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토리 지역 바닷가 10마일 구간에 형성
높이 200피트, 한 가운데 오아시스 같은 큰 샘
‘영감 주는’국립공원에 외국관광객들도 많이 몰려
인근항구 방파제로 조류변화고 잡초 늘면서 언덕 훼손
지역주민들 잡초 제거하며 ‘명물 살리기’ 3년 캠페인 동참
일본 도토리 지역에는 바다를 끼고 10마일이나 길게 늘어선 관광명소가 있다. 그저 관광명소가 아니라 일본인들에게는 ‘영물’로 여겨지고 있다. 높이는 200피트까지 된다. 그리고 위에는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큰 연못이 있다. 일본인들이 아끼는 이 명물은 바로 데스밸리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모래언덕이다. 황금빛의 모래언덕이다.
마치 조각품과 같다. 그리고 바닷바람에 의해 모양도 조금씩 변한다. 외국 관광객들에겐 일본에 들러 꼭 한번 거닐어 봐야 할 곳으로 추천되는 장소다. 20세기 초 한 소설가가 이 곳을 찾았다. 그리고 모래언덕에 대해서 글을 썼다. 그리고 이 소설가는 연인과 함께 동반 자살했다.
십 년 뒤 소설가 고보 아베가 모래언덕을 구경 갔다. 그리고 영감을 얻어, 이젠 일본에서 불후의 고전이 된 ‘모래언덕의 여인’을 썼다. 모래언덕 위에 생긴 연못에 기괴한 여성이 혼자 살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 처럼 아름답고 영감을 주는 모래언덕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조류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잡초 등이 자라면서 모래언덕이 자유자재로 모양을 바꾸질 못한다. 잠식당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정부는 사하라부터 고비 사막에 이르는 황량한 사막지역이 확대되지 않도록 나무심기를 장려한다. 그러나 도토리 지역 공무원들은 생각이 다르다. 어떻게든 모래언덕을 보전하길 열망한다. 주민들과 합세하고 있다. 하루는 자원봉사자 40여명이 모래언덕에 올라갔다. 비닐봉지를 하나씩 손에 들었다. 모래언덕의 아름다움을 해치는 잡초 등을 제거했다.
모래언덕 보전 캠페인은 3년 동안 실시된다. 캠페인에 참가한 가정주부 미치코 오가와(57)는 “예전과 같지 않다. 아름다웠던 모래언덕이 제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모래언덕은 지난 수년간 수만 입방 야드나 줄어들었다. 인근에 새롭게 형성된 해안에 방파제를 쌓는 바람에 조류가 변하면서 모래가 해안으로 충분히 밀려들어오지 않고 있다. 그리고 신선한 모래가 부족함에 따라 기후변화가 생겨 비가 많이 오게 됐다. 그리고 자연스레 잡초들이 무성하게 됐다.
토시아키 오타(50)는 “자연의 균형이 깨진 것 같다. 만일 잡초를 제거하지 않으면 조만간 모래언덕이 잡초가 무성한 지역으로 변할 것이다. 생각만 해도 두렵다”고 했다. 모래언덕은 내륙 산들에서 쓸려 내려오는 모래들이 일단 일본해로 흘러가고 조류가 이를 다시 해안으로 밀고 들어오면서 형성된 ‘작은 사막’이다.
그런데 1980년대 인근 항구에 대형 방파제가 세워지면서 조류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이다. 더 이상 모래를 다시 해안으로 몰고 들어오는 조류가 없는 것이다. 항공촬영 사진에 의하면 해안도 1947년부터 2003년까지 약 130피트나 짧아졌다.
모래언덕을 보전하려는 사람들이 팔소매를 걷었다. 보트 2대를 동원해 방파제 밑의 모래를 파냈다. 이를 모래언덕 해안으로 옮겼다. 방파제 밑 둥에 조류가 제대로 와 닿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 효과는 아직 속단할 수 없다.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 모래언덕은 지난 수백 년 동안 지역주민들에게 ‘영적인 존재’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20세기 초 들어서 그 이미지가 변했다. 도토리 중앙도서관 부관장인 하지미 니시토(53)의 말이다.
1923년 소설가 다케오 아리시마가 도토리에서 강연을 하기 위해 현장에 갔다. 그는 여성 팬이 많은 소설가였다. 그는 이 모래언덕에서 시를 썼다.
모래언덕 한 가운데 섰을 때 심한 고통을 느꼈다고 했다. 유부녀를 사랑하고 그 가정을 파탄시킨 혐의로 소송을 당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다. 이 시를 쓴 뒤 몇 주 지나 아리시마와 유부녀는 이 모래언덕에서 함께 목을 매 자살했다. 이 사실이 퍼지면서 모래언덕은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2차 대전 이후 일본 정부당국은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이 모래언덕을 농토로 바꿔 야자수를 심으려 했다.
그러나 결국 이 지역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그 이후로 일본인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관광객들이 모래언덕 구경에 나섰다.
오사카에서 월급쟁이로 일하던 겐지 오타(65)는 여배우나 사물을 찍던 것에 염증을 느꼈다. 그래서 1966년 처음으로 이 모래언덕에 와 보고는 매료됐다.
아예 이 곳으로 이사를 했다. 1980년대 중반 이 곳에 ‘스마일’이라는 여인숙을 차렸다. 시간만 나면 모래언덕에 올라가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뉴욕타임스특약-박봉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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