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5월4일에 개봉되는 ‘스파이더-맨 3’의 개봉일은 3년 전에 잡아놓은 것이다.
대형영화들 개봉일 선점 경쟁… 3년 후까지 확보
각본·제목도 없이 개봉 날짜부터 잡아
주말 흥행-영화관련상품 통한 선전 노려
007시리즈 22번째 영화는 오는 2008년 11월7일에 개봉된다. 이 영화의 배급사인 소니의 마케팅 배급담당 사장 제프 블레이크는 ‘본드 22’의 개봉일을 이렇게 일찌감치 못 박아 발표했다.
‘본드 22’는 현재 각본도 쓰여 지지 않았고 또 제목도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지난해에 ‘카지노 로열’로 새 제임스 본드로 등장한 대니얼 크레이그가 다시 나오고 개봉일이 내년 11월7일이라는 것 두 가지.
소니가 이렇게 본드 시리즈의 개봉일을 일찍 공개 선언한 것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같은 이 영화를 다른 경쟁작들을 물리치고 가장 바람직한 주말에 개봉하겠다는 의도에서다. 소니는 다른 영화사들에게 연말 할러데이 시즌이 시작되는 11월7일은 우리가 선점했으니 너희들은 그 날을 피해 가라고 경고를 한 것이다.
매 주 평균 12편의 새 영화가 나오고 편당 제작 및 마케팅 비용이 1억달러를 넘는 요즘에 대형 제작비가 든 영화가 이익을 남길 것인지 아닌지는 한 영화의 개봉주말 흥행성적에 달려 있다. 그래서 메이저들은 자사 영화들을 어느 주말에 개봉하느냐를 놓고 서로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다. 할리웃에서 ‘깃발을 꼽는다’는 말로 표현되는 이런 날짜 잡기 게임은 치밀한 작전이 필요한데 멀게는 3년 후까지 내다봐야 한다. 특수효과가 많이 필요한 대형 영화들은 제작기간이 그만큼 더 오래 걸리는 것도 이런 장기작전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
또 영화사들은 제작비의 부담을 덜고 영화 관련 상품을 팔아먹기 위해 패스트푸드 체인 등 대기업과 손을 잡는 경우가 많은데 이 기업체들이 상품을 만들고 선전을 하는 데는 최소 2년이 소요되는 것도 다른 원인이 되고 있다. 버거킹과 장난감 제조회사인 하스보로 등 끼워 팔기 상품이 한둘이 아닌 ‘스파이더-맨 3’의 개봉일이 오는 5월4일로 결정된 것은 지난 2004년이었다. 드림웍스는 현재 제작중인 소년 바이킹에 관한 환상영화 ‘용 길들이기’의 개봉일을 2009년 11월20일로 결정했다.
개봉일 잡기 게임은 장기 두기나 마찬가지다. 지난해 패라마운트는 잭 블랙 주연의 레슬링 코미디 ‘나초 리브레’의 개봉일을 6월2일로 잡아 놓았었다. 그런데 유니버설이 제니퍼 애니스턴과 빈스 본이 나오는 코미디 ‘파경’을 뒤늦게 같은 날 개봉하기로 결정하자 패라마운트는 ‘나초 리브레’의 개봉일을 6월16일로 미뤘다. 그 날은 역시 유니버설의 청소년용 스피드 액션영화 ‘분노의 질주 제3편’이 개봉되는 날이지만 패라마운트는 코미디끼리 대결하는 것 보다는 액션영화와 대결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그 결과 ‘파경’은 빅히트를 했고 ‘나초 리브레’와 ‘분노의 질주’도 좋은 흥행성적을 냈다.
대형 영화사들이 황금연휴 등 대목 주말을 놓고 개봉일 경쟁을 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부터다. 1984년 경우 2편의 공포 코미디인 ‘고스트 버스터즈’와 ‘그레믈린’이 같은 날 개봉됐지만 둘 다 흥행에 성공했다. 메이저가 큰 돈을 들인 자사 영화의 개봉일을 1년여 전에 미리 발표, 라이벌들에게 다른 날을 찾아보라고 첫 경고를 한 것은 워너 브라더스. 워너는 1998년 윌 스미스 주연의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의 개봉일을 1999년 7월4일 미 독립기념일 연휴 주말로 선점, 발표했었다. 그 결과 다른 영화사들이 이 날을 피해 갔지만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는 흥행서 참패했다.
문제는 영화사들마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으로 이들은 모두 경쟁이 적은 주말을 개봉일로 서로 선점하려고 다투고 있다. 같은 관객층을 노린 두 대형 영화가 같은 개봉일을 놓고 충돌하게 될 경우 어느 한 영화가 양보하게 마련인데 그럴 경우 제3의 영화에까지 연쇄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뉴라인은 제작비 160만달러를 들인 니콜 키드만과 대니얼 크레이그 주연의 환상영화‘황금 콤패스’의 개봉일을 오는 11월16일로 잡아 놓았었다. 그런데 패라마운트가 로버트 즈메키스 감독의 호화 캐스트가 나오는 초대형 환상 대하극‘베오울프’를 역시 같은 날짜에 개봉한다고 발표하면서 뉴라인은‘황금 콤패스’의 개봉일을 12월7일로 미뤘다. 이에 따라 소니는 12월7일에 개봉하기로 했던 환상영화‘워터 호스’를 크리스마스에 개봉하기로 결정했다.
비슷한 개봉 날짜를 놓고 같은 관객을 겨냥한 같은 종류의 영화가 서로 버티다가는 어느 한 쪽이 피를 보게 마련이다. 지난해 워너 브라더스는 만화영화 ‘앤트 불리’를 7월28일에 개봉했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보다 1주 전에 개봉한 만화영화 ‘몬스터 하우스’와 그보다 1주후에 개봉한 ‘반야드’ 사이에 끼어 셋 중 꼴찌의 흥행 성적을 낸 바 있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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