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걷은 것만 받아가지고는 학교 운영을 못하거든요...”
내년 가을 필라델피아의 페어마운트 팍 가장자리에는 5,500만달러짜리 고등학교가 들어선다. 현재 그저 ‘미래의 학교’라 불리는 이 학교는 웹디자인 랩 같은 방들이 들어서고 지붕에는 빗물을 관리하는 시스템이 설치되는 건물도 최첨단이지만 다른 의미로도 미래의 학교라 불릴만 하다. 바로 민간 자금으로 세우는 공립학교이기 때문이다. 이 학교를 소개하는 화려한 브로슈어에는 기부자의 이름이나 기업의 로고를 벽에 새길 기회가 수십가지나 나열돼 있다. 공연장은 100만달러, 체육관이나 교장실을 포함한 교무실은 75만달러, 식당과 사이버 카페는 50만달러, 과학 실험실 50만달러, 교실은 개당 25만달러 등등이다. 이 학교 디자인을 함께 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는 벌써 ‘마이크로소프트 비지터스 센터’를 짓는데 10만달러를 내기로 했다. 500만달러를 내면 학교 이름도 붙일 수 있다.
체육관·교무실 지어주면
기업에 건물 이름 명명권
예산 빠듯 자구책 확산
물론 교육위원회가 검사해서 담배나 술 회사 같은 바람직하지 않은 후원자는 걸러내겠지만 폴 발라스 교육감은 전체 학생의 85%가 빈곤층이라 부족한 것이 너무 많은 이 교육구에서는 부적절하지만 않다면 기업의 기부를 받고 그 이름을 붙이는 것이 나쁠 것 없다고 말한다.
4년전만 해도 뉴저지주 브룩론의 작은 교육구가 그 지역 수퍼마켓으로부터 10만달러를 기부받아 새로 지은 체육관에 ‘샵라이트 브룩론 센터라고 이름붙인 것이 일대 뉴스였다. 곧 시카고 북부 버논 힐스 고등학교에 ‘러스트-올리엄 필드’(10만달러 기부), 플로리다주 브로워드 카운티의 에버글레이즈 고등학교에 ‘이스턴 파이낸셜 플로리다 크레딧 유니온 스테디엄’(50만달러 기부)이 생겼다.
이제 기부금을 내고 이름을 붙이는 일은 전국적으로 번져 체육관 이외의 시설에도 흔하다. 돈이 궁한 교육구들은 민간 자금을 끌어들이느라 커뮤니티의 큰 손을 끌어 들이는 일을 맡은 직원을 채용하고 프롬 행사에도 기업 후원을 받고, 학교 지붕을 광고 공간으로 판매하기도 한다.
법이 허락하는 주에서는 교육구가 스쿨 버스에 광고를 팔기도 하며, 전국의 교육구들이 기부를 유도하기 위해 학교 시설에 기부자의 이름을 붙이는 것을 특권으로 제시하며, 기부금 액수에 따른 교환조건을 명시하도록 학칙을 새로 쓰고 있다.
공립학교들이 민간 자금을 끌어들이려 안간힘을 쓰는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고 학교 관계자들은 말한다. 대부분의 주가 예산은 빠듯한데, 필요한 자금도 주지 않고 실행하라는 명령은 많아지고, 운영비용 또한 올라 주정부 돈만 가지고는 도무지 학교의 필요와 요구를 채울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이미 세금을 거둘대로 거두고 있는 많은 커뮤니티들은 재산세를 올려 학교를 뒷받침할 용의가 없으므로 공립학교들이 점점 이름을 붙일 권리를 걸고 모금하는 대학, 병원, 사립학교등의 선례를 따르게 된 것이다.
매서추세츠주 뉴베리포트의 교육위원으로 일하다 현재는 교육구에 민간 기부를 끌어들이는 일을 전담하는 재단을 운영하고 있는 신디 존슨은 “사립학교의 개발담당 사무실과 같은 역할을 하는거죠. 사립학교도 학비만 가지고 운영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도 세금만 가지고 운영할 수 없어요”라고 말한다. 사실 지난 5년동안 공립학교는 기업및 재단 기부자들에게 점점 인기를 모으고 있다. 뉴욕의 경우 마이클 블룸버그 시장이 취임한 이래 조얼 클라인 교육감과 함께 3억1,100만달러의 민간자금을 모았다. 새 학교, 새 운동장, 도서관 개축등 그 혜택은 너무나 확실하다..
그러나 정책 전문가들은 공립학교에 대한 민간자금 지원에는 실질적인 위험이 따른다고 지적한다. 민간자금이 없어져 버리면 어떻게 할 것이며, 기부자가 학교 정책 입안에 분수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어떻게 할 것이며, 공공자금이 모자라는 부분을 개인 자금으로 메꾸면 의회나 납세자들은 공공교육을 후원할 책임을 벗어버릴 수도 있느냐는 것이다.
“공립학교는 정부 이외의 가장 중요한 공공 기관으로 납세자들이 커뮤니티를 지나다니거나, 자기 아이들을 보내며 자기가 낸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공립학교는 과거에도 현재도 공공의 책임이므로 세금으로 유지돼야 한다”고 워싱턴의 교육옹호단체들의 연합인 공립교육네트웍 회장 웬디 퓨리포이는 말한다.
민간자금을 끌어들이는 추세는 부자 교육구와 가난한 교육구간 간격을 더 심화시킬 수도 있다. 부유한 교육구들은 모금도 더 잘 하기 때문이다. 매서추세츠주 뉴베리포트는 관광업이 활발한 뉴잉글랜드의 항구도시로 학교들에 돈이 모자라리라고 상상하기 힘든 곳이다.
그렇지만 학교는 예산이 너무 빠듯해서 과외활동과 스쿨버스를 모두 학부모가 부담하고도 초등학교 외국어반, 중학교 연극반을 폐쇄했으며 교장 한사람이 초등학교 2개를 맡고 있을 정도다. 학령아동을 둔 가구가 20%에 불과하므로 재산세도 올리기 힘들어 학교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2000년에 뉴베리포트 교육 재단을 결성했다.
그래서 교육구는 개인 기부를 적극적으로 찾게 됐고 재단은 2004년에 기부자의 이름을 붙일 기회를 다양하게 제공하고 나섰다.
기업 입장에서 학교는 매우 매력적이다. 기업들의 마케팅 목표의 기본이 회사를 바람직하고, 훌륭해보이도록 하는 것인데 공립학교보다 더 바람직하고 훌륭한 장소가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다. 학교에 그 이름을 영구히 새겨 놓는 것은 커뮤니티에서 그 입지를 강화시키는 기회이자 영구히 서 있을 빌보드를 세우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김은희 객원기자>
한편 기부자의 이름을 붙이는 일이 미칠 모든 효과를 고려한 이후 그렇게 하기를 거부한 교육구도 최소한 서넛은 된다. 플로리다주 세미뇰 카운티 교육위원회는 작년에 관계 지침을 심의하다 만장일치로 부결시켜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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