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뚱이를 끌고 가고 오고 말하는
그러나 알 듯 알 수 없는 이것은… 이뭣꼬?
참선 참가기.
실은 그걸 쓰고 싶었다. 십분도 견디지 못할망정 시늉이나마 내보고 싶었다. 다른 때 다른 곳에서 해본 얼치기명상이나 단전호흡의 알량한 여운을 그때 그곳 그분들의‘참선’에다 들씌우고 싶지 않았다. 그건, 기사의 진정성 문제를 떠나, 이 일로 저 일로 월화수목금 닷새동안 야금야금 뭉턱뭉턱 미뤄둔 몫까지 더해 푹 자고 실컷 자도 모자랄 토요일 새벽에 그 달콤한 잠의 유혹을 뿌리치고 찬 공기 꽉 찬 법당을 찾아 움쩍없이 고행(?)하는 그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참선 참관기.
막상 때(토요일 오전 6시-8시)와 곳(산타클라라 대승사)을 알고나니-그건 얼추 알고 있으므로 ‘실전취재를 해보마고 마음먹고선’-금세 기가 꺾였다. 금요일 밤늦도록 행사가 있는데 토요일 새벽이라…밀밸리에서 산타클라라까지 보통 먼 거리가 아니라…. 어디서 나타났는지 핑계란 괴물들이 와락 들러붙어 기를 꺾었다. 그래, 참가기 대신 참관기라도. 북가주 참선모임 수선회(修禪會) 리더인 박선흠 박사에게는 시작 뒤 한시간쯤 지나 7시쯤 도착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참선 훼방기.
지난 9일(토) 아침. 길은 뻥 뚫렸다. 차는 휙 달렸다. 그래도, 기껏 눈을 떴다 도로 감고 한참, 부스스 뒤척이다 스르르 다시 엎어져 한참, 뭉그적 어기적 보내버린 시간을 되돌린 순 없었다. 대한불교 조계종 통도사 포교원 대승사(주지 정윤 스님)에 헐레벌떡 다다른 것은 7시30분쯤.
간밤에 내린 비를 흠뻑 마신 덕분일까. 앞마당 오른쪽 큰나무는 겨울고목답지 않게 푸른잎 무성한 가지들을 흥청낭창 뽐냈다. 봄여름가을 늘 마른 조개껍질 같았을, 벗겨지다만 아랫도리 껍질들에도 빗물이 배어 제법 촉촉했다. 마당 왼쪽 작달막한 대나무 14그루는 ‘대쪽같이 홀로서기’엔 아직 어린 탓인지 몇가닥씩 내뻗은 가느다란 실가지에 서로 의지한 채 실바람을 이겨내고 있었다. 그 좁고 여린 잎사귀를 타고앉아 위태위태 모양을 유지하거나 잎사귀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여태 안떨어진 빗물방울이 꽤 많았다.
조용했다. 오가는 차가 드물어 더 조용했다. 인도에서 문앞까지 여나믄 걸음을 걷는 동안, 물기 묻은 바닥에 신발 바닥이 끈적끈적 붙었다 떨어졌다 꽤 거슬렸다. 안쪽 풍경을 짐작하는지라 호흡을 다잡으며 살짝 들어올리듯 문을 열었다. 빗물이 들쳐 적이 묵직했다. 물 먹은 문이라 무참한 삐걱 소리는 내지 않았다. 꼿발로 들어선 뒤 슬며시 내려놓듯 닫았다. 아무래도 절간은 목재마루라야 더 어울린다 생각했지만 이때만은 카펫마루인 게
다행스러웠다.
고요했다. 복도를 따라 법당문 바로 앞까지 다가가니 더 고요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열린 법당문 밖에서 눈으로 헤아렸다. 구석에 앉은 이들까지 마저 헤아릴 요량으로 살금살금 법당안에 들어섰다. 아뿔싸, 딴에는 조심한다고 느릿느릿 엉거주춤 팔자걸음을 옮기는데도 바짓가랑이끼리 사사삭 부딪히는 소리가 그렇게 시끄러운 줄 미처 몰랐다. …아홉 열 열하나 열둘. 열한명은 불상이 모셔진 쪽을 뺀 나머지 벽을 마주하고 (복도로 이어지는 문쪽이 비어) 이빨 빠진 ㄷ자형으로 앉아 있었다. 최고참 최정일 옹은 유일하게 면벽 대신 불상 맞은편 벽을 등지고 앉았다. 그의 눈은 반쯤 떠 있었다. 반쯤 감겨 있었다. 약간 내리깔았(렸)다. 두근두근 그의 눈치를 살폈다. 외인의 잠입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동조차 없었다. 하물며 면벽한 열한명이야….
엉거주춤 선 채로 카메라를 들어 각도와 밝기를 맞추는 데 이번에는 겨드랑이 옷자락의 부시럭 소리가 가뜩이나 팽팽한 신경줄을 더욱 잡아당겼다. 안그래도 카메라를 켤 때 나는 소리에 이미 찔끔했었다. 그러나 어쩌랴. 숨을 죽이고 침을 삼켰다. 살포시 셔터를 눌렀다. 그렇다고 기계가 침묵할 리 없었다. 찰카닥. 숫제 우당탕 천둥 같았다. 누구 하나 내꿋도 하지 않았다.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한번 더 찰카닥. 더 찍을 용기가 확 달아났다. 20여분이나 남았다. 그대로 서 있을 수는 없었다. 뒤늦게 끼어앉아 시늉한다는 건 남세스런 노릇이었다. 한호흡에 한걸음씩, 바짓가랑이 굉음을 가까스로 다스리며 복도로 귀환했을 땐 목덜미 등줄기가 끈적거렸다. 혜국 큰스님이 젊은 시절 깊은 산중에서 왜? 어째서? 한참 참구를 하고 있다 누군가 내지른 야호- 외침에 ‘에이, 그 녀석 설사나 해버려라’
막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던가.
복도는 여전히 고요했다. 쭈그려 앉는 데 꽤 긴 시간이 흘렀다. 졸지에 훼방꾼이 된 민망함을 가늘고 긴 호흡으로 겨우 다독거렸다. 그런 류의 고요를 가르는 시계침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아닌 게 아니라 벽시계가 안보였다. 슬며시 법당 안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대로였다. 손을 짚고 목을 쭉 빼 빙 둘러보았다. 다들 그대로였다. 불상의 엷은 미소도 그대로였다. 줄지어 걸린 연등들도 부동자세 그대로였다. 바람이 없으니 공기도 없는 듯했다. 멍하니 바라보고 간간이 둘러봤다. 또 그대로였다. 목덜미 등줄기 옅은 땀이 식은 뒤에야 공기가 상당히 차갑다는 걸 알았다. 시리기까지 했다. 열두명의 온기는 각각의 몸 안에만 머무는가. 복도 맞은편 뒤뜰로 향하는 창문이 알게 모르게 밝아졌다. 모든 것이 정지된 그곳에서 시간만은 시간만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걸 그제서야 깨달았다.
7시50분. 수시로 들여다본 손목시계가 그 즈음을 가리켰다. 10분만 더 기다리면 된다는 생각과 10분이나 더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이 문득 엇갈리는가 뒤엉키는가 싶더니 생각의 물꼬는 이내 저 열두명 쪽으로 되돌아갔다. 다리 허리 목은 괜찮을까, 졸리지 않을까,정말 뭐가 보일까 등등 처음에 은근히 품었던 겸연쩍고 염치없는 망상들은 그 이전에 하나둘 자취를 감춘 터였다.
왜? 어째서?
물음들이 돌고돌 때 바깥길에서 자동차 지나치는 소리가 간만에 들렸다. 찌지직. 물기 찬 아스팔트를 구르는 소리는 적당히 붙은 스카치 테입이 가지런히 떨어지는 소리 같았다. 앞마당 댓잎에 매달린 빗물방울들이 우수수 떨어졌을 것이다.
복도 맞은편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에 법당이 제법 환해졌다. 그러나 물음들의 답은 여전히 환해지지 않았다. 법당의 잠입꾼이 얼른 도망치지 않고 복도의 구경꾼으로 남은 까닭은 저 열두명으로부터 그 해답(의 한자락)이라도 들으려던 참이었다.
이뭣꼬?
저 열두명은 왜? 어째서?
이뭣꼬?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북가주 참선모임 수선회 탐방기 하편(엿듣기)은 28일자 종교섹션에 이어집니다.
사진/ 지난 9일 아침 산타클라라 대승사에서 토요 참선모임을 가진 ‘수선회’ 회원들. 왼쪽부터 이상현, 박성수, 여경, 박선흠, 김무구심, 최정일, 이창석, 이종호, 김형찬, 최인엽, 안재성, 최규현 씨. 이 사진은 오전 6시부터 8시까지의 면벽참선을 끝낸 뒤 기자의 요청에 따라 연출포즈를 취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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