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절약’ 따져보면 본전 뽑는다
테크놀러지 발달로 기능이 점점 더 개선되면서 가전제품 가격은 해마다 떨어지고 있지만 몇 가지 예외가 있다. 부엌과 세탁실에서 사용되는 대형 가전제품들은 10년이 넘도록 그 추세를 거스르고 있는 것이다. 랩탑 컴퓨터 평균 가격은 1년이면 23%가 떨어지고 대형 TV 가격 역시 1년에 평균 30%가 떨어지지만 지난 10년간 식기세척기 평균 가격은 10%가 올랐다. NPD 그룹의 시장 분석가들 계산에 따르면 세탁기의 평균가격은 지난 2년 사이에 16%나 올라갔다. 이유는 무엇일까?
‘에너지 스타’등급의 제품들
효율 높아 전기료 물 세제 덜 들고
다양한 기능에 디자인 고급 ‘만족’
그런 가전제품들은 물론 10년 전에 나온 것보다 훨씬 성능이 좋아졌지만 그것은 랩탑이나 디지털 카메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요즘 주택 리모델링이 붐이라 가전제품의 수요가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텔리비전이나 디지털 카메라 수요는 그보다 훨씬 더 강세다. 사실 가전업계가 ‘화이트 굿즈’라 부르는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에는 전자 부품이 더 많아졌고 대부분 해외에서 제조되기 때문에 가격이 더 떨어져야 마땅하다.
그런데 가전제품 중 최고가품들은 매출이 증가하고 있다. 멋진 스타일에 비싼 마감재를 사용한 고급품 시장은 연간 10% 이상씩 커가고 있는 반면 나머지 시장에는 별 변화가 없다. 그리고 그 고급품들은 대부분 에너지 효율이 높은 제품들이라 비용은 가장 적게 들이고 사용할 수 있다. 냉장고, 식기세척기, 세탁기, 건조기 및 에어컨디셔너의 에너지 효율 개선을 의무화시킨 연방정부 규정 덕분인데, 제조사들은 1987년부터 실시된 이 규정을 반기고 있다.
가전제품제조사협회의 조셉 맥과이어 회장은 “15년 묵은 제품을 사용하던 가정에 최신제품을 들여놓으면 에너지 비용이 50%는 절감된다”고 말한다. 협회는 에너지 효율이 좋은 신제품들로 인해 2030년까지 미국 소비자들은 5000조 BTU의 에너지와 11조 갤런의 물을 절약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작년에 미국 사람들은 소득의 5.67%를 에너지 비용으로 지출했다.
에너지 효율화 운동은 오래된 가전용품의 대체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연방정부는 보통 가구의 연간 에너지 비용은 1500달러인데 에너지부가 발급하는 ‘에너지 스타’ 스티커를 부착한 기계를 들여놓을 경우 30%, 즉 연간 450달러 이상이 절약된다고 본다.
2003년에 조지 메이슨 대학의 경제학 및 법학 교수인 로널드 서덜랜드가 분석한 바에 의하면 소비자들은 ‘에너지 스타’를 단 가전제품을 사느라 464억달러를 더 지불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왜냐하면 ‘에너지 스타’의 자격 기준이 높아져서 작은 제조사들은 경쟁하기가 어려워진데다 에너지 효율이 좋은 것은 고가형 모델로 만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에너지 효율이 높다고 고가품을 구입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일지는 한번 따져 봐야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예를 들어 현재 미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앞으로 빨랫감을 넣는 세탁기인 ‘월풀’의 ‘듀엣’은 에너지 효율이 아주 좋아서 연간 전기 사용량이 227킬로와트아워 정도다. 그렇지만 가격은 1400달러나 하고 매치되는 ‘듀엣’ 건조기는 900달러다.
그런 ‘듀엣’ 세탁기를 사용할 경우 연간 전기값은 78달러로 ‘월풀’의 빨랫감을 위에서 넣는549달러짜리 ‘얼티밋 케어’에 드는 비용 161달러보다 훨씬 싸지만, 물건값이 워낙 비싸기 때문에 7년 동안 드는 총 비용은 1946달러로 ‘얼티밋 케어’보다 269달러가 더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싼 제품을 사는 것이 더 경제적이다. 이론적으로 현재의 1달러가 7년 후의 1달러보다 더 가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향후 7년간 546달러를 절약해 주는 물건이면 오늘 318달러 더 비싼 것을 사도 손해보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269달러 더 들여서 보기에도 멋진 제품을 들여놓을 만하다는 것이다.
스타일을 제외하고 비교할 경우에도 ‘에너지 스타’가 붙은 제품이 더 유리하다. 똑같은 ‘월풀’ 제품으로 똑같이 빨랫감을 위로 넣는 세탁기인, 월풀 제품 ‘에너지 스타’급 세탁기 중 가장 싼 479달러짜리 3.2 큐빅피트 세탁기와 같은 용량이지만 에너지 효율은 조금 떨어지는 449달러짜리를 비교해보면 안다. 7년간 드는 비용이 조금 비싸고 에너지 효율이 높은 것은 1256달러, 가격이 조금 쌌지만 에너지 효율도 덜한 것은 1450달러로 194달러나 차이가 났다. 거기에 유틸리티 회사의 환불까지 합하면 더 차이가 난다. 아이오와주의 ‘얼라이언트 에너지’는 ‘에너지 스타’급 가전제품 구입자에게 50~100달러를 환불해준다. 캘리포니아주의 ‘퍼시픽 개스 & 일렉트릭’은 75달러까지 환불해준다. 앞으로 빨랫감을 넣는 세탁기는 에너지 효율이 더 높기 때문에 환불액도 더 많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해 전기 모터와 기어, 전자제어장치들을 대체한 신제품은 종전 제품들에 비해 소음이 덜하다. 세탁기는 세제와 물이 덜 들며 탈수도 훨씬 잘 되기 때문에 말리는데도 시간이 적게 들어 비용이 더 절약된다. ‘클라이밋키퍼2’ 테크놀로지를 사용한 GE의 ‘프로파일’ 냉장고의 이중 기화 시스템은 냉동실의 서리 제거 사이클도 줄여서 에너지 소비가 적다. 세탁기에 장치된 센서는 옷의 무게를 측정해 물의 양을 조정하고 식기세척기의 센서도 물과 세제의 양을 조절한다. 에너지 절약기술 덕분에 제조사들은 25가지 세탁 사이클 같은 새로운 기능을 추가시키면서 가격을 올릴 수 있게 됐다. 시장에 나오는 대부분의 ‘에너지 스타’급 가전제품이 고가품인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김은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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