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기가 가장 세다는 세도나의 암벽이 내려다 보이는 한 언덕을 한 외국인이 한가롭게 걷고 있다.
‘명상의 명당’에 한인 100여명 활동
정신수양 젊은이·대체의학 연구자 등
올 출범 한인회‘한국 정신문화 알리기’
타인종 남편과 결혼해 피자 가게, 일식당 등을 운영하고 있는 몇몇 한인들을 제외하고 나면 세도나 한인들의 대부분은 물질적으로 풍족한 부자가 되는 것보다 정신적으로 평안함 속에 살고 싶은 사람들이다.
2005년 현재 세도나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들은 약 100여명. 정신수양에 정진하는 젊은이, 의사, 회계사, 화가, 작곡가, 건축가 등 여러 직종의 한인들이 붉은 세도나에서 거주하고 있다.
한인회도 조직돼 있다. 지난 2005년 5월에 현판식을 가진 세도나 한인회(회장 임은진)는 지역 주민들과 관광객들에까지 도움을 준다. 물론 한국 정신문화 수양의 한 부분을 널리 알리는 전도사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한인회 건물에는 비알클리닉(Brain Respiration Clinic)이 함께 입주해 있다. 한방과 양방이 합쳐진 대체의학 병원이다. 코넬 의대 출신의 이성원 박사와 4대째 가업인 임반야 한의사가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다.
붉은 바위 보며 먹는 라면‘짱’
■한국의 맛 그대로 ‘마고카페’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세도나 시내에 태극기가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도 목격하게 된다.
업타운 입구에 자리잡은 건물 2층에 위치한 마고카페는 세도나 경치에 취한 관광객들이 잠시 숨을 돌리며 다음 목적지를 선정할 수 있는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입구 간판에 한글로 ‘천안 사거리’란 표기가 있어 이색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한국 전통 차 등 음료와 샌드위치를 서빙하는 마고카페에서는 비밀 메뉴가 있다. 말만 잘하면 맛있게 조리된 라면과 불고기, 유부초밥 등을 맛 볼 수 있다. 특히 업소 창 바깥을 가득 메운 세도나의 붉은 바위를 보면서 먹는 라면 국물에 만 밥맛은 일미다.
강에서 낚시 즐기고… 광야서 말 달리고
■한인 운영 RV파크·농장
세도나에는 한인이 운영하는 RV파크가 있다. 세도나 시내에서 자동차로 20여분 떨어진 카튼우드에 있는 리오버디 RV 파크는 이름이 말하듯 강 옆에 있다. 70여대의 RV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과 낚시를 즐길 수 있는 강, 우거진 수풀이 특징이다.
리오버디 RV 파크 인근에는 역시 한인들이 운영하는 말농장도 있다. 오아시스 말 농장은 11에이커의 넓은 땅에 자리잡고 있다. 특히 농장 내 임대용 전원주택이 있어 일정 기간 머물며 승마도 배우고 전원생활도 체험할 수 있다.
애리조나주립대에 재학 중인 한인 학생들이 미래를 향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신효섭 기자>
LA출신 유학생 다수 재학 “바다가 그리워요”
■애리조나주립대 한인 학생들
애리조나의 자랑거리인 애리조나주립대(ASU)의 한인 대학생들이 중간고사를 치르느라 단 1초가 아쉬운 상황이지만 취재진에게 흔쾌히 시간을 할애했다.
LA출신의 한인 학생들도 많았다. 이야나(20·비즈니스)씨는 오렌지카운티 풀러튼에서 자라 부모를 따라 피닉스로 이주했다고 한다. 김선한(20·비즈니스)씨 역시 LA출신이다. 팔로스버디스에 아직도 부모가 거주하고 있다. LA에서 애리조나로 유학 온 셈이다. 김씨는 “애리조나의 뜨거운 날씨 속에 살다보면 파도가 출렁이는 LA해변 생각이 간절하다”고 말했다.
정영규(22·금융)씨는 ‘이중 국적자’다. 부모가 미국 유학중 태어나 시민권을 얻었다고 한다. 단단한 체격의 정씨는 이번 학기를 마치고 한국군에 입대할 예정이다. 아주대학에 재직 중인 부친 정윤진 교수가 군대를 꼭 가야 한다고 매번 못을 박아온 영향이 있는지 군 입대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조기 유학생 출신도 있다. 김태호(25·비즈니스)씨는 중고등학교를 피닉스 지역에서 다녔다. 대학 재학 중 귀국해 육군에 입대, 수도경비사령부 예하 부대에서 군생활을 마쳤다. 한국군 예비역 병장인 김씨는 “미국에서 공부하는 도중 습득한 언어 실력이 한미 양국군 훈련 때마다 발휘했다”며 병역을 기피하지 않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영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뒤 미국으로 건너 온 국제파 한인 유학생도 있다. 정 훈(21·비즈니스)씨가 그 주인공. 정씨는 “미국인들이 영국식 영어발음을 하는 아시안을 대할 때 상당히 놀라워한다”며 재미있는 학창생활의 일화를 들려주기도 했다.
자연, 영감 찾아…‘붉은 신비의 세계’
세도나 바위산에 11월의 저녁 햇살이 막무가내로 부서져 내린다. ‘지나가 버린 수만 번의 가을과 닥쳐올 수만 번의 가을 사이에 낀 단 한번의 가을날.’ 세계에서 가장 기가 세다는 세도나에는 센 기만큼이나 많은 전세계 ‘도인’들이 모여 또다른 정신세계를 탐구한다. 온통 붉은 벽으로 둘러싸인 영산의 산실 세도나에는 매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신비의 세계로 찾아든다.
지구상에서 기가 가장 센 곳
해마다 수백만명 ‘명상 여행’
애리조나 주도인 피닉스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세도나의 인구는 1만명이 조금 넘는다. 세도나 인구는 붉은 바위산과 계절이 지나가는 파란 하늘이 조화를 이루는 경관을 즐기며 남은 여생을 보내려는 은퇴한 부자 노인들, 신성함까지 느껴지는 자연환경에서 영감을 얻으려는 예술가, 정신세계의 평온함을 갈망하는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명상가들로 크게 나뉜다.
한국 시인들에 의해 쉴 새 없이 형상화해 온 광주의 무등산 같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지형으로 세도나처럼 많은 영감을 주는 곳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세도나는 40군데가 넘게 있는 갤러리만큼 많은 명상가들과 명상 수련 단체가 몰려있다. 세도나 상공회의소에 따르면 한해 300만∼4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지역을 찾고 있으며, 이들 중 30% 이상은 명상, 정신세계 탐구와 관련한 방문객이라는 설명이다.
미국 원주민(아메리칸 인디안)들이 성지로 여기던 세도나에 지구파장이 강력하게 분출되는 ‘볼텍스’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은 지난 1981년. MIT에서 생화확을 전공한 페트 샌더스 주니어가 지구상의 21개 볼텍스들 중 4개가 세도나에 있다는 볼텍스 존재설을 제시한 뒤 세계 각국의 명상단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 않게 분출되는 지구파장은 볼텍스 위치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세도나의 상징물인 벨락(Bell Rock) 및 에어포트메사(Airport Mesa) 볼텍스에서는 양성 기운의 에너지가 분출되고, 성당건물을 연상시키는 대성당바위(Cathedral Rock)에서는 음성 기운의 에너지가 분출된다는 설명이다. 정신세계 수양가들에 따르면 보인튼캐년(Boynton Canyon)과 세도나 일지명상센터에서는 두 가지가 합쳐진 기운이 분출된다.
세도나 일지명상센터에서 수련하는 수련생들이 새벽 햇살을 받으며 기체조를 하고 있다.
한·흑·백 젊은이들 ‘도인체조’
■일지 명상센터
세도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일지명상센터다.
11월 둘째 주말 저녁 8시. 젊은이들을 상대로 한 명상캠프 ‘YEHA’가 진행되고 있는 명상센터 내 대형강의실에는 경쾌한 음악에 맞춰 율동을 하는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대부분이 백인인 이들 사이에 간간이 한인으로 보이는 아시아인, 흑인 몇몇의 모습이 보였다.
유명 그룹 ‘아하’(A-Ha)의 히트곡 ‘Take on me’의 뒤를 이어 인순이의 ‘비상’이 스피커를 통해 터져 나오자 젊은이들은 ‘와’하는 소리를 지르며 젊음을 분출했다.
어두운 공간에 주저앉아 묵상하는 모습을 기대에 찬물을 끼얹은 젊은이들을 가만히 살펴보다 춤도 율동도 아닌 동작으로 함께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다. 젊은이들의 움직임은 단전호흡 전 온 몸의 근육을 풀어주는 근육 댕기기 운동인 ‘도인체조.’
30여분 동안의 음악에 맞춘 도인체조가 끝난 뒤 젊은이들은 그룹별로 나눠 앉아 가쁜 숨을 고르며 명상 수련을 시작했다.
애나하임인 지명을 사람들이 몰라 그냥 LA에서 왔다고 한다는 줄리아 바레바노(28)는 “명상을 하다보면 그토록 갈구하던 정신적 평안함을 느낀다”며 “잃어버린 자아를 찾게 됐다”고 말했다.
디트로이트 출신이지만 피닉스에서 거주하고 있는 잔 엘스(25)는 “명상수련을 통해 내가 살아야 할 방법을 찾았다”며 “즐거움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일지명상센터는 단학, 뇌호흡의 세계 교육 본부다.
세도나 시내에서 40여마일 떨어진 코코나노 국유림 안에 위치하고 있어 주변 경관이 빼어나다. 170여 에이커에 이르는 땅에 자리 잡은 명상센터에는 숙박 및 명상을 위한 다양한 시설이 준비돼 있다.
명상센터의 특징은 야채식단. 조미료 등 인공미를 모두 배제한 식단이 3끼 제공된다. 또 식당에서 뷔페식으로 식사가 이뤄져 지정된 시간을 놓치면 다음 식사 시간대까지 굶게 된다. 육식과 불규칙한 식사에 익숙해져 있는 도시인들이 처음에는 투덜거리지만 건강식의 장점을 금방 느낀다고 한다.
온통 붉은 벽을 둘러싸인 세도나에는 전세계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인디언 성지… 은퇴 부자들 휴양지로 인기
■세도나 유래
나바호, 아파치 등 미국원주민(아메리칸 인디언) 부족들의 성지였던 세도나의 주변에는 아직도 이들이 남긴 벽화, 조각, 거주지 등 유적이 남아 있다.
미국 원주민들의 성지로 불리는 세도나에 백인들이 정착한 것은 1900년대. 미국 원주민들은 다른 이름으로 부르던 이 곳은 초기 정착자의 부인 이름인 세도나 시네블리에서 따온 뒤 세도나로 불리고 있다. 도시보다 마을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세도나의 은퇴한 부자 노인들의 휴양지로 인기가 높다. 그래서 해가 지면 영업을 하는 업소가 없다.
<김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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