽이겠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부모의 피살을 뒤로하고 벽안의 소년은 귀국하여 삼촌의 도움으로 성장했고 신학교를 마치고 목사가 되어 부모님이 순교하신 그 땅을 선교지로 택했다. 어린 시절 순진무구했던 토인친구들도 어엿한 성인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해후의 기쁨도 잠시, 동네 어른들로부터 당시 부모의 살해자를 알게 되었고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살해자들이 다름 아닌 어렸을 적 동무들의 부모였다는 것이다.
충격과 혼란이 교차하던 중 그들을 용서함으로써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라는 세미한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그 곳에서 평생을 그들을 섬기며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잔잔한 어조로 당시를 회고하는 노종의 온화한 얼굴에는 ‘작은 예수’라고 써 있는 듯 했다.
이렇듯 서류에 명시하지 않아도 서로 이해되는 기본적인 조항과 내용이 문화에 따라 크게 달라질수 있다. 미국인 목사님은 자기 부모가 원주민들의 풍속을 깊이 이해 하지 못해 참극을 당했다며 ‘언어’와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럴 수 있겠다 싶다. 죽인다는 말이 여러 가지로 표현될 수 있으니 말이다. 예를 들면 우리말에도 ”죽이다” 외에 “살해 하겠다“ 혹은 ”오늘이 너희 제삿날이다“ 등등 다양한 표현이 있다. 어찌 토인들이라고 죽인다는 어휘가 하나 뿐 이겠는가. 그러나 혹 ”죽이다“의 다른 변칙된 말을 몰랐다 할지라도 토지매매 관습과 사형방식을 알았다면, 느닷없는 참극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었다. 그만큼 문화와 전통, 그리고 관습과 관례에 대한 이해는 중요한 일이다.
이 같은 문화적 상이성을 논하지 않더라도 아프가니스탄은 전쟁터이며 이슬람 교리를 가장 원칙적으로 실천하는 탈레반의 본거지이다. 이런 나라에 들어가 거침없이 촌락을 누비고 다닌 한국인 선교팀은 조금 미숙했다고 볼 수 있다. 단체행동에서 오는 용기, 과신, 그리고 흥분이 어우러지면 자칫 미숙함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들의 의도와 열정은 좋았지만 시기와 형편을 무시하지 않았나 싶다. 선교활동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선교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이요, 분부이며 동시에 제자의 사명이기도 하다. 단기 선교도 틀린 것은 아니다. 장기 혹은 평생선교를 위한 예비 실습이므로 유익한 것이다.
다만 대상국이 후진국이라고 해서 자칫 경솔히 여겨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선교 실태를 점검하고 재무장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
이은하 / 세계기독신학대 음악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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