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리아의 수도 울란바타르에 ‘징기스칸이라는 호텔이 있다. 몽골에서 가장 현대식으로 지어진 호텔로 관광업계의 얼굴이다. 이 호텔 로비에 들어서면 여기저기서 톤이 높은 한국말이 들려오고 아침식사 때 식당에 내려가 보면 한국인이 대부분이다.
몽골에 한국 붐이 한창이다. 울란바타르 시내를 지나노라면 곳곳에 한글로 쓰여진 간판이 눈에 뜨이고 수퍼마켓에는 한국식품 일색이다. 백화점에는 한국제 의류들이 비싼 가격으로 전시되어 있고, 젊은이들은 한글이 적힌 티셔츠를 자랑스럽게 입고 다닌다.
심지어 몽골에 기증한 버스에는 ‘미아리’ ‘구파발’ 등의 글자가 지워지지 않은 채 그대로 굴러다니고 있고 ‘수원경찰서’ ‘국세청 연수원’이라고 적힌 미니밴들도 눈에 띈다. 왜 한국어로 쓰인 것을 지우지 않느냐고 물으니까 한국제 차량이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라고 안내자가 대답한다.
각 분야에서 한류풍이 인기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 의료진도 파견되어 있는데 연세대 종합병원이 몽골 환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고 ‘서울 식당’의 부페가 손님대접의 최상급 대우로 평가될 정도다. 한국식당이 15개나 되고 시내 중심가에는 ‘서울’이라는 거리도 있다.
몽골인들은 한국인과 얼굴이 너무 비슷해 울란바타르 거리에 들어서면 외국에 왔다기보다 한국의 어느 지방 도시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몽골인들은 중국인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갖고 있지만 한국인에 대해서는 대단히 친절하다. 러시아인은 몽골을 중국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다 하여 은인처럼 여기고 몽골 문자도 46년부터 러시아 문자로 바꾸어 버렸다.
몽골리아의 면적은 한반도의 8배나 되지만 인구는 250만에 불과하고 실업률이 40%나 된다. 서민들의 소원은 한국에 나가 돈벌어 오는 것이고 2만명이나 한국의 공장에 취업하고 있다. 이웃 나라인 중국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데 비해 몽골이 후진국 대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몽골리아를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씩은 “한때 세계를 정복했던 몽골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아이러니컬하게도 오늘의 몽골 후진성은 징기스칸의 세계 정복과 연관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징기스칸은 세계정복 과정에서 자신에게 항복하지 않는 민족은 수백만 수십만씩 학살했기 때문에 원제국이 망한 후 이웃나라에서는 몽골민족이 다시 일어날까 봐 극도로 두려워했다. 그 여파로 나타난 것이 몽골민족 씨 말리기 작전이고 이는 중국에 의해 철저히 자행되었다. 중국은 기회 있을 때마다 몽골에 쳐들어가 남자들을 죽이는 정책을 펴왔기 때문에 몽골민족 인구가 늘어날 수가 없었다.
울란바타르를 관광하노라면 또 한가지 이상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징기스칸이 몽골의 상징인데도 징기스칸 기념물을 찾아보기 힘들고 몽골의 젊은 세대가 징기스칸에 대해 우리보다 더 모르고 있는 사실이다. 징기스칸 동상도 없다. 공산당 혁명가 동상은 이곳 저곳에 세워져 있는데도 말이다. 이는 민족주의 부활을 두려워해 공산당이 징기스칸 말살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학교 역사 시간에 징기스칸을 가르치지 않았다고 한다. “몽골민족의 위대한 지도자 징기스칸” 운운한 사람은 감옥에 보냈다.
몽골 정부가 징기스칸 연구를 장려하고 기념박물관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최근의 일이다. 문호가 개방되고 관광객이 몰려오면서 징기스칸을 찾는 사람이 너무나 많아진 데에 따른 것이다. 징기스칸이라는 좋은 관광자원을 가지고도 개발을 못해 관광수익을 올리지 못한 셈이다. 그러던 와중에 KAL의 서울-울란바타르 노선이 열리고 한국인 관광객이 쏟아져 들어와 한국 붐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징기스칸은 세계를 정복했지만 바로 그 ‘징기스칸’ 때문에 몽골이 지난 수백년 동안 고통을 당해 온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문화를 동반하지 않은 세계 정복은 공간적으로만 존재하고 시간적으로는 존재하지 못한다는 것을 몽골의 현실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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