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의술이 수많은 환자들에게 삶의 희망을 심어주고 있는데 정작 가장 약한 노인들을 위한 노인병학에 대한 관심은 시들하다.
마가렛 폴리(97)는 간밤에 갑자기 정신이 혼미해졌다. 소변도 볼 수 없었다. 가족들은 폴리를 응급실로 옮겼다. 의사는 수술을 권유했다. 하지만 폴리의 나이에 수술을 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다행히 폴리는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됐다. 마운트 사이나이 메디칼 센터의 노인병학자인 로젠 라이프치히 박사를 만난 까닭이다.
라이프치히 박사는 단순 감염이라고 진단했다. 통상 노인들에게서 나타나는 열이 없었기 때문이다. 폴리는 공연히 수술대 위에 올라갈 뻔했다. 항생제를 복용한 뒤 폴리는 며칠 뒤 완쾌됐다. 가족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만일 라이프치히 박사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했다. 노인병학을 전공한 의사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65세 이상 노인 5,000명 당 1명 꼴
전국 145개 의대 중 노인병학과 9곳 뿐
‘첨단의술 시대’ 스타 꿈꾸는 의대생들 기피
연봉 15만달러 ‘바닥권’…심장내과의는 40만 달러
베이비부머 고령화로 노인병학 전문의 양성 시급
노인 인구가 점점 늘어나고 폴리와 같이 노인병학 전문의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실제 노인 전문의는 태부족이다. 노인전문의는 수입이 적어 의대생들에게 인기가 없다. 첨단의술의 시대에 수퍼스타가 될 가능성이 없다는 게 기피 이유 중 하나다.
사실 노인병학은 “적은 게 좋다” 모토를 가르친다. 수술을 하기보다 어떻게든 일반적인, 그리고 손쉬운 방법으로 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모색한다. 대상이 노인이기 때문이다. 강한 약을 투여하면 부작용이 생기고 회복이 더디며 자칫 마취를 잘못했다간 영영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2005년 현재 65세 이상 노인 5000명 당 전문의가 1명꼴이다. 이 비율은 시간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는 게 의료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미국 내 145개 의대 가운데 노인병학과가 있는 곳은 불과 9곳뿐이다. 노인병학 강좌를 필수과목으로 정한 곳도 아주 드물다. 대학병원에서 졸업한 인턴들이 노인병학을 수강한 시간이 평균 6시간에 그쳤다.
수요와 공급에 불균형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예일 의대의 경우 한 해 내과 레지던트 45명 가운데 단 한 명만이 노인병학 전문의였다. 심장내과, 종양학 전문의는 줄을 서 있는데 말이다. 오클라호마 의대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학교는 의대생들에게 노인병학 강좌를 4주간 들도록 요구하고 있다. 학생들은 강좌가 들을 만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정작 전문의가 되겠다는 학생은 찾기 어렵다. 10% 미만이다.
노인병학은 아주 복잡하다. 어렵다. 단순히 약과 주사, 또는 첨단 의술을 기계적으로 동원해서는 안 된다. 약의 부작용을 면밀히 따져보아야 한다. 당뇨, 치매, 골다공증 등 노인들이 대체로 앓는 병들은 복합적으로 심신을 지배한다. 이를 조화롭게 관찰하고 진단하며 치료해야 한다. ‘치료’라기보다 ‘관리’라고 하는 게 더 나은 표현일 것이다. 종합 의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별의별 신경을 써야 하지만 정작 수입은 바닥권이다. 심장전문의는 보통 연 40만달러를 버는데 반해 노인병학 전문의는 15만달러 수준이다. 동료 레지던트들은 저마다 돈을 좇는데 애미트 샤는 존스 홉킨스 의대 노인병학 전문의 과장을 선택했다. 주위의 반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전액 장학금을 받고 들어갔다. 일단 다른 학생들과 달리 공부하느라 빚을 지지는 않았다.
샤는 “병원의 복도를 지날 때 지도교수가 고개를 흔들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왜 그런 어리석은 결정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투로 말을 할 때 마음이 아팠다”고 회상했다. 샤는 지도교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노인병학은 아주 복잡한 전문분야다. 단순히 의학적인 치료만을 하는 게 아니라 환자의 사회적, 심리적 상태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진단하고 치료해야 한다. 그러므로 의대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선택해야 하는 분야다.”
노인병학이 돈이 되지 않는 이유는 첨단의술을 많이 쓰지 않는 데 있다. 이것저것 기기를 사용하고 치료과정을 잘게 나누어야 청구할 수 있는 액수가 커진다. 그런데 노인병학은 과정을 단순화한다. 일반적으로 환자가 아프다고 하면 불필요한 수술까지 권유하는 의사들이 있다. 돈을 벌기 위해서다.
그러나 노인병학 전문의들은 다르다. 하지 않아도 될 수술은 절대 권유하지 않는다. 노인들에게 커다란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으니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러나 이러다보니 수입이 늘지 않는다. 첨단 의술을 활용해 의료계에서 이름을 날리고 싶어 하는 젊은 의대생들이 노인병학을 기피하는 또 다른 이유다.
<뉴욕타임스특약-박봉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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