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서<소노마한국학교 교장>
세월의 속도 어제 한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교장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요즈음 시속 46마일로 달리고 있답니다. 네? 시속 46마일로 달리시다니요? 제 나이가 마흔 여섯이잖아요. 세월은 자기 나이와 같은 속도로 달려간다고 하니 그렇지요. 아니, 그럼 저는 시속 60마일 속도로 달리고 있다는 거예요? 어쩐지 세월이 너무 빠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바로 엊그제 가을학기가 시작된 것 같은데 벌써 중반을 넘어서고 있다. 앞으로 그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 분명하다.
세월은 유수와 같다고 했는데 흐르는 물의 속도가 빨라진 것인가? 첫돌을 지낸 손자 신이에게 신이는 몇 살?하고 물으면 빙그레 웃으며 집게손가락 하나를 쏘옥 내밀어 보인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앙증스러워 만나는 사람마다 자꾸자꾸 물어보며 아유, 아직도 한 살이야?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첫돌 아기의 1년은 그야말로 시속 1마일에도 못 미칠 정도로 느리고 더딘 것 같다. 아무리 물어보아도 날마다 한 살 그대로 멈추어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유난히 11월을 기다렸다. 이유는 단 하나, 11월이 지나가지 않으면 12월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12월에는 크리스마스와 생일이 함께 들어 있었다. 1월부터 꼬박 열 한 달을 손꼽아가며 기다려야 했다. 11월이 가까이 다가오면 혜화동 로터리로 들어오는 전차 소리도 ‘냉냉냉냉’하고 더 맑은 소리를 내었다. 가로수 밑에 쌓인 낙엽들은 발을 옮길 때마다 저마다의 독특한 낙엽 소리를 내주었다.
그땐 어김없이 군밤, 군고구마, 사과장수들이 그쳐버린 혜화동 분수의 물줄기를 대신해서 마음을 풍요롭게 해 주었다. 11월은 그렇게 느린 속도로 찾아왔다. 버나드 쇼오는 ‘당신이 지금 행복한지 아닌지에 대해서 생각할 만큼 빈둥거릴 시간을 가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지만 한 번쯤 빈둥거리며 세월의 속도를 재어보는 것이야 괜찮겠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