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현 칼럼]
▶ 박정현 <가주정부 전산 시스템 경영자>
언제나 푹푹 찐다는 가주박람회(California State Fair) 날씨 덕일까? 노동절 연휴를 틈타 휴가를 갔다 와보니 늦여름 장미가 흐드러지게 만발해 있지 않은가. 나는 너무나 반갑고 흐뭇하여 그럼 그렇지! 하고 회심의 미소를 금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여름 막바지에 피는 늦장미는 그저 혼자서 피는 게 아니다. 봄에 피는 장미가 한겨울 내내 꾸민 조물주의 창조물이라면 늦장미는 정성껏 가꾸어준 후에나 볼 수 있는 정원사의 작품이랄까. 한여름 땡볕에 시달리며 초라하게 말라 가다가도 핀 가지를 쳐주고 물, 거름을 잘 주면 어김없이 저렇게 푸짐하게 보답을 한다. 어쩌면 우리네 삶과 똑 같은 것 같다...
지난 팔월 한 달의 일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간다. 한달 꼬박 나는 생과 사(生과 死)의 극과 극을 오가며 살았다. 한국에서 캐나다 록키산맥 여행차 오신 오빠가 오랜만에 동생 보러 들리는 신나는 일이 있나하면 시어머님이 중환으로 병원에서 사경을 헤메이고 계셨기 때문이다.
한자리 잘 잡고 비교적 젊은 나이에 퇴직한 오빠는 평생 꿈에 그리던 곳을 세계 곡곡 틈틈이 답사하며 인생을 즐기고 있어 주위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나는 두분 중 누구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삶을 한껏 음미한다는 것은 죽는 일만큼 중요한 것 아닌가.
늦장미 - 누구나 한번쯤, 특히 인생의 늦여름에는 생각해 봄직하다. 젊었던 봄날에는 아무런 꾸밈 없이도 삶은 찬란하고 생기가 넘쳐나지만 중년의 고개를 넘어서면 삶의 질은 모든 것이 스스로 하기 나름이다. 바로 늦장미 가꾸기이다.
우리 한국인들은 일은 모두 열심히 너무도 열심히 하는데 비해 인생관리에는 소홀한 이들이 많은 것 같다. 빈부를 막론하고 모두 생계에 직장에 사업에 지나치게 매달려 사는 것 같다. 한 푼이라도 더 벌고자 또 사업을 늘리고자 끊임없이 고리쇠에 매여 혼자만의 소중한 취미생활을 즐겨보지 못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그러다 보면 개인 특유의 취미생활이나 개성이란 찾아볼 수 없고 우리는 그저 생존할 뿐이거나 돈버는 기계로 전락해버릴 수 있다. 어느 날 삶이 무미 건조해지거나 절망적이 되기도 한다. 신문에서 종종 한국인 여성들의 우울증이 타국인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말을 본다. 왜 그럴까.
우리가 무엇인가 자기만의 생활을 가지고 틈틈이 다듬고 몰두하며 삶의 기쁨을 느끼고 즐길 수 있다면 우리는 그렇게 쉽사리 우울증이란 흙탕의 수렁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의 노력과 꿈으로 가꾸는 나만의, 우리의 세계는 인생의 금상첨화라고 할까.
얼마 전에 실리콘밸리에 사는 한 분과 얘기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은 부드럽고 활기에 넘친 이었다. 알고 보니 그네는 장장 26 마일이라는 마라톤에 참가하기 위해 바쁜 사업일 중에도 매일같이 달리기 훈련을 하고 있단다. 이십도 삼십도 아닌 사십 중반의 나이에! 나는 아! 그래서 이분은 언제나 미소를 띈 행복한 인상을 주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는 만사를 제치고 10월에 그네의 마라톤을 보러 갈 예정이다.
우리 시어머님과 나는 너무나 다른 배경에서 너무나 다르게 자랐지만 어느 날 우연히 우리가 20세기초 미국의 수제 유리제품을 즐기고 수집한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단짝(?) 친구가 돼 버렸다. 우리는 같이 쇼핑도 다니고 또 어딘가 여행을 갈 때면 상대가 좋아할 만한 물건을 어렵스레 찾아내어 선물하곤 했는데 고부지간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성이 서로 극진하여 우리의 우정은 온 집안에 소문이 파다했었다. 우리는 삭막할 수도 있는 사이를 조그만 몇 개 유리 조각품을 가지고 꽃을 피웠다. 이 또한 늦장미의 만발이 아닐까? 결코 절로 피어나지 않는...
우리 집 정원에 온갖 여름 꽃이 만발하던 어느 날 그분은 조용히 세상을 떠나셨다. 전에는 그저 나의 버거운 여러 취미중의 하나일 뿐이었던 우리의 그 유별한 취미가 새삼 다정스레 느껴진다.
그후 어느 날 소나기가 주룩주룩 쏟아졌다. 옛날에는 가신 이를 위한 눈물이라 했었다지. 날이 개자마자 나는 정성들여 장미마다 가지를 자르고 거름을 주며 스스로 다짐했다. 올해는 늦장미를 가득 피우리라 하고. 대접 한번 제대로 못해드리고 서운한 마음으로 보내드린 오빠를 위하여, 영영 멀리 가신 이를 생각하며, 그리고 나 자신 스스로의 인생을 꽃피우기 위하여...
그래서 요즘 나는 무엇을 더 열심히 볼 것인가에 몰두해 있다. ‘톰 소여의 모험’을 저작하고 해박한 유머, 풍자와 모험으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의 명언이 새롭다.
한 이십년 후에는 당신은 오늘 한 무슨 일 보다는 오늘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해 더 후회할 것이다. 자, 안전한 항구를 떠나라. 닻을 건져라. 돛을 올리고 항해를 떠나라. 세계가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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