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지 미주 크리스찬 다이제스트 ‘빛과 사랑’의 발행인 조국환(77. 플러싱 거주) 목사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항상 젊은이들 못지 않게 활기 넘치게 살고 있다. 88년도부터 만인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그리스도인에게 생명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한 취지로 한 달도 거르지 않고 그가 발행해온 이 문서는 이번 8월로 205호를 기록하고 있다.
54세 늦은 나이에 미국에 와 뉴욕신학대학교에서 신학을 시작, 59세 때 목사안수를 받은 그는 60세 환갑 나이에 창간 기념예배를 보며 이 책자 발행을 시작했다. 그것이 어느새 17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오늘도 변함없이 이 문서사역을 계속해오고 있다. 목회를 하지 않고 그가 이 책자를 발행한 것은 교단을 초월해 전도활동을 하겠다고 마음먹으면서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가족들도 모두 그가 목사 안수를 받는다고 하니까 늦은 나이에 고생한다고 교회개척을 반대한 것도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한 책자가 처음엔 500부, 또 700부, 1,000부 나가던 것이 이제는 3,000부를 돌파하면서 그동안 배달된 책자만도 40만 부나 된다는 것. 애독자도 늘어나 이제는 미 58개주 중 LA나 시애틀은 물론, 플로리다 등 전 지역에 이르며 회원들에 의해 교회에 안 나가는 한국의 형제나 부모에게 전도용으로,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와 같은 해외 선교지까지 이 책자는 널리 전해지
고 있다.
그는 이 책자를 만들 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영을 받느냐,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영접하는가, 생활 속에서 어떻게 크리스찬이 되었고, 하나님을 영접해서 어떻게 어려움에서 벗어났는가를 실은 체험기를 주로 다루었다. 이를 받아보기 위해 학수고대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어 그것이 보람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조 목사는 아무리 힘들어도 이 문서 발행을 매월 거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재정문제로 원고를 식자화하는 작업을 빼놓고는 하다 못해 발송을 위한 작업까지 직접 혼자 한다. 힘은 들지만 그래도 감옥 방문시 책을 받아본 죄수들이 책을 보내달라는 요청이 올 때는 이 사역에 더욱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조 목사에 따르면 ‘빛과 사랑’이 주는 의미는 빛은 ‘진리’요, 사랑은 ‘진리와 박애’를 말함이라고 한다. 때문에 보이지 않게 진리와 박애를 펼치면서 말없이 자기 돈으로 봉사하고 선교하는 사람들의 글을 이 책자에 많이 싣고 있다는 것이다.
6.25 사변 전인 49년 한국에서 전남대 사범대학을 졸업한 후 30년간 수학교사로 재직, 그는 광주 고교와 목포상고 등지에서 논증기하를 가르쳤고 광주에서 학원원장, 서울에서 유명학원의 강사로 활동, 수학에서 학원가와 학생들 사이에 알려진 명강사였다. 80년도 말 학원운영을 금하는 한국의 정책이 생긴 것이 미국행의 계기가 됐다. 조 목사는 이곳에 와서도 여전히 수학과외 교사로 한동안 열심히 뛰었다. 그에게서 배운 학생이 90년도에는 스타이브센트 고교에 1등으로 입학할 정도로 그의 수학지도 실력은 알려져 있었다. 그는 신학교를 다니면서도 과외지도로 돈을 벌어 공부했다. 그리고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 후 신학교 교수, 학장까지 지내다 플러싱에 뉴욕개혁연합총회 신학교를 설립, 초대학장을 지내면서 기독교 윤리학, 목회실천학, 조직신학, 기독교 교육학을 가르쳤다. 현재는 우드사이드 소재 핸더슨 미국 신학교 분교에서 기독교 변증학을 오는 가을 학기부터 가르칠 예정이다.
한국에서 교편생활을 하며 고교, 대학입시 수학참고서를 10권 이상이나 썼던 그가 신학교를 가게 된 것은 사실 처음에는 목사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우연히 신학교 도서실 자료를 구하러 갔다가 우리 같은 사람도 공부할 수 있는가 담당자에 물었더니 내일 등록이 마감이다, 공부하고 싶으면 원서 내고 해 보라고 해 영어성경, 설교 두 과목만 파트타임으로 시작한 것이 계기였다. 그리고 공부하다 보니 재미가 있어 다음 학기에는 풀타임으로 등록, 생각지 않게 목사, 신학교 교수까지 되었다고 한다.
당시 신학생으로는 그가 54세로 제일 고령자였는데 자신 보다 나이가 열 살이나 위인 정경화 트리오 어머니인 정은숙씨가 들어오는 바람에 다행히 최고령자는 면했다고 한다. 그는 그때 정씨가 연로한 나이에도 불구 얼마나 끈질기게 공부를 했는지 학과를 올 A로 졸업할 정도였다면서 그만큼 열심히 하는 사람이니 자식들을 그렇게 훌륭하게 키운 것 아니냐며 부모의 자세가 자녀들의 성공에 크게 좌우된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조 목사는 이제까지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반추해 보면서 젊어서 꿈을 가진 것이 결국 살다보니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본다며 그래서 모든 것이 그저 감사할 뿐이라고 말한다. 이는 그가 젊은 나이 교편생활을 할 때 이따금 책을 읽다가 장차 직업을 가져야 할텐데... 하며 ‘내가 과연 어느 길로 나가야 될 것인가’ 고민을 했었는데 그때 자신은 ‘교육이란 결국 자기교육에서 출발돼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일제 말 중학교 졸업반 때 해외에서 이루어지고 있던 독립운동의 본거지가 자신이 재학중인 광주서중이었다고. 그래서 자신도 영향을 받아 나라 장래를 생각하다 보니 자연히 인생에 관한 철학도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때 여러 가지 책을 읽다 보니 ‘나는 장차 윤리나 철학교수가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처음엔 수학선생, 나중엔 결국 기독교윤리를 가르치고 있으니 자신이 원래 갖고 있던 꿈으로 돌아온 셈이다. 말하자면 젊었을 때 그가 품던 생각대로 자기 완성을 위해 교육자가 됐다는 것. 그는 역시 자기완성을 위해 신학까지 공부해 목사, 철학교수가 되었고 포부대로 그 길을 가고 있다고 말해준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목사가 되기 전까지 평생을 수학선생으로 지내왔음에도 뉴욕한인 YWCA에서는 노인들을 위해 글짓기 지도를 지난 2년째 봉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Y측의 부탁을 받고 어떻게 할까 걱정을 했는데 가르치기 위해 공부하다 보니 자신이 국어선생인지, 수학선생인지 모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동안 조 목사는 ‘빛과 사랑’의 칼럼과 미주 기독교 방송의 ‘빛을 남긴 사람들’ 프로그램에서 지난 10년간 신앙심이 강한 위인들의 전기를 소개해 왔고 이를 담아 ‘빛으로 사랑으로’ 라는 제하의 마음의 양식, 삶의 지혜가 담긴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는 수학을 해선지 숫자처럼 인생도 정확하게 살아온 듯 언제나 봐도 반듯해 보인다. 그의 그런 자세는 결국 인생도 잣대대로 정확히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 가 싶다.
‘빛과 사랑’도 마찬가지로 그가 살아있는 한, 더욱 많은 사람에게 더 널리 전파되고 알려지리라. 그에게는 항상 뒤에서 열심히 내조하는 부인 조귀순(74)씨와의 사이에 출가한 세 딸과 외아들을 두고 있다. 맏사위는 맨하탄 기독실업인 회장에 이어 현재 미 총연합회 회장인 오대기씨이고 둘째 사위는 시애틀에서 학원을 경영하고 있다. 막내아들은 미국에서 공부해 한국에서 조 목사가 했던 것과 같이 영어교사로 뛰고 있다.
여주영 논설위원(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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