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들은 저마다 이민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한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바로 ‘꽃의 대명사’라 불리는 김영란(59. 플러싱 거주)씨일 것이다.
김씨는 한마디로 이민생활을 열심히, 억척스럽게 해온 사람이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게 되면 그의 30년 이민생활은 어딘가 남다른 데가 있다. 평범하면서도 진솔하고 누구보다 정이 많다. 그러면서도 나름대로 삶의 철학이 생활 곳곳에 진하게 베어 있다.
최근 뉴욕 타임스는 그의 이민 역사를 소개했다. 그의 미국 생활은 타임스의 제목처럼 ‘달콤한 아이스크림’과 같고 ‘짭짤한 눈물’과 같은 감동적인 이야기로 점철돼 있다. 김씨는 한국에서 숙명여대 국문과를 졸업한 후 고교 화학교사이던 김노수(현재 67세)씨와 결혼했다.
그는 슬하에 네 딸을 둔 어머니로서 가정을 올바로 지키며 네 자녀 모두 훌륭하게 키워 멋진 사회인으로 배출시킨 당찬 한국의 어머니다. 한마디로 이민의 첫째 목적인 자녀교육에 성공한 인물이다. 결혼한 큰 딸 수잔(37)씨는 뉴욕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후 현재 플러싱 병원에서 소셜워커로 근무하고 있다. 둘째 딸 저스민(35)씨는 마운트 홀리옥 여자대학을 졸업하고 프랑스 솔본느대학원에서 문학을 전공한 후 결혼했다. 셋째딸 선(33)은 파슨스 패션 디자인스쿨을 나와 미 전국 디자인협회가 주
최하는 대회에서 1등상을 차지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막내딸 엘리자벳(31)은 FIT에서 비즈니스 경영학을 전공한 후 결혼해서 지금까지 머천다이스 공부를 계속하고 있는 재원이다.
이 가운데 셋째와 막내딸은 김씨가 현재 운영하는 꽃가게에서 문하생으로서 어머니를 돕고 있다. 현재 김씨가 하는 일은 꽃 디자이너. 어려서부터 보기만 하면 모양을 만들어내며 손에서 떼지않는 꽃을 꽂거나 실크를 소재로 해 드라이 플라워를 아름답게 모양내는 일이다.
그는 이 일을 계속 해왔다. 그만큼 꽃이라면 사죽을 못쓰는 사람이다. 꽃을 너무도 좋아한 나머지 어릴 때부터 길 가다가도 꽃을 보기만 하면 꽃병에 갖다 꽂거나 아름다운 모양으로 만들어낼 정도로 하루도 꽃 없이는 못산다. 그러다 보니 결국 이민의 삶도 꽃으로 채색된다.
84년 김씨가 네 아이를 데리고 뉴욕 땅을 처음 밟았을 때는 한인들이 거의 없어 정착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는 초창기 퀸즈 서니사이드에 보금자리를 틀고 먹고살기 위해 인근에 야채 그로서리 가게를 시작했다. 그는 가게를 할 때도 야채 다듬기를 마치 꽃을 다루듯 매만져 보통가게 보다 손님들이 많았다. 몸은 고단했지만 장사가 너무 잘돼 돈을 긁어모았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김씨는 아이들 교육에 소홀하지 않았다. 틈틈이 학교에 가서 교사들과 교장, 교감선생들과 친분을 다지면서 자녀 돌보기에 관심을 쏟았다. 그 당시 한인학생들은 지상사 자녀들을 포함, 20명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교장과 교감은 유대인이 맡고 있었다고 한다.
그 때 김씨가 학교에 가서 보니 대부분의 부모들이 일에 너무 바빠 아이들이 외로운 상태여서 형편이 말이 아니더라는 것이다. 그걸 보고 김씨는 너무나 안타까워 그들을 방과후 집으로 데려와 보살피기도 하고 어루만져
주는 등 대모역을 했다고 한다. 당시 김씨는 울기도 많이 울었으며 이 사실을 집에 와서 그대로 일기로 남겼다는 것이다. 본토의 아이들과 한인, 또는 이민자 학생들과 싸우는 것을 보면 학교 교장이 이민자 학생 편을 들어주며 달래는 모습을 보고 김씨는 너무나 감동해 학교 아이들을 도울 방안을 궁리했다.
생각한 것이 바로 이민오던 해에 뉴욕한국일보사에서 본 한국문화가 월별로 아름답게 담긴 한국판 달력이었다. 이것을 한국일보사에서 40매를 얻어 학교 교무실, 교장실 등 곳곳에 붙였다. 이를 보고 학교 교장이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연락해왔다. 대화를 하던 중 이민자 어린이를 위해 무엇을 해주면 좋겠냐고 물어 어린이날 행사를 개최토록 해달라고 요청, 교
장의 허락을 받아내었다. 그리고 한 학생의 어머니인 조춘자씨와 함께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협조공문을 한글로 자신이 쓰고 조씨가 번역, 각 가정에 우송했다.
그 바람에 뉴욕일원의 초등학교 최초로 한국 고유문화 행사를 준비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 조씨가 율동을, 김씨가 동요 부르기를 방과후에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이것이 타학교로 확대돼 오늘날 각 학교에서 한국문화 행사가 이어지게 됐다는 것이다. 이날 행사는 학교측과 학부모, 학생 모두에게 기쁨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이때 같이 자리한 부모들도 애국가를 부르면서 함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학교 교장도 이렇게 함께 그리워하고 화목하게 지내는 민족은 처음 보았다며 몹시 감동했다고 한다. 처음 이 행사가 기사화 돼 나가자 그후 3년 사이에 이 학교는 한인학생이 100여명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김씨의 이러한 자발적인 교육열과 한국문화 알리기는 학교교장을 한국 방문 길에 오르게까지 했다. 그리고 행사를 치른 이듬해부터 한국일보에서 현재 뉴욕한국학교 허병렬 교장이 하던 어린이 판에 아이들의 생활이야기를 한글로 쓰게 했다. 매주 두, 세 편씩 전달해주는 모니터 역할을 담당, 한글사랑의 실천도 몸소 행했다.
누구라고 흉내낼까, 그야말로 억척같은 열의와 성의가 없었다면 이룰 수 없는 결과다. 이러기를 7년 동안 하고 한인 이영애 교사가 발령 받아 오는 것을 보고 안심하고 와잇스톤으로 이사를 했다고 한다. 당시 학교를 오가면서 코를 닦아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어린 학생들이 이제는 커서 변호사도 되고 의사도 됐다. 그들은 모두 결혼을 앞두고 그를 찾아와 웨딩 꽃을 주문하는 것을 보고 김씨는 너무 감격해서 어쩔 줄을 모르곤 한다.
와잇스톤으로 거주지를 옮긴 후 김씨는 맨하탄 브로드웨이에서 오빠와 같이 거의 15년을 가방공장을 했다. 이 때도 어김없이 건물 밑에 위치한 꽃 가게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며 가방가게와 꽃가게를 오고 갔다. 그리고는 곧 맨하탄에 웨딩꽃 쇼룸을 마련, 본격적인 활동을 하다가 다시 퀸즈로 이주, 계속 꽃꽂이를 하며 꽃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다.
김씨는 모든 자신의 삶의 체험을 ‘라일락 향기 가득한 뜨락에서’라는 제하로 한국일보가 공모한 창간 10주년 기념 제1회 수기모집에 응모, 34명중 우수작으로 뽑히기도 했다. 꽃과 더불어 살면서 믿음의 생활을 계속하며 철저히 주일을 지키고 있는 그는 거의 50년 세월을 교회 성가대로 활동, 하나님한테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교회(뉴욕교회)에 봉사하고 있다.
김씨가 가족 모두에게 강조하는 철학은 ‘나쁜 것은 빨리 잊어버리고 좋은 것은 우리 것으로 만들어 부와는 상관없이 축복된 삶을 사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디에 살든 자기의 현 위치에서 만족하며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며 사는 삶이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인생의 삶은 연극이나 드라마라고 말한다. 그러나 김씨는 자신은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연극이나 드라마는 잘못된 걸 잘라서 다시 고치고 해서 관객들에게 보여주거나 다시 연습해서 막을 올리고 할 수 있지만 우리의 삶은 한번 지나가면 돌이킬 수 없다. 때문에 순간 순간을 참되고 진실되게, 그리고 정직하게 그러
면서도 가장 인간적인 사랑으로 사람들을 대하면서 서로가 많이 웃어주고 한발씩 조금 양보하고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게 김씨의 지론이다.
한마디로 ‘자신에게 주어진 생을 잘 살아야 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인 것이다. 김씨는 이름의 끝 자인 ‘란(蘭)’과 같이 보라색을 좋아한다.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보라색의 여인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인생이 꽃처럼 향기롭고 아름답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며 사는 김씨의 삶은 정말 무지개처럼 각양각색의 색깔로 찬란하게 무뉘지어 언젠가는 뭍 세상에 빛을 발하는 날이 있을 것이다. 지금도 그의 이민의 삶 스토리는 지난 뉴욕 타임스에 소개된 후부터 벌써 영화사와 출판사로부터 연락이 와 여러 곳에서 번역중이다.
<여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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