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잡을 수 없는 이 공포의 정체
1. 총과 카메라.
화가 프란세스 고야(1746-1828)의 ‘5월 3일의 처형’을 볼 때마다 나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한 곳에 머문다. 나는 스틸 블루로 빛나는 총신과 그 총구 앞에 전시된 시체들과 아직 살아남은 자들의 크게 확대된 동공을 통해 죽음의 검은 그림자들을 본다.
아직도 그림 전체를 볼 기개를 품어보지 못한 나는 ‘5월 3일의 처형’ 앞에서 그저 언제까지나, 저 차가운 총신과 함께 얼어 붙어 버린 영원한 시간 속 그 공포의 정체에 온 몸을 사로잡히는 것이다.
1997년에서 1999년 사이 미국에서는 8건의 학원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이 8건의 스쿨 슈팅 사건들 중, 미국인들의 정신에 가장 큰 트라우마를 남긴 사건이 바로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이었다. 총 36명의 사상자를 냈으며, 범인인 두 소년 또한 자살로 마감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 이 피로 얼룩진 전대미문의 총기 사건이, 이후 미국영화판의 주요한 이슈로 부각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주로 ,인디 영화판의 정치적 성향을 띈 감독들을 중심으로, 콜럼바인 사건을 영화하하여 미국시민들에게 문제의 핵심에 대한 자각을 촉구하는 행보를 보여준다.
그리하여,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볼링 포 콜럼바인>에서부터 폴 F. 라이언 감다독의 <홈 룸>, 벤 코치오 감독의 <제로 데이>, 거스 반 산트 감독의 <엘리펀트>와 게리 플레더 감독의 <런 어웨이 쥬어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영화 가 탄생되었다.
영화들은 하나같이 사건에 대한 영화적 재현에 머무르기를 거부하고, 문제에 대한 정치적이고 사회과학적인 재해석에 카메라의 앵글을 맞춤으로써 문제에 대한 더욱 깊은 성찰로 관객을 이끈다.
영화 속 어디에서도 사건을 일으킨 범인들의 개인사와 감정은 찾아 볼 수 없다. 영화는 철저히 문제의 핵심 즉, 총기 소지 법안의 허와 실, 총기 제조 회사의 로비와 정치인들의 야합, 미국인들이 보여주는 총에 대한 판타지적 이미저리, 폭력이 스며든 미국인들의 삶과 폭력에 대한 불감증 등 을 향해 앵글을 밀착시킨다.
1. <볼링 포 콜럼바인>, 왜 미국인은 총에 의지하는가.
마이클 무어 감독만큼 총기 휴대라는 문제의 핵심을 정밀하고도 깊이 있게 성찰하는 이도 드물다. 미국 대통령과 정치인들을 슬랩스틱 코메디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버린 전대미문의 다큐멘터리 <화씨 911>으로 우리에게 더욱 잘 알려져 있는 마이클 무어 감독이 피사체를 향해 들이대는 카메라의 앵글은 약간의 틈새도 허락치 않는 견고함을 보여준다.
언뜻 보면, <볼링 포 콜럼바인>은 콜럼바인 고교에서 벌어진 학원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이클 무어는 오히려 이 끔찍한 스쿨 슈팅 사건을 빌어 더욱 중요하고 깊은 이야기, 숨겨진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그는, 개인으로서의 스쿨 슈터와 희생자들의 이야기 위에 미국인과 총의 애증관계 및 폭력에 대한 불감증이라는 이야기를 덮어 씀으로써 미국이라는 나라가 앓고 있는 고질적인 질병에 대해 적나라한 폭로를 행한다.
영화의 시놉시스는 무척 간단하다. 여기, 1999년 4월 20일 무려 900여 발의 총알로 학생 12명과 교사 1명을 사살한 콜럼바인 고교생인 에릭과 딜런이 있고, 마이클 무어 감독은 이들이 왜 그토록 끔찍한 피의 살육을 벌였는가에 대한 원인을 추적해 간다. 최소한 겉으로 보기엔 그렇다.
마이클 무어 감독 특유의 종횡무진한 카메라 엥글에 잡힌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은 콜럼바인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해, 사우스 파크와 같은 폭력 만화와 영상물, 비디오 게임, 헤비 메탈, 락커 매릴린 맨슨에 이르는 다양한 원인을 진단해 내지만 마이클 무어는 이들의 전문가적 해박함을 단숨에 해체해 버린다.
생각해 보라. 미국은 연간 총기 피살자만 11,127명이라는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기록적인 수치를 보유하고 있다. 이웃나라 캐나다는 미국보다 총기 소지자가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총기 피살자의 수치는 미국에 훨씬 밑돈다는 사실을.
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가? 이것이 바로 무어 감독의 진짜 질문이다.
마이클 무어는 그 원인을 ‘공포’라는 질병으로 진단한다. 미국의 무기 제조 업체와 그들의 로비 대상인 정치가들이 미국인들에게 주입하는 ‘공포’의 이미지와 그것에 길들여지고 세뇌된 미국인들의 존재하지 않는 위험, 상상된 위험에 대한 자기방어가 미국인들로 하여금 그토록 ‘총’에 중독되도록 하는 것이다.
미국의 2억 8천만 인구는 정부와 언론과 기업이 조장하는 공포의 세계에 뼛속까지 길들여져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공포가 다름 아닌 정복의 역사를 시작으로 끊임없이 적을 만들고 죽이면서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라는 사실을, <볼링 포 콜럼바인>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문명화한 21세기, 코스모폴리탄임을 자부하는 미국인들이 서부개척 시기의 황금광처럼 장전된 무기를 소지함을 통해, 오로지 상상된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마이클 무어는, 미국톤 총기 협회(NRA) 회장이며 왕년의 명배우 찰튼 헤스턴과의 인터뷰를 통해, 공포감’과 총기소지의 역학관계를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전형적인 총기소지 자유화론자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는, 왕년의 서부영화 <빅 컨츄리>의 마쵸 총잡이를 통해, 미국인들의 정신이 ‘공포심’과 그것이 만들어낸 ‘총에 대한 숭배 의식’에 얼마나 깊이 잠식당해 있는지를 직설법적으로 말한다. 그것은 미국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이며 질병이라고, 나아가 공포심에 사로잡힌 미국인들이 소지한 총에 의해 세계의 폭력과 공포가 생산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2. <엘리펀트>, 우리의 불감증과 광기를 경계하라.
거스 반 산트 감독의 2003년 작품인 <엘리펀트>는 지나치게 아름다운 비쥬얼로 인해 ‘총’이라는 피사체가 만들어내는 피와 살육과 눈물이 더욱 비극적으로 드러나는, 일종의 역설적 미학의 극치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감독인 거스 반 산트는 이 역설적 미학을 통해 관객들에게 묻는다. 너무나 평범한 어느 시골 고등학교의, 너무나 평범한 학생들의, 또한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상들, 이 모든 특별하지 않은 배경 속에서 그토록 비일상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알콜 중독인 아버지로부터 학대받는 존, 카메라 앵글을 통해 학교를 구석구석 바라보는 관찰자 일라이, 왕따 소녀 미셸, 다이어트에 여념이 없는 치어리더 브리트니와 니콜, 학교의 킹카이며 풋볼선수 네이든의 일상이 카메라 속을 꽉 채우고 있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주문한 총을 전달받고 학교로 향하는 알렉스와 에릭이 있다.
<엘리펀트>는 시작으로부터 절정과 반전을 향해 시종일관 내달리는 방식인 고전적 이야기 전개법을 철저히 무시한다. 다양한 인물들의 다양한 시선에 포착된 총기 난사가 있기 전의 16분간의 일상을 반복적으로 재현하는 다초점 전개방식으로 <엘리펀트 > 는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마치 영화의 제목처럼, <엘리펀트>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와 유사한 다초점 화자 방식을 통해 스쿨 슈팅 사건의 진실을 향해 다양한 차원에서 접근을 시도한다.
중요한 것은 그러나, 거스 반 산트 감독이 <엘리펀트>를 통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곳이 미국사회의 총기휴대에 대한 관용성과 폭력성의 원인을 발견해내는 데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 폭력성이 얼마나 우리의 일상 속에 깊숙이 침투해 있는가에 대한 폭로 또한 더불고 있다는 점이다.
거스 반 산트 감독은 오히려, <엘리펀트> 속에서 고전적 회화 수법으로 재현한 눈부신 일상성을 통해 ,총이라는 물건이 내포하는 모든 폭력적 이미지에 미국인이 얼마나 뿌리깊이 길들여져 있는가에 대한 성찰을 제공한다. 너무나 평화로운 일상을 언제든지 파괴하고 허물어버릴 수 있는 폭력은 우리 곁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아주 사소한 일로 말미암아 균열된 일상의 틈을 파고 들어 인간의 광기를 폭발시킨다는 것이 <엘리펀트>가 말하고자 하는 총과 폭력에 대한 진리이다.
<엘리펀트>의 비판의식은 이것을 훨씬 뛰어 넘어, 학원 총기 난사 사건에 광적으로 집착하고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매스 미디어의 병폐 또한 지적하고 있다. 시청자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고 시종일관 편집증적인 앵글을 들이댐으로써 매스 미디어가 생산해 낸 부정적 영향이 어떤 방식으로 미국인들의 시선을 문제의 본질로부터 이탈시킴으로써 폭력에 대한 공포를 배가시키고 또다른 폭력을 유발하게 만드는가, 하는 더욱 중요한 문제를 제공한다.
거스 반 산트 감독은 일체의 배경음악이나 감정을 배제하고 총소리와 비명 소리만으로 화면을 채움으로써, 살상의 순간이 일상의 순간과 전혀 다를 바가 없음을 보여줄 뿐 아니 라 폭력이 우리 삶 속에 얼마나 깊숙이 침투해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성찰을 유도한다. 산트 감독의 이 독특한 현상학적 재현 방식은 열광하는 미디어와 대척점에 서서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보시오, 광기와 공포와 그것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폭력을 조심하시오. 광기보다는 냉정함으로 사건의 핵심을 쳐다볼 용기를 내시오”라고.
3. <런 어웨이 쥬어리>, 그들의 해피엔딩.
<런 어웨이 쥬어리>라는 영화가 있다. 존 큐삭, 레이첼 와이즈, 진 헤크만, 더스틴 호프만,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한다 하는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런 어웨이 쥬어리>또한 학원 총기 난사에 관한 이야기이다. 존 그리샴의 소설을 원작으로 그레이 플레더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런 어웨이 쥬어리>는 정확하게 말해서, 학원 총기 난사 사건의 희생자 가족들과 회사 총기 난사 사건의 희생자 가족들이 거대한 무기 제조 회사와 판매 카르텔, 그리고 정부를 대상으로 벌이는 법정 투쟁과 연대의 이야기다.
물론, 이 소설이 콜럼바인 총기 난사 사건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탄생된 작품이라는 것은 두 말할 필요 없음에도, 나는 이 속에서 여타의 영화들과의 약간의 차이점을 읽는다.
문제에 대한 단순한 성찰을 넘어 저 너머에 존재하는 그 무엇에 대해 플레더 감독은 말한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우리 자신과 우리의 아이들과 우리의 커뮤니티를 ‘총’으로부터 지켜낼 것인가? 라고.
영화 속 감독의해법은 이렇다. 범인과 희생자라는 구분을 떠나, 사건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과 커뮤니티 전체가 연대하여 무기회사와 정치인들과 총이라는 물체가 구현하는 거대한 폭력에 대항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래서 ,<런 어웨이 쥬어리> 속, 학원 총기난사 사건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희생자 가족들과 회사 총기 난사 사건으로 남편을 잃은 미망인이 거대한 무기 회사를 상대로 벌이는 법정 투쟁을 통해 소리높여 외치는 것이다.
어떻게 미성년자들이 총을 살 수 있었는가? 라고, 어떻게 인터넷으로 총이라는 물건을 살 수 있는가? 라고, 어떻게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총을 살 수 있는가?라고, 그리고, 어떻게 전쟁터도 아닌 평화로운 미국땅 한 가운데서 오토메틱 건을 그토록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가?라고.
1999년 4월 24일, 미국은 코소보 공습을 감행하기로 결정했다. 클린턴 대통령으로 하여금 이 코소보 공습을 결정토록 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인류가 흘리는 피의 댓가로 부를 쌓은 무기 회사와 그들과 경제적 유착관계에 있는 정치인들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렇다고 한다면, 모니카 루윈스키였을까? 혹은 그녀와 클린턴의 관계를 알고 잔뜩 화가 나 있던 힐러리였을까?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사건이 일어나던 날 아침에 있었던 에릭과 딜런의 볼링 게임이 콜럼바인 총기 난사 사건의 원인이라는, 도대체 말도 안되는 논리와 디를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천 번, 만 번 생각하고 자문해 보아도, 정말, 그것은, 아니지 않는가 말이다.
<정영화 기자> drclara@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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