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착된 15인치 비디오 스크린 통해
의사는 모니터 보며 환자들과 대화
전국 수십개 병원 ‘원격 진료’활용
존스 합킨스 대학병원에서 방광수술을 받은 다음날 아침, 리스 대니엘(80)의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선 것은 의사가 아니라 로봇이었다. 5피트반 높이에 15인치 비디오 스크린 머리와 달린 바퀴 달린 로봇이 그의 침대를 향해 굴러오는 것이었다. 로봇의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아침 인사는 그의 주치의인 비뇨기과 전문의 루이스 카부시의 목소리였고 그의 얼굴이 ‘닥터 로봇’의 스크린에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젯밤은 잘 주무셨어요?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존스 합킨스 병원에 입원중인 주디스 메이(왼쪽)가 ‘닥터 로봇’의 스크린을 통해 주치의 루이스 카부시(오른쪽)와 이야기하고 있다. 옆에 서있는 사람은 의사 도우미.
닥터 로봇의 비디오 카메라를 통해 자신의 사무실에서 환자의 용태를 살피던 카부시는 다니엘이 밤새 열이 나고 기침을 하기 시작한 것이 걱정이라 그의 얼굴을 더 가까이 당겨서 들여다봤다. “안색이 어제만 못하시네요. 오늘 상태를 봐서 좋아지시면 퇴원시켜 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카부시는 리모트 컨트롤을 조종해 로봇을 복도로 내보냈다.
이와 같은 로봇을 통한 환자-의사간 면담이 현재 미국 내 수십개 병원에서 행해지고 있다. 로봇을 이용해 회진도 하고, 중환자실도 살펴보고, 응급전화에 응답도 하고, 다른 의사들과 상담도 하는 의사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로봇 및 기타 새로운 기술을 이용함으로써 의사들이 시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해 더 많은 환자를 볼 수 있으며, 정상근무 이외의 시간에도, 의사를 만나러 올 수 없는 곳에 사는 사람들도 진료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고 지지자들은 말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도 의사들이 환자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점점 더 적어지고 있는 판에 이러한 기술은 환자와 의사간 관계를 잠식시키며 의료행위를 더욱 비인간화시킨다고 반대하는 이들도 있다. 환자와 의사간의 관계를 인간 관계와 위로의 제공이 아니라 기본적인 정보교환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의료 모델은 범람하는 테크놀러지 속에서 인간을 더욱 고립화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료계에서 로봇의 역할은 점점 더 커가고 있다. 어떤 것은 수술, 그것도 대단히 정교해야하는 수술을 돕는다. 병원 안팎에서 필요한 물품을 보급하기도 하고 약을 나눠주기도 한다. 피츠버그에서는 요양원 환자들을 물리치료실로 데려가고, 약 먹을 시간을 알려주는 일을 하는 ‘너스봇’을 실험하고 있다. 조지아주의 ‘게코시스템스’라는 회사는 곧 의사와 간호사, 친지들이 혼자 사는 노인들을 살피고 보호하는 일을 돕는 ‘케어봇’을 시판할 계획이다.
의사와 환자가 직접 대면하는 일은 줄고 있다. 전화 통화, 교통 체증에 시달리며 운전해 찾아가 대기실에서 장시간 기다리는 낭비를 줄이기 위한 테크놀러지들이 이용되고 있다. 환자들과 e메일로 교신하는 의사들이 많아짐에 따라 환자들이 의사와 마음놓고 전자 교신할 수 있도록 안전한 인터넷 포털을 설치하는 종합병원, 클리닉, 닥터스 그룹이 늘고 있다.
대부분의 주에서 큰 대학병원과 종합병원들은 원격의료 네트웍을 가동하고 있다. 가난한 도심 지역이나 전문의를 찾기 힘든 외진 농촌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의사와 쉽게 접촉할 수 있게 해주는 이 네트웍의 또 다른 수혜자는 교도소에서 복역하는 이들이다.
정신과 의사들은 비디오 컨퍼런스로 정규 치료세션을 갖고, 외과의사들도 비디오를 통해 퇴원한 환자들의 환부를 살펴본다. 피부과 의사들은 비디오폰이나 비디오 카메라로 생중계되는 이미지로 환자 피부의 문제 부위를 검진한다. 보스턴의 파트너스 헬스케어 센터 원격진료센터 실장으로 낸터켓섬 주민들을 위한 장거리 피부과 클리닉을 주 1회 개설하는 조셉 크베다는 “피부암 환자를 많이 찾아내 많은 목숨을 구했다”고 자부한다.
이와 같은 진료방식은 또 가능한 한 자기 집에서 살기를 원하는 노인들의 보호에 특히 유용하다. 일부 양로원은 고객의 집에 비디오폰을 설치하고 있으며 청진기 및 기타 환자가 자신의 혈압, 맥박, 혈당 등을 정기적으로 측정해서 보내는데 필요한 의료기구들까지 비치시킨다.
많은 전문가들이 때가 되면 로봇이 진단을 하고, 환자는 의사와 의료 기록 및 리얼타임 데이터가 자동으로 전송되는 미래형 블랙베리 같은 기구를 통해 상담하는 날이 올 것으로 전망하는데 관계 연구에 따르면 원격진료의 질은 대면진료보다 좋으면 좋았지 못하지 않아, 환자들이 의사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퇴원도 더 빨리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도 기술적으로 문제가 없는 한 환자들이 만족했다. 정신과 진료에서조차 일단 TV에 대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 없어지면 환자들이 친밀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이점들을 인정은 하지만 테크놀러지가 의료인력 부족과 의료계 경비절감을 위한 눈가림이 되는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은 의사가 비디오로만 환자를 봐서는 안색이나, 자세, 미약한 떨림이나 냄새 같은 미묘하지만 중요한 증상들을 간과할 가능성이 있음을 지적한다. 유능한 의사는 환자에게서 혈압이나 맥박 같은 수치 이상의 것을 본다. 수치도 중요하지만 환자가 침대에 누워 어쩔 줄을 모른다든지, 이마에 진땀이 배어 나오는지를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때로 신체적 접촉은 치유 과정에서 한몫을 차지하기도 한다. 특히 안아주고 만져줄 사람이 사라진 홀로된 노인들의 경우 포옹과 접촉에 목말라 진통제보다 마사지를 더 필요로 하는 사람들도 많다.
현재 존스 합킨스처럼 복도에 로봇이 어슬렁거리고 있는 병원은 전국적으로 35개가 넘는다. 대당 12만달러, 빌리면 월 4,000달러인 이 로봇을 조종하는 스테이션을 의사가 사무실, 집, 또는 클리닉에 설치하는데는 5,000달러가 든다.
사실 의료행위의 많은 부분이 기계적, 통상적이지만 로봇으로 대표되는 원격진료가 직접진료를 보완할 수는 있어도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환자에게 암에 걸렸음을 비디오를 통해 이야기할 의사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로봇은 현재로도 훌륭하고, 앞으로는 비디오 이메일을 비롯, 감정까지 전달할 방법이 나올 것이라고 지지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김은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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