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고향의 꼬마들과 다시만나 뛰놀던 시간들. 전쟁도 무색할 정도로 우리들이 즐기던 예쁜 시간들 앞에 또다시 이별이 왔다. 서울로 환도할때까지 고향에 머물기로 했던 우리 가족들은 혼자서 이산가족으로 지내는 아버지의 불편함을 더이상 지속할 수가 없었다. 결국 우리는 아버지의 직장이 피난 내려와 있는 청주로 이동을 하게 되었다. 친구들은 나로 인한 두번째의 이별에 아예 말을 잃고들 있었다.
“공부만 생각하자. 3년간 공부에만 매진하자. 그리고 3년후에 서울 대학에서 우리는 만나는 거다.”
결국 나만 구국 선언문을 선포하듯이 무거운 이말을 남기고 예산을 떠났다.
예산에는 <무한천>이 흘렀는데 청주에는 <무심천>이 있었다. 친구들에게 향한 그리움을 외면한 듯 무심천이 있었다. 무한대로 펼쳐져 있는 것 같았던 예산에서의 꿈, 그 미래의 청사진. 청주는 그져 무심하기만 했다. 고등학교 선생 대부분은 서울에서 피난 온 대학 교수들이었고 학생들의 수준도 대학생과 같았다. 전쟁의 와중에 건너 뛴 1년여의 공백까지 합쳐 나는 암흑의 동굴속에 있는것 같았다.
나의 존재란 그저 움직이는 물체에 불과했다. 학년이 바뀔때 마다 앞에 버티고 서서 친구들을 선택했던 나, 교장실에 한대 밖에 없던 피아노를 수시로 드나들며 치던 나의 특권, 모두 다 전설의 고향이었다. 청주 토박이가 주류를 이루고 서울의 명문 여고에서 피난 온 뛰고 나르는 애들 사이에서 나는 듣도 보지도 못한 책장만 혼자 넘겼다. 이런 세계속에 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상상밖의 일이었다. 나는 가족과 헤어져 혼자라도 예산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힘있게 고개를 저었다.
6.25 전쟁에서, 그 폭격속에서도 가장으로 승리했던 나, 패잔병으로 고향에 돌아갈 수가 없었다. 나는 암흑의 동굴속에서 책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패배>는 나의 인생사전에 없다, 나는 승리하고야 말거다. 나는 입술이 타들어가는 전투를 개시했다. 그리고 학기 중간에 치룬 첫번째 시험에서 100점을 맞았다. 그것도 영어 선생이 100점짜리 4명을 일일히 호명한 것이다. ‘쟤는 누구지?’ 자리에서 내가 일어나자 모두들 고개를 갸웃둥하며 눈으로, 서로들 묻고 있었다. 나는 입학하고 나서 처음으로 반 전체를 개선장군같은 표정으로 둘러보았다. ‘너희들, 이제 내가 누군지 알겠지?’ 나는 버티고 서서 몇번이나 둘러보며 눈으로 답했다. 그리고 이어서 음악이론 시험, 국어 시험…, 계속 나는 100점에 호명되었다. 반 애들에게 확실히 각인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6.25때의 냉차와 참외장사 기간 정도에 불과했다.
“너, 피아노 칠줄 아니?”
학기 중간 시험발표가 끝난 무렵에 이수미라는 애가 내게 와서 물었다. 전교생 행사때면 피아노를 반주하던 아주 귀엽게 생긴 애였다.
“물론이지. 초등학교 학생 전체에서 나만 쳤다. 교장실에서. 왜?”
나는 어깨를 쫙 펴고 웅변조로 대답했다.
“방과후에 강당에서 피아노 연습을 하는데 너도 함께 있어 줄래?”
나와는 달리 수미는 사랑스럽게 말했다.
“글쎄…”
나는 여전히 교만하게 버티었다.
“연습후엔 빵집에 가서 빵도 먹고…”
“빵집가면 걸리잖니?”
“괜찮아. 나는 매일 가는데…내가 빵도 사주고, 그리고 우리집에 가서 놀자.”
말하는 수미가 하도 귀여워서 나는 웅변조의 목소리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너 정도면 내가 놀 수 있지.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했지만 겉으로는 그져 고개만 끄덕였다. 아마도 나보고 선택해라 해도 너였을 것이다, 나는 강당에서 만나기로 하고 교실을 나왔다.
“너, 정혜성이지?”
나를 기다리고 있었듯이 복도에서 한애가 또 내게 다가왔다.
“너에 대해서 이야기 많이 들었어. 나는 <선>반의 최은영이야. 나도 시골 <음성>에서 왔어. 방과후에 나의 자취방에 가서 저녁도 먹으며 함께 공부하지 않을래?”
실은 나도 최은영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내가 <진>반에서 100점으로 호명되듯이 은영이는 <선>반에서 계속 호명되었다. 그러니까 나와 은영이는 100점의 호명으로 인해 비로서 알려진 인물들이었다. 때문에 청주에 비해서 훨씬 시골인 예산에서 온 나와 음성에서 온 은영의 이야기는 양쪽 반 애들의 화제거리였다. 누구집의 자식인것까지도 밝혀졌다. 은영이는 음성 갑부의 딸로 아버지가 의사라는 것, 그리고 얌전하고 단아한 애라는 칭찬도 돌았다. 호감가는 은영의 이야기와 달리 나는 튀기같이 생긴게 보통이 아닌 계집애라는 말들이 퍼져 있었다. 어쨌거나 은영이 역시 내가 선택할 애인것은 분명했다.
“나도, 너 만나보고 싶었다. 함께 공부하자. 그런데 오늘은 강당으로 가서 이수미의 피아노 치는 것 듣다가 빵집에 가기로 했다. 너도 그럴래?”
“빵집은 못가게 되어 있는데…, 너도 가지마. 그리고 수미는 놀기만 하는 애잖니? 난 그애하고는 친구 안해.”
“그래, 그러면 너하고는 공부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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