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시아드 대회 기간에 북한 응원단이 남긴 갖가지 화제는 북한 체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 그 가운데서도 김정일 플래카드 소동은 북한이 과연 어떤 나라인가를 실감나게 설명해 주고 있다.
TV 뉴스를 보니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악수하는 장면이 그려진 플래카드가 비에 젖은 것이 말썽이 된 모양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네까”. 북한 여성들의 항의는 대단했다. 김정일 장군의 모습이 담겨 있는 어떤 것도 비에 젖도록 내버려둘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항의 포인트였다. 대구 시민들뿐만 아니라 이 뉴스를 지켜본 한국인 대부분이 얼떨떨했으리라 생각된다.
뭐가 잘못되었단 말인가. 플래카드의 김정일 얼굴이 찢기어졌다면 그나마 이해가 되겠지만 비에 젖는 것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예수나 석가모니의 초상이 새겨진 플래카드나 인쇄물이 비에 젖었다고 항의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는가. ‘이상한 나라’에서 온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북한은 국가인가, 아니면 신앙집단인가.
평양에 여행하는 사람이 꼭 신경 써야 할 사항이 한가지 있다. 김정일 위원장의 얼굴이 실린 로동신문이나 인쇄물을 함부로 깔고 앉았다가는 무슨 망신을 당할지 모른다. 남북 정상회담 때 남한 기자들이 김정일 사진이 담긴 신문을 찢어서 깔고 앉았다가 호되게 무안을 당한 적이 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 김정일에 관한 한 모든 것이 신성불가침이다.
우선 대화에서 두 사람의 호칭에 대해 조심해야 한다. 김일성은 ‘수령님’ ‘주석님’이라는 존칭을 붙여야하고 김정일은 ‘장군님’ ‘위원장님’으로 불러야 한다. 그런데 처음에는 습관이 안 돼 자기도 모르게 ‘김일성은…’ ‘김정일은…’ 하는 식으로 반말이 튀어나와 자기가 말해 놓고 자기가 놀라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평양 갔을 때의 일이다.
접대원(웨이트리스)들이 땀을 흘리며 무거운 접시를 들고 왔다갔다해 한 미주 교포가 식사 후 아가씨 2명을 불러 팁을 주었다. 그 팁은 넉넉한 액수였다. 접대원은 “이게 뭡네까”라고 물었다. “화장품이라도 사서 쓰세요”라고 교포가 대답하니까 “일 없습네다. 존경하는 우리 김정일 지도자께서 화장품을 주십네다”라면서 거절했다.
다시 “그럼 동생들에게 과자라도 사주세요”하니까 이번에는 “과자도 위대하신 장군님께서 주십니다”라면서 돈을 끝내 받지 않았다. “규정상 팁은 못 받게 되어 있습니다”하면 될 것을 왜 꼭 ‘김정일 지도자’ ‘위대하신 장군님’ 운운하는지 이해가 안되었다. 나중에 들으니 그럴 때는 한 사람만 불러 팁을 주어야지 두 사람을 부르면 누가 고자질할지 모르기 때문에 절대 안 받는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가장 큰 명절은 추석이나 설날이 아니다. 김일성의 생일(4월15일)인 4월절과 김정일의 생일(2월16일)인 2월절이다. 돼지고기와 소주, 학용품 등 갖가지 생활필수품이 배급되기 때문에 이날이 기다려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김일성과 김정일은 신격화되어 있고 우상화되어 있다 북한은 엄밀하게 말해 독재체제가 아니라 교주체제의 나라다. 북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평양을 가볼 필요가 있는 것도 불가사의한 북한의 체제를 현장에서 직접 느낄 때 여러 가지의 의문이 풀리기 때문 이다.
사람이 신격화되면 무오류성과 완전무결성을 강요받게 되는 법이다. 김정일은 미국과 타협하고 싶어도 저자세로는 타협할 수가 없는 형편이다. 이렇게 되면 지도자의 신격화 이미지가 손상을 입게 되고 주체사상이 흔들려 대내적으로 큰 혼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있었던 북한 응원팀의 해프닝을 잘 살펴보면 ‘6자 회담‘에서 앞으로 북한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의 윤곽도 그려 볼 수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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