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성이 살고 있는 곳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며 보스톤으로, 뉴욕으로, 샌프란시스코로 나의 거주지역을 해마다 찾아 주시던 선생님, 이제는, 선생님을 잉태하고 탄생시킨 하동 땅에 제가 와 있습니다. 지리산 자락 섬진강 변에서, 선생님과 함께 했던 순간들 같이 벗꽃이 훗날리는 이 곳에서, 배 꽃 같은 환상에 젖어 선생님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보고계신가요, 선생님.”
나의 말을 끝으로 장래는 술렁이고 우리는 야식이 준비되어 있는 호텔로 향해 차를 탔다. 차는 ‘화개십리벗꽃’이라는 길을 지나갔다. 섬진청류와 화개동천 25km 구간을 하얀 눈처럼 피어난 벗꽃 길. ‘어느 때 죽고 싶으냐고 물으면 별들만 노래하고 지상엔 모든 음향이 일제히 정지했을 때라고 대답 할 수 밖에 없다’고 스페인 내란 때 죽은 시인 가르시아 로르카의 시 구절을 작중인물을 통해 인용했던 그. 하늘엔 별들이 노래하고 있었다. 지상의 음향도 고요한 속에 흰 눈 같은 벗꽃잎들이 시야에 훗날렸다. 그가 태어난 4월의 하동, ‘화게십리벗꽃’길.
사후에도 나를 불러 아름다움에 취하게 만든 ‘나림 이병주’. 밤을 지새며 하동의 명물을 맛보게 했다. 최참판댁으로, 이병주 문학관 건립현장으로, 그가 생전에 밟았을 땅을 나도 거닐게 했다. 수려한 산 중턱은 이미 공사가 시작되었고 조감도가 입구에 붙어 있었다. 그 곳에서 바라보는 마을은 벗 꽃과 배 꽃이 그와의 시간들 같이 피어 있었다.
“감사합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까지 와주셔서.”
숨이 멎을 만큼 닮은 그의 아들이 내게 다가왔다.
“조감도, 보시기에 마음에 드십니까?”
내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묻다니 대를 이은 과분한 질문이었다.
“어저께 차에서 내리실 때 담박에 알아보았습니다. 아버지 유품을 정리 하면서 사진을 많이 대한 탓인지 금방 알았습니다.”
나는 그리움에 짓눌려 그 빈 터에 주저 앉을 것 같았다.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거인의 생전에 나는 어떻게 대접했는가, 죄스러움과 그리움이 뒤범벅이 되어 무거운 무게로 나를 아프게 했다.
“정혜성 선생님의 이야기는 많이 듣기도 했지만, 어제 밤 단상에서 말씀하실 때 저도 울었습니다. 아버지께서도 천상에서 들으셨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어리석은 우리 인간들, 옆에 있는 그 많은 시간 속에서는 제멋대로 행동하고 떠난 다음에, 지상에서 더 이상 볼 수 없을 때 비로서 깨닫게 될까요. ‘사랑이라는 미명’아래 언어의 폭력을 휘두르고, 다시는 볼 수 없을 때 가슴을 쥐어짜며 애통하는 것일까요. 나는 그 아들을 바라보며 마음 속으로 사죄를 했다. 그는 웃고 있었다. 나의 온갖 심술에도 웃던 ‘나림 이병주 선생님’ 같이.
나는 일행과 함께 서울로 가는 대신 제주도 행 비행기 예약을 부탁했다.
“제주도에 볼 일이 있으십니까?”
아들과 일행이 물었다. 나는 오직 이병주 문학제를 위해서만 한국에 왔을 뿐이다. 하지만 이 애련한 마음으론 돌아갈 수 가 없었다. 마침 ‘있을 동안’이라는 아시아나 항공 지점장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제주도에 있을 동안 한번 다녀가라는 지점장의 초대. 나는 외딴섬으로 가서 단 몇 일이라도 쉬고 싶어졌다. 아니, 나의 의지가 아닌, 어쩌면 고인이 나를 제주도로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고인은 생전은 물론이고 사후에도 나를 절묘하게 여행을 시켰다. 나는 그 것을 알 수 있었다.
제주도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지점장은 한 손에 우산을, 한 손엔 노란 장미를 들고 나를 맞이해 주었다.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고 얼마나 놀라고 기뻤던지요. 결국은 저의 초대에 응답하신 것 아닙니까. 제주도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그러면서도 지점장은 나의 예고 없던 제주도 행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듯 했다. 차에 탈 때까지 몇 번이나 고개를 돌려 그 이유를 물을 듯 말듯 우산을 든 손만을 움직였다.
“쉬기도 할 겸, 나의 친구가 제주도에 ‘있을 동안’와 보고 함께 시간을 갖기로 했어요. 위로도 받고 싶고….”
아, 그랬군요. 지점장의 얼굴이 펴졌다.
“제가 바로 그 사람 이라는 거죠. 알았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서귀포 시 롯데호텔까지 가는 내내 비는 내렸다. 안개가 몰려오고 몰려가는 사이로 만발한 유채화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사이사이로 철쭉 꽃이 내 눈을 붙들기도 했다.
“이병주 선생님의 문학제에 오셨다니…, 많이 생각 나시겠습니다.”
하동에서 흰 눈 같이 날리던 벗 꽃도 눈에 들어왔다.
“생전에도 거인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대접을 해드리지 못했던 것이 아파서요.”
“고인에게는 누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남은 자 모두의 아픔입니다. 아무튼 잘 오셨습니다. 풍차가 있는 전망 좋은 곳에 방을 잡아 놓았습니다. 쉬시면서 제주도도 한 바퀴 돌고, 맛있는 것도 많이 드시고….”
“고마워요. 제주도에 계셔서….”
“하~, 제주도로 발령이 났을 때는 유배를 떠나는 기분이었습니다. 이제는 보람을 느낍니다. 선생님의 오늘을 위해서 제가 미리 와 있었나 봅니다.”
A로 인해 아픈 가슴을 B가 달래는 인간관계. C가 떠나면 D가 남아있고, 그리고 내가 떠난다. 그러면서 삶은 이어진다. 오늘도 지구촌 곳곳에서 지상을 떠났고, 또한 출생의 울음소리가 도처에서 터졌을 것이다. 태어날 때는 본인이 울고 떠날 때는 주위가 운다. 떠난 자의 주변은 슬픔에 젖어있고 태어난 자의 주변은 기쁨으로 웃음 꽃이, 벗 꽃 같이 휘날린다.
“유채 꽃 정원에 동화 속의 집 같은 전복식당도 예약해 놓았습니다. 호텔에 짐을 내려놓고 그 곳부터 가시죠.”
산 자들은 먹는다. 하동 땅에서도 먹었다. 재첩국도, 흙 돼지 오겹살도 소주와 함께 먹었다. 떠들기도 하고 웃음도 터뜨리며, 아픈 가슴은 서로 숨긴 채 거인이 흘린 이삭, 머리 속에서 자라는 이삭의 말과 글을 인용하며, 밤을 지새면서 먹었다.
“정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놀란 와중에도 그 식당이 떠오르더군요. 전복 같은 야릇한 음식을 좋아하시는 것이 생각나서. 제주도에 오셨으니 더욱 더 전복부터 드셔 야죠.”
산 자들의 특권. 맛있는 것을 먹고 아름다운 곳을 돌아다니고. ‘사랑이라는 미명’으로 투정을 부리고, 살아 있는 자들은 무엇이나 할 수 있다고 자만이다. 죽음은 타인의 것이고, 나는 살아 있음에 특권을 행세한다. 조각 같은 전복껍질 위에 가스런이 얹혀 나온 작은 전복들을 나는 잔인하게 먹었다. 혀에서 녹는 그 맛이 목을 타고 넘어 갈 때 마다 눈물도 함께 삼켰다. 전복을 유난히 좋아하던 하동 땅의 거인을 생각하며. 하루도 술을 마시지 않고는 모든 것이 정지되어 있듯이 즐기던, 하동의 땅 속에 있는 그 거인을 그리며 술도 마셨다.
“맛이 어떻습니까?”
지점장이 물었다.
“이렇게 맛있는 전복은 처음이예요. 더구나 유채 꽃 정원에서 술과 함께 먹는 전복은 예술이예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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