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자 수색에 나선 자원봉사자들이 침수로 물에 잠긴 뉴올리언스의 10번 인터스테이트 프리웨이 교각 아래로 보트를 저어가고 있다.
미국이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해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시속 140마일의 강풍과 폭우를 동반한 초특급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멕시코연안지역에 흉칙한 상흔을 남긴 채 소멸했지만 미국은 카트리나의 후폭풍에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막대한 인명피해와 경제적 손실은 물론 정치, 경제 전반에 메가톤급 후유증을 안겨준 카트리나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뉴스의 중심권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5일 플로리다를 두드린 후 멕시코만으로 빠져나갔던 카트리나는 5급 허리케인으로 세력을 불려 29일 루이지애나 연안에 재상륙하면서 가공할 파괴력을 과시했다. ‘세기의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불러일으킨 파장을 정리한다. <이강규·김상목·이의헌 기자>
대재앙 원인 해수면보다 낮은 지형+둑 붕괴 탓
뉴올리언스의 카트리나 피해가 전례 없이 컸던 것은 루이지애나 최남단에 위치해 50 년만의 최대풍속을 기록한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손쉬운 공격목표가 된 탓도 있지만 해수면보다 낮은 지형적 특수성에다 뉴올리언스를 둘러싸고 있는 둑의 동쪽 두 곳이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현지 주민들은 뉴올리언스의 특이한 ‘사발 효과(BOWL EFFECT)’ 때문에 대재앙이 초래됐고 복구 활동도 상당기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발 효과’는 뉴올리언스가 해수면보다 낮은 지형적 특성을 갖고 있어 도시를 둘러싼 둑이 무너져 내릴 경우 저지대인 도심 전체가 물로 넘쳐날 때까지 계속 유입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른바 사발에 물이 완전히 차야 밖으로 흘러 넘치는 것과 같은 원리인 셈이다.
홍수 전문가들은 둑의 펌프가 제 역할을 못하면서 도심 쪽으로 대량의 물이 유입됐으며 이같은 현상은 이 도시의 북동쪽에 맞닿아 있는 거대한 염수호인 폰차 트레인 호수와 같은 수준, 즉 해수면보다 3피트 더 높은 수위까지 물 유입이 계속됐던 것이 뉴올리언스의 카트리나 피해를 엄청난 규모로 확대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
두 흑인 자매가 가족중 한 명이 탈진으로 치료를 받게 되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들 가족은 컨벤션센터에 수용돼 나흘간 타지로 이동할 차량을 기다리고 있었다.
늑장 대응 책임 공방 경고 무시-대피 소홀 ‘관료 재해’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빚은 엄청난 피해는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닌 `관료주의’라는 인재에서 비롯됐다는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카트리나의 위협은 상당 부분 예견됐고, 예방 가능했음에도 테러리즘에만 전전긍긍한 채 자연재해의 위험을 무시한 연방정부와 전반적인 대피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못한 주정부의 오판과 태만이 사태를 악화시켰다고 비판가들은 지적한다.
마이클 처토프 조국안보장관은 카트리나가 멕시코만 연안에 상륙한지 하루가 지난 30일에야 국가대응책 수립에 나섰다.
수해지역인 루이지애나와 미시시피, 뉴올리언스 시당국은 카트리나가 거의 닥친 상태에서 허둥지둥 주민 소개령을 내렸다. 또한 처토프 장관, 마이클 브라운 연방재해관리청장, 레이 내긴 뉴올리언스 시장, 러셀 오노레이 중장이 서로 엇갈리는 명령을 내려 혼란을 부채질했다.
그러나 여론의 창끝은 부시 대통령을 겨누고 있다. 뉴올리언스가 물바다가 되고 무법천지가 연출된 후 하루 뒤에야 워싱턴으로 돌아온 그가 “아래쪽“에 책임을 떠넘기고 건성건성 피해지역을 둘러보는 등 사태파악을 전혀 하지 못한 양 행동해 분노를 샀다.
피해 규모 미 역사상 최대 피해… 구호·복구비만 2,000억 달러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한 경제 피해는 최대 1,000억 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정부가 지불해야 할 복구 및 이재민 구호비용이 최대 2,000억 달러, 보험사의 보험 손실액 규모도 최대 35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자연재해 평가기관인 `리스크 매니지먼트 솔루션스’는 카트리나가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경제적 피해를 입힌 허리케인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밝혔다.
월스트릿 저널도 7일 연방의회의 조사내용을 인용, 행정부가 카트리나 피해 복구 및 이재민 구호를 위해 써야 할 예산이 총 1,500억∼2,000억 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9.11 테러 당시 초기 복구비용을 훨씬 초과하는 액수다.
보험사 손실액 규모도 140억~350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뉴올리언스 가구의 40%는 홍수 보험에 가입해 있고, 화재 등에 따른 피해도 잇달아 청구건수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인명피해는 아직도 가늠하기 힘들다. 9일까지 확인된 사망자는 뉴올리언스 284명, 미시시피 201명, 플로리다 17명 등 500명 선이나 최대 피해지역인 뉴올리언스 침수지 사체수습작업이 진행되면서 사망자 수는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루이지애나 정부는 2만5,000개의 사체수습용 자루를 준비했고 레이 내긴 뉴올리언스 시장은 사망자가 1만명에 달할 것으로 우려했으나 전문가들은 실제 희생자는 이보다 훨씬 적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구호 작업 민·관·군·외국 합심 생존자 구조-시신 수습 나서
연방정부의 늑장대응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줄어들지 않고 있는 가운데 카트리나 구호작업은 미 재난 역사상 최대규모로 진행되고 있다.
연방의회는 9일 피해 복구를 위해 518억 달러 규모의 긴급 구호자금 지원안을 통과시켰다. 지난주 초기 대응자금 105억달러 이후 이번이 두 번째 지원이다.
부시 대통령은 연방재난관리청(FEMA)에 등록한 이재민들에게 당장 2,000달러의 구호자금을 지원한 뒤 의료보장 혜택을 비롯, 식료품 구입쿠폰, 실직 보상금 등 중장기 지원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군 구호지원 강화 = 항공모함 해리 트루먼 호가 피해지역 복구지원에 나섰고, 허리케인 내습 때부터 현지에 배치됐던 수륙양용 공격함정 바탄호는 선내 병원을 일반환자들에게 개방했다. 해군 수송선 2척, 해군 병원선 컴퍼트호와 구조선 그레이플호 등 30척 가까운 해군 함정이 투입됐다.
지상병력도 속속 현지에 도착해 3만여명의 주방위군 외에 이날 현재 1만6,000명 수준의 현역군이 구호작업을 펼치고 있다.
▼수습·복구 = 침수지역에 설치된 펌프들을 통해 초당 6만갤런 가량의 물을 빼내고 있으나 기름과 화학물질, 쓰레기, 오물, 시신들이 곳곳에 방치돼 있어 구조활동에 큰 애로를 겪고 있다.
미 전역의 20여개 주가 이재민들에게 군기지, 경기장, 호텔 등을 제공하겠다며 지원에 동참했다. 그 동안 생존자 구조를 우선해왔던 당국은 시신 수습에도 눈을 돌려 시신수습용 냉동트럭을 가동하고 있다.
▼민간단체 및 해외 구호활동 = 적십자사에만 8일 현재 5억5,000만 달러의 성금이 답지했지만, 최소한 10억 달러의 모금이 필요한 실정이다.
적십자사는 한끼 당 6달러의 식사를 제공하고 있으며, 현금 대신 사용할 수 있는 데빗카드도 나눠주고 있다. 구세군도 5일까지 총 4,100만 달러를 모아 쓰나미 피해 당시 3개월간 모은 성금 2,000만 달러의 2배 이상을 모금했다.
전세계 90개국 이상이 지원을 약속한 가운데, 한국은 현금 3000만달러와 구조대 50팀을 파견키로 해 지원금 규모에서 세계 4위를 기록했다
정치적 파장 여론 질책 공화당 내년 11월 중간 선거 고전 예상
카트리나는 내년에 실시될 중간선거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재해의 규모로 보아 최소한 수년간 후유증이 이어지면서 내년 11월 선거에서도 유권자들의 표심에 무시못할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9.11사태 이후 재난대비책을 강화했다고 선전해온 공화당으로서는 “도대체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천문학적인 예산을 사용한 결과가 고작 이것이냐”는 여론의 질책을 면키 어렵고 이같은 정서가 표로 연결될 경우 공화당은 중간선거에서 고전을 할 수밖에 없다.
그가 1순위로 내세웠던 국내 정책들도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유권자들의 비판적인 눈초리도 부담스럽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난 재정적자에 어마어마한 구호 및 복구 자금까지 얹혀져야 할 판이라 예산의 뒷받침을 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카트리나는 대법원장 인선에도 영향을 미쳤다. 예기치 못했던 샌드라 데이 오코너 대법관의 사임과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원장의 타계로 부시 대통령은 단숨에 대법원의 진보-보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으나 카트리나 늑장대응을 비난하는 여론으로 민주당의 반대를 무시한 채 극보수주의자를 대법원장이나 대법관에 임명하기 힘든 상황에 놓였다.
공화당의 핵심지지세력인 보수 기독교세력의 눈치를 살펴 극보수주의자를 대법원장에 지명할 경우 민주당과 일전을 불사해야 하는데 현 상황에서는 이를 감당할 여력이 없다. 부시 대통령이 대법원장에 존 로버츠를 지명한 것은 그가 그나마 민주당의 반대를 최소화할 인물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경제적 파장 유가 배럴당 100달러까지 올라 ‘오일 쇼크’ 부를수도
▼오일 쇼크 =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21세기 최초의 오일쇼크로 기록될 유가 100달러의 암울한 시대를 여는 경제적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전망된다.
정유시설이 집중되어 있는 멕시코만 일대가 막대한 피해를 입어 또 다른 석유공급 측면에서의 악재만 하나 더 보태지면 유가는 배럴 당 100달러 선을 돌파할 수도 있다고 석유시장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재정적자 심화 = 피해 복구와 이재민 구호에 총 2,000억 달러 정도의 천문학적인 연방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보여 재정적자가 악화될 전망이다.
지난해 미국의 재정적자가 4,000억 달러를 넘어서자 의회는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향후 5년간 의료보험, 학자금 대출, 저소득층 지원 등에서 지출을 350억 달러로 줄일 계획이었고 부시대통령은 퇴임 전까지 재정적자를 현재의 절반으로 줄인다는 약속을 내놓았었으나 이같은 계획은 ‘이뤄질 수 없는 꿈’이 되고 말았다
▼경제성장률 하락 = 카트리나는 미국 경제성장률을 최대 1%까지 낮추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의회예산국(CBO)이 전망했다.
CBO의 작성한 ‘카트리나가 미 경제에 미치는 영향 평가서’에 따르면 카트리나는 하반기 미국경제 성장률을 최저 0.5%에서 최고 1%까지 하락시킬 것이며 40만 명 정도의 실업자를 증가시킬 것으로 예상됐다.
▼금리 영향 = 카트리나로 경제성장률이 둔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자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인상 속도를 늦추거나 중단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한 고유가와 산업손실로 경제성장률이 0.5% 가량 둔화될 수 있으며 3/4 분기 성장률이 1.0% 까지 감소가 예상되며 그 여파가 내년까지 이어지면서 내년 성장률도 둔화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FRB가 금리인상 속도를 신중하게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재민 3,000명 최대 1억달러 손실
한인 피해
카트리나로 인한 한인 피해규모는 최대 1억 달러를 넘을 전망이다.
한인 피해자 대책위원회 이상호 위원장은 5일 “카트리나 피해 지역의 한인 수는 3000여명, 업소 180여개, 주택 800여채에 달해 전체 피해액이 1억 달러가 넘을 것으로 보인다”며 “당초 예상보다 큰 피해로 인해 한인들의 사업기반이 크게 흔들릴 것”이라고 말했다.
한인 피해액이 예상보다 많아진 이유는 크게 두 가지.
한인 비즈니스 대부분이 다운타운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지역의 치안이 불안해 상당수 업소가 약탈을 당했다. 둑이 무너지면서 한인 밀집 거주지인 매터리 지역의 주택들은 큰 침수피해를 입었다.
재난 직후 인근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졌던 한인들은 1일 배이튼 루즈에 문을 연 한인 재해대책본부와 셸터에 모여 재기를 꿈꾸고 있다.
피해 상황을 확인하고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 셸터에 모여있던 한인들은 장기전에 대비해 휴스턴, 애틀랜타, 뉴욕, LA, 시카고 등 한인사회가 형성되어 있는 미 전역의 대도시로 생계형 피난을 시작했다.
이런 소식이 전해지자 한인사회에서는 따뜻한 도움의 불길이 퍼지고 있다. LA한인회, 뉴욕 한인회 등 미 전역의 한인회는 미주총연을 중심으로 성금모금을 주도하고 있다.
텍사스 대한체육회, 조지아주 한인교회, 미 남동부 한인회 연합회 등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 인근 지역 한인들은 이미 상당량의 물과 식량, 구호품을 지원했다.
이상호 위원장은 “벌써부터 재해대책 본부에 모인 이재민들이 비교적 안락한 환경에서 먹고 자는 걱정은 안하고 있다”며 “미 전역 한인사회와 한국에서 보내주는 뜨거운 동포애에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세탁소·의류업 등 대부분 자영업
뉴올리언스 한인사회
뉴올리언스에 거주하는 한인인구는 약 1,500명(한인회 추산)이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대부분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다. 주요 업종은 세탁소, 뷰티 서플라이, 의류점 등. 다운타운에서 흑인을 상대로 사업을 하지만 한인 밀집 거주지는 백인밀집 지역인 매터리 지역이다.
루이지애나주가 미국 내에서 학비가 가장 저렴한 곳 중 하나인데다, 뉴올리언스에 유명한 침례교 신학교와 명문 툴레인대가 있다.
유명 관광도시인데다 대형 컨벤션센터가 있어 유학생을 포함한 한인 유동 인구도 500명 정도를 유지한다.
인구는 적지만 교회와 성당, 원불교 교당 등 한인 종교 시설은 8곳이나 된다. 한인회와 골프회 등 한인단체 활동도 활발하지만 내부 분열로 한인회는 두 동강 난 상태다.
뉴올리언스에서 1시간 거리인 루이지애나주의 주도 배이튼루즈 한인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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