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애덤스와 존 퀸시 애덤스는 미 역사상 첫 부자 대통령으로 유명하다. 두 사람은 이밖에도 각각 자기가 살던 시대를 대표하는 법률가로 역사적인 재판에 관여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1770년 3월 5일 보스턴 주둔 영국군이 주민 다섯 명을 살해한 소위 ‘보스턴 학살 사건’이 일어나자 당시 변호사였던 존 애덤스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영국군의 변호를 맡고 나섰다. 일찍이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창하던 애덤스가 식민지 주민을 살해한 군인을 변호한다는 것은 자칫 정치적 자살 행위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애덤스는 아무리 영국군이라도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한 행위로 살인죄를 저질렀다는 누명을 뒤집어써서는 안 된다는 소신 하에 재판에 임했다. 식민지 주민들로 구성된 배심원은 소수의 영국군을 둘러싼 군중이 먼저 위협을 가해 어쩔 수 없이 발포했다는 그의 변론을 받아들여 지휘관은 무죄, 병사들 2명에게만 과실 치사 혐의를 인정했다.
230년 전 독립 운동이 불붙기 시작한 때 식민지 법원이 이런 판결을 내릴 수 있었다는 것은 미국 사회와 법조계에 대중 선동보다는 공정한 법 집행 전통이 얼마나 뿌리 깊게 내려져 있었는지를 실감케 한다.
존 애덤스의 아들 퀸시 애덤스가 맡은 것은 스티븐 스필버그에 의해 영화로도 만들어져 널리 알려진 ‘아미스타드 선상 반란 사건’이다. 1839년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잡혀와 쿠바에서 스페인으로 실려 가던 50여명의 노예들은 아미스타드 호 선상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그 결과 선장은 죽고 항해사들은 포로로 잡혀 아프리카로 배를 돌리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 항해사들은 낮에는 아프리카로 가는 척 하다 밤이 되면 뱃머리를 서쪽으로 돌려 결국 미 뉴욕 항에 들어왔다. 스페인 정부는 선상 반란을 일으킨 노예들과 배를 즉각 인도할 것을 요구했으며 당시 대통령이던 밴 뷰런도 이에 응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던 일부 인사들이 반기를 들고 나섰다. 이들은 강제로 노예로 끌려온 이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은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행위로 이들을 벌하거나 강제 송환할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1심 법원은 이 주장을 받아 들여 노예들에게 무죄를 선고했으나 연방 정부는 이를 연방 대법원에까지 상고했다.
이 때 흑인 노예들의 변론을 맡아 나선 것이 퀸시 애덤스다. 이미 대통령을 지내고 연방 하원의원으로 일하고 있던 그는 74세의 노구를 이끌고 법정에 서 미국의 건국이념을 거론하며 흑인 노예들의 무죄를 주장했다. 당시 대법원에는 노예제를 지지하는 남부 출신 판사가 9명 중 다섯이나 있었음에도 대법원은 퀸시 애덤스의 손을 들어줬으며 그 결과 흑인들은 자유의 몸이 돼 아프리카로 돌아가는 배에 올랐다.
지난 주 버지니아 텍에서 발생한 최악의 교내 총기 난사 사건을 대하는 미국인들의 태도에서 비록 적이라도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밝힌 존 애덤스와 개인적으로 무관한 노예의 인권을 위해 변론을 편 퀸시 애덤스의 모습을 본다.
만약 한국에서 정신이 돈 미국인 강사가 수십 명의 한국 학생을 사살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에 대한 대답은 5년 전 미군 병사가 과실로 한국 여학생 2명을 치어 죽였을 때 어떤 사태가 일어났는지 기억해 보면 자명하다. 미국은 원래 인디언을 학살하고 흑인을 노예로 삼은 나라며 미군은 한국과 월남에서 양민을 살상했으며 지금도 총기규제 하나 못하는 야만국이라는 글이 온라인을 덮었을 것이다. 전국 방방곡곡이 촛불 시위로 환하고 대통령 선거 결과가 또 뒤집혀졌을지 모른다.
여학생의 사고사를 반미 정치 선동에 이용하고도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나라와 자국민 수십 명의 생명을 앗아간 한인 살인자의 죽음에 오히려 동정을 보내는 나라, 둘 중 어느 쪽이 선진국인지 생각해 보자.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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