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대통령을 겁내지 않는다’
뉴욕타임스 기사(노무현대통령이 처한 정치적 곤경을 분석한)읽다가 이 문장을 보는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감출 수만 있다면 감추고 싶은 아픈 ‘치부’를 그만 들켜버린 듯한 자괴감 때문이었다.
진작에 그런 상황을 어느 정도 예상했기에 크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도 스물스물 솟아오르는 ‘속상함’까지 어쩔 수는 없었다.
"대통령 잘못 뽑았다. 아직 고생 덜했구먼" 적지 않은 한인들이 노후보의 대통령 당선 소식을 듣는 순간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것은 단지 노무현씨가 대통령에 된 데 따른 반감 때문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회창씨가 당선되지 않은 데 대한 충격 때문은 더욱 아니었을 것이다. 나라만 잘 경영한다면 누가 되던 한인들이야 무슨 상관이겠는가.
다만 노후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는가를 잘 아는 상황에서, 그가 과연 대통령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앞선 때문이었으리라.
그 우려는 지금 취임 1백일만에 현실로 크게 불거지고 있다.
그가 그토록 큰소리쳤든 정치개혁은 집안사람들에게 발목잡혀 추한 권력다툼의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외교적 승리’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었던 방미외교 성과조차 자신의 지지세력들로부터 `정치적 실패작’으로 비난받고 있다. 현실적 상황에 아랑곳 않는 그들의 반미감정은 여전히 폭발력을 잠재하고 있고, 북핵문제는 ‘추가적 조치’를 향해 서서히 다가가고 있다.
그것 뿐인가. 자고 일어나면 이해집단들의 이기적 데모가 끊이지 않는다. 노대통령 자신은 본인과 연루된 측근과 친척의 비리문제로 곤욕을 치루고 있다.
그 가운데 민생과 경제는 실종된지 오래다. 사람들은 도무지 조마조마 불안해서 살 수가 없다고 난리다. 취임 1백일인지, 퇴임 1백일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다. `유사 레임덕’이라고 까지 한다.
대통령 입에서 "대통령직 못해먹겠다"는 막말까지 나오고, 그말이 초등학생들에까지 회자되고 있다. 그 측근들은 대통령의 그런 ‘부족함’을 보완하기는커녕 책임을 언론에만 돌리고 있다.
그게 어떻게 언론 탓인가. 그 책임은 분명 대통령에 있다. 대통령직은 의욕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다. 막중한 직무를 이끌어갈 수 있는 실력과 경륜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 능력발휘를 가능케 하는 지도력도 있어야 한다. 특히 한국적인 정치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지금까지 나타난 것만 가지고 볼 때 노 대통령은 한마디로 실망이다. ‘차라리 참신한 진보 성향의 국회의원으로 남아 있는 것이 나을 뻔했다’는 어느 칼럼니스트의 평가에 공감한다.
국민은 현재 노대통령이 처해있는 태생적 한계를 알고 있다. 그의 집권은 구집권세력과 젊은 세대의 이질적인 합작품이었다. 그들의 목적은 달랐지만 선택은 일치했다. 그도 인간인 한 자신을 대권의 자리로 밀어준 사람들에게 박절하게 안면몰수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가자니 나라꼴이 우습고, 그래서 그들을 버리자니 반발이 거세다.
그것은 그러나 노 대통령이 감수하고 해결해야 하는 ‘자업자득’이다. 당연히 지금의 혼란을 충분히 예견했어야 했다.
문제는 그런 혼란에 대한 대응방식이다. 예견된 상황을 좀 더 의연하고 슬기롭게 대처해 나가면 된다. 그에게 반대표를 던진 국민도 기왕 뽑은 대통령이니 잘해주길 바랄 것이다.
불행히도 노 대통령은 그런 기대에 충분히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명분과 실리를 모두 취하려니 이것도 저것도 아니게 돼 버렸다. 그 과정에서 포퓰리즘적이거나 임기응변적인 태도로 혼란을 자초하고 있다. 입만 열면 말실수요, 움직이면 파격이다.
그것은 자기애의 과잉이거나 독선적 반응과 다르지 않다. 국민투표로 집권한 노 대통령이 자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정책 반대 행동에 신경질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아니면 올바름을 독점하고 있다는 자기 최면 때문은 아닌지. 탈권위도 지나치면 유치해진다.
이것은 노대통령의 태생적 한계와는 다른 개인적인 자질 문제다. 자신은 그것을 ‘문화적 충돌’이며 언론이 악의적으로 비판한다고 답답해한다.
그러나 노대통령의 그런 생각에 공감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아무리 힘들어도 대통령은 힘들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힘든 일인 줄 모르고 시작한 일이 아니다. 그 힘든 일을 극복하는 것이 또한 대통령의 임무다.
노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맞아 민생을 적극 챙기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이제 국민을 그만 실망시켰으면 좋겠다. 그런 전제 하에 국민들도 여유를 찾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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