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삶
▶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마음이 두근두근한 채로 윤동주 시인 심포지엄에 갔습니다. 초청장을 받은 이후 크나큰 기대와 호기심으로 들떠있었습니다. 먼길을 오면서 좀 서글퍼지기도 했습니다. 시를 좋아할 만한 친구들을 수소문하여 전언을 했어도 모두 동행을 할 수 없다고 해서 다소 소침해졌던 것입니다. 사실 윤동주 시인 하면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저려오고 슬퍼지는데 말입니다.
물론 아시다시피 이민자들은 모두 시인의 마음을 갖고 있지만 정작 시나 문학을 대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흔히 여유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마음이 강팍해져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10여 년 전에 선교일로 용정에 간 일이 있습니다. 제일먼저 생각난 것이 어렸을 때 들었던 시인의 자취를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우연하게 용정 중학교에 들러 시인의 시비를 대하게 되었습니다. 무척 반가웠습니다. 시간에 쫓기면서도 시인의 묘소도 찾아갔습니다. 한참 허물어져 가는 밭 같은 들을 지나 초라하게 자리한 시인의 묘소를 뵈었습니다. 잡초가 주위에 무성히 자라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는 까맣게 잊고 말았습니다.
문을 들어설 때 막 순서가 시작되었습니다. 문 밖에 앉아 스크린을 통해 절절이 들려오는 시인의 마음을 가슴에 담았습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 나듯이/ 내 이름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라는 시 구절을 보며 마음이 축축이 젖어옴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일본인에 대한 울분이었습니다.
마지막 연사로 선생님은 떠듬떠듬 한국어로 인사를 하셨습니다. 문밖에선 선생님을 뵐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시인의 일본유학시절의 사진과 조사하신
증인들을 통해서 마음속에 시인이 다시 살아 있게 하실 양으로 생생하게 그려 주셨습니다. 뜸뜸이 울음으로 말을 잊지 못하시고 멈추기까지 하셨습니다. 선생님은 마치 일본인 전부를 대신해서 용서를 비는 듯 시피 숙연했습니다.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시인을 사랑하심은 누구도 따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을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끝날 무렵에 선생님을 찾았습니다. 어떤 분이 손으로 선생님이 계신 곳을 가리켰습니다. 아, 깜짝 놀랐습니다. 선생님은 바로 시작할때부터 제 앞에서 학생처럼 책을 끼시고 층계바닥에 앉아 낯이 익었던 분이 아니십니까. 죄송합니다. 제 의자를 권해 드리지 못한 불손을. 너무 친근한 마음이 들게 됐습니다. 아, 이래서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로구나.
집에 돌아가는 길에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객지에 살면서 시인이 겪었던 삶은 눈물겹도록 고독하고, 비참한 멸시를 당하면서도, 수정처럼 맑고 방금 떠오른 태양처럼 희망을 갖고,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처럼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선생님 건강하세요.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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