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밍버드’와 함께한 1년, 신예선 작가의 편지
“축구 때문에 미국에 왔다.”
데이빗 베컴이 LA 갤럭시 구장 홈디포 센터에 등장했다. 100여대가 넘는 TV카메라, 300대가 넘는 미디어 카메라가 몰려든 취재 열기는, 월드컵 경기보다 더 많은 기자들이 세계 각처에서 몰려 왔다고 했다. ‘2억 5천만 달러의 수퍼, 수퍼 스타’는 은빛 정장을 입고, 700여명의 취재진과 5천여 팬들의 환호 속 오색 종이가 하늘을 수놓는 가운데 입단식을 가졌다. 한 사람의 영웅이 미국에서 축구 역사를 어떻게 바꿀지, 그 기대의 열광이 오색 종이만큼 지상도 수 놓았다.
나는 1년전만 해도 이 영웅, 데이빗 베컴이라는 존재를 몰랐다. 물론 한국일보 정태수 기자의 월드컴 성찬 기사를 맛보기 전까지는 모든 스포츠 자체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 내가, 나의 소설을, 스포츠로 문을 열었다. 연재를 위해 미리 준비했던 전반부의 원고 몇백장을 찢고, 월드컵에 취해서, 열광하며 소설을 써나갔다. 이렇게 100여장 가까이 월드컵을 끌다보니 애당초의 계획은 묘하게 이리저리 꼬리만 보였다. 거기에 더하여 이병주 국제문학제의 연이은 초대와 여행등이 삽입되면서 방향은 더욱 멀어져만 갔다. 북가주 동포들의 사랑에 보답할 마음으로, 나와 인연을 맺고 사랑했던 친구들을 소설에 아름답게 배치하려던 계획들은, 이렇게 점점 희미해져 버렸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이병주 국제문학제 관련 대형 출판사로부터 청탁받은, 그 지속적인 원고의 유혹이 나를 흔들어댔다. 하여, 1천여매의 글을 연재와 별도로 써야하는 중압감이 결국은 <심포니를 타는 허밍버드>를 만 1년만인 50회로 끝내게 되었다. 연말까지 끌고가면 애당초의 계획들을 살려놓을 수도 있었지만, 결국은 월드컵으로 시작된 소설을 월드컵 수펴스타의 화려한 미국 입단식에 즈음하여, 나는, 오색 종이로 뒤덮이 갤럭시 구장보다는 그래도, 천구의 찬란한 갤럭시를 가슴에 품으며 끝내기로 했다.
사랑의 보답으로 쓰려고 했던 소설이 미안한 마음으로 막을 내려 죄송할 뿐이다. 하지만 언제나 다음 작품이 있기에 그때를 기약하며 애독자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무엇보다 심포니를 연주할 수 있도록 넓고 아름다운 무대를 제공해 준 한국일보 강승태 사장님, 홍남 전 편집국장님께 감사한다. 그리고 어찌 빼 놓을수 있으랴, 소설의 방향까지 뒤흔든 기사로 나에게 월드컵, 그 스포츠의 묘미를 맛보게 해준 정태수 국장님을. 그 때문일까, 아니면 그의 소설가로서의 꿈 때문일까, 작가인 나보다 더 애착을 갖고 소설의 무대와 장치에 신경을 써 주었다. 또, 공혜리와 김윤희 양, 나의 후려갈긴 원고를 컴퓨터에 정리해 준 고마움을, 제자를 써 준 이명수 화백을, 무엇보다 아름다운 삽화로 소설에 색과 향기를 삽입해 준 데이빗 최 화백에게 어찌 고마움을 다 말할 수 있으랴.
이제, 장편소설 집필의 중노동을 위로하기위해 여행으로, 영양보충으로 내 옆에 있던 최신업, 성기왕, 장금자, 황실보석, 김엘리자벳, 신수진, 정에스라 그리고 많고 많은 나의 친구들, 앞으로 본격적으로 쓸 <나와 북가주의 연인들>에서 대대적으로 묘사할 날을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2006년 8월 4일에 시작해서 2007년 7월 25일까지, 즐거운 교류를 했던 독자들에게는 미리 이 지면을 통해 초청장을 대신한다. 소설이 한 권으로 묶여 출판되어 나오는 2008년, 함께 교향곡을 연주하며 한판의 흥겨운 잔치를 갖자고, 어짜피 삶이란 한판의 잔치, 비록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서러워하거나 노하지마라. 지나간 것은 값진 것이고 기쁨의 날은 계속 오리라.
다시한번, 아름다운 눈과 가슴으로 나를 보살펴주고 사랑해 준 모든 친구들, 모든 애독자에게 사랑과 믿음과 감사를 보낸다.
베컴이 말했다.
“22살 때처럼 몸이 건강하며 열정은 14살 소년 때 그대로다” 라고.
바로, 내가 그렇다.
수요연재/신예선 신작소설 <마지막 50회> ‘심포니를 타는 허밍버드’
내 마음속의 알려지지 않은 별을 꺼내고 있는 귓전에, 은하계로부터 잠언 9장이 심포니를 타듯이 연주되었다.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찌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니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라고
식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명철자
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기능자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우연이 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라
고향의 친구들이 포도원에 정착하기로 결정한 시기는 우연이었을까. 우리들의 출생 시기와 친구되어 함께한 세월들도 우연이었을까. 이들의 실체가 선량하고 지혜로웠던 것, 그리하여 이들이 받은 축복을 주위에게 갚으며 살기로 결정한 것 또한 우연이었을까. 무엇보다 이들로부터 포도원 동참의 초대를 받은 나, 선택과 선택의 연속으로 함께 한 모든 것이, 적절한 시기의 우연이었을까. 나는 <운명>이라고 이름짓고 이들과 오늘에 이르렀음을.
사랑도 한때라고 했지만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우리의 사랑, 그 우정. 우리는 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삶의 후반부, 그 출발점을 이곳으로 정했다. 나의 선택에 의해 각자의 길을 충실히 걸어온 고향의 꼬마들, 돋아난 흰머리 아래 성실한 주름이 삶의 나이와 품격을 보여주고 있는 시점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의 심포니를 연주하자고 했다. 몇 악장까지 이어질지 모를 우리 삶의 끝까지, 이웃을 위한 사랑의 곡을. 출생에서 정착까지 멀리도 와 있건만, 이곳에 고향을 이룩하며 이웃에게 마음과 시간, 몸과 돈 그리고 우리에게 부여된 재능을 다 바치자고 했다.
……
……
모든 산 자 중에 참예한 자가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음이니라.
무릇 산 자는 죽을 줄을 알 되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며
……
……
살아있기에 소망이 있다. 살아 있기에 아직 알려지지 않은 가슴속의 별을 꺼낼 수 있다. 살아있기에 아직 항해하지 않은 가장 넓은 바다, 아직 끝나지 않은 가장 먼 여행, 아직 살지 않은 최고의 날들, 아직 추지 않은 최고의 춤, 그 꿈이 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심포니, 고향을 이루며 이웃에게 연주할 꿈. 은하계를 바라보며 산 자들의 특권으로 포도주를 마시면서, 예찬하는 삶의 꿈. 이 먼 타국에서, 삶의 종착지에서, 참예한 소망으로 연주해 보는 삶의 교향곡.
햇볕에 바래고 달빛에 물든 신화와 전설같이, 문학 캠프도 계속될 것이다. <삶의 숲에서 길을 잘 찾아라>, 선택은 너의 몫이다. 또한 시기와 우연은 모두에게 임한다. 그리하여, 이어질 향연, 산 자들의 아름다운 특권이다.
지상의 갤럭시 구장이 아닌, 하늘의, 천구의 갤럭시로부터 수시로 별똥이 떨어졌다. 나는 사라지는 꼬리를 보며, 살아있기에 죽음을 느낄 수 있는 예찬을 들었다. ‘썼노라, 살았노라, 사랑했노라’, 스탕달은 비문을 남기며 자신의 무덤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기억해 주기를 바랬다. 발자크는 글을 쓰며 죽겠다고 했고, 프로이드는 ‘문학속에서라면 죽는 법을 아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살아있기에 그려볼 수 있는 죽음의 꿈이다. 살아있다는 것 만으로 무한한 가능성이 갤럭시의 별들같이 빛났다.
갤럭시 안으로 허밍버드가 나르며 삶의 심포니를 지휘하는 것이 보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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