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한국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보며 참을 수 없는 것은 기사 제목을 영어로 바꾸고, 광고의 지문을 영어로 해 버리는 것 이다.
어느 한인 교회는 주일 11시 예배를 영어로 본다며 목사와 신자들이 나와서 자랑스럽게 영어로 말하며 광고를 하기도 한다. 그러려면 미국 방송 매체에 가서 광고를 하면 될 것이다.
한국 매체에서는 순수한 한국어를 써야 우리말과 문화를 지키고 보급할 수 있다. 게다가 두 가지 언어를 마구잡이로 섞어 쓰는 것은 ‘언어의 쓰레기통’을 만드는 일이다. 프랑스인들이 영어를 잘 하지만, 모든 공문서와 상품 설명서를 프랑스어로 표기하게끔 입법화하여 자기네 말과 문화를 지키고 있다.
항상 외국의 침범을 받았지만 오천년 이상 우리말을 지켜온 한국에서 요새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고 하며 사방에 영어 마을이 생기는 등, 마치 영어가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한심한 현상이다.
한글 맞춤법도 잘 깨치지 못한 어린애들을 외국에 보내 영어를 가르치면서 외화 낭비를 하는 것도 일제 치하 탄압 속에서 악착같이 우리말로 글을 써서 지켜온 작가들로 보면 지하에서 곡을 할 노릇이다.
일단 자기 모국어를 잘 해야 외국어를 잘 구사할 수 있다는 진리는 주지된 사실이다. 유럽이나 남미, 중국 등 문화적 특성이 확실한 나라일수록 외국 문화를 존중할 줄 알기 때문에, 그곳의 한인들은 미주 한인들에 비해 더욱 자신의 한국적 특성에 자신을 가지고 그 사회에 잘 대처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그 나라의 말을 못하거나 적응을 못한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이 확실할수록 남의 문화도 더 잘 소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미주 한인들보다 훨씬 더 정확한 한국어를 구사하고 지켜나가고 있다.
우리 자녀들이 다니는 한국학교는 겨우 한 주일에 서너 시간 한국어와 문화를 가르치는 곳이니, 그곳에서도 미국식으로 “아이들은 놀면서 가르쳐야 해” 하며 시간 낭비를 하지 말고, 부지런히 한 마디 말이라도 더 가르쳐야 할 것이다.
미국의 지식인층과 그 평균 수준은 다른 오래된 대륙의 수준보다 낮다고 본다. 그러니 미국의 보통 수준 학교 교육의 방법을 표준으로 삼으면 안 된다. 미국의 명문이나 사립학교에서는 무섭게 공부를 많이 시키고 있음을 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렇게 공부한 학생들만이 나중에 어려운 경쟁을 뚫고 사회에 진출하고 있음은 또한 현실이다.
그러니 한국어 가르치기도 대단한 열성으로 학교와 가정에서 애를 쓰지 않으면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여기에서 신문, 방송, TV, 비디오와 영화, 공연 문화의 역할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것에서 영어와 한국어를 마구 섞어 쓰고 불순한 한국어를 구사하면, 한인사회의 한국어는 정말 더러워지고 국적 불명의 잡동사니가 되어버린다. 그러니 언론 매체에 종사하는 분들은 무엇보다 사명감을 가지고 순수하고 품격 있는 한국어로 신문과 방송 프로를 제작해야 할 것이다.
시립 도서관과 대학 도서관에서는 더 많은 한국책을 구입하고, 서점들도 베스트셀러 종류만 들여올 것이 아니라, 문학, 역사, 교양 등 전 분야에 걸쳐 수준 높은 책들을 매장에 많이 구비했으면 한다. 그리고 미국 자체 내에서도 한국 출판계에만 의존하지 말고, 값싸고 우수한 한국어 서적을 더 많이 출판해야 할 것이다.
미국에 사는 한국인 모두가 한국어와 문화를 우수하게 지키고 보급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생활 속에서 매일 실천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연행 / 불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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