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재숙 칼럼
▶ 10년만에 방문한 한국 (3)
10년만에 방문한 한국에서 나는 완전한 촌뜨기였다. 어디가 어딘지 통 모르니 전철이나 버스는 엄두를 못 내고, 어디든 택시를 타고 다녔다.
한번은 내가 주소를 대면서 거기에 데려다달라고 하자, 기사분이 “난 거기가 어딘지 모르는데요." 했다.
당황한 내가, “어머, 그럼 어떡해요. 저도 서울을 전혀 모르는데요." 하니까, “아니, 왜 서울을 모르십니까?" 라고 그가 물었다. 그래서, “미국에서 사는데, 10년만에 방문을 왔거든요." 라고 대답을 하자, 그는 갑자기 뻣뻣해지면서, “아니, 제 나라가 좋든 나쁘든 제 나라에서 살아야지, 왜 남의 나라인 미국에서 삽니까?" 하는 게 아닌가! 근간 한국에서 기승하는 반미 감정을 이렇게 택시 안에서 처음으로 맞닥뜨린 셈이다.
두 번째는 다른 데도 아닌, 내가 묵고 있던 오빠 집에서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거실로 나가니, 마침 봄방학이라 아침부터 엄마가 출근 길에 데려다 놓고 간 모양으로, 초등학교 4학년인 오빠의 손자가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굿모닝!" 하고 아이에게 인사를 했다. 그러자 아이가 대뜸, “멀쩡한 우리말을 두고 왜 영어를 쓰세요?" 하는 게 아닌가! ‘이 엉뚱한 녀석 봐라!’ 하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굿모닝 정도야 우리말이 돼버린 지가 오래지 않았니?" 라고 나는 응수했다.
어린애가 그 나이에 이런 생각을 스스로 할 리는 만무하고, 아마 반미에 앞장서는 전교조 소속의 학교 선생님들에게 들은 대로 내 뱉은 것이 분명했다. 그러면서도 아이는 아무 생각 없이 일주일에 몇 번은 영어를 배우러 학원에 간다. 미국에서 살다 온 사람이 방문하면 제발 자기 애에게 영어로만 말해달라고 간청하는 부모도 꽤 있다고 한다. 뭐가 뭔지 뒤죽박죽인 셈이다.
내가 한국에 간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한 후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각종 파격 인사로 나라가 술렁이고, ‘5060’이니 ‘3040’이니 ‘코드가 맞다’느니 하는 신조어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반미 좀 하면 어떠냐?" “대등한 대미 관계"를 외치면서 선거 운동을 하다가 당선된 노 대통령은 이제 미국 측의 반한 기류, 특히 미국인 투자가들의 냉담한 태도와 북핵에 대한 강경책, 미 제2사단 한강 이남 재배치 움직임 등에 상당히 난감해 하기 시작한 때였다.
한 번은 또 택시를 타고 가는데, 늙수그레한 기사분이 미군부대 옆을 지나게 되자, “한국 동란도 겪어보지 못하고 북한의 실상도 모르고 십중팔구 군대도 빽 써서 안 간 젊은 놈들이 미군 철수하라, 하라 해서 이제 미군이 떠나면 우리 경제가 큰 타격을 받고 북한은 재깍 남침을 할 것"이라면서 한 바탕 울분을 토했다. 절대 미군이 나가면 안 된다는 것이다. 반미를 외치고 친북 성향을 가진 3040들이 이제 싸우지도 않고 나라를 통째로 북한에 내어 줄 것이라고 걱정이 태산 같았다.
같은 직업이지만 어떤 젊은 택시 기사분은 내게 전혀 반대의 말을 했다. 미군 나가라 했더니 그래 나가겠다 하는 모양인데, 그럼 나가면 된다. 우리의 민족 공조와 통일에 미국은 걸림돌일 뿐이다. 그런 미국은 이제 한국에게 필요 없다. 미군이 나간다고 북한이 남한을 절대 치지 않을 것이다... (이런 한국인들의 태평함은 해외에서 고조되는 북한에 대한 불안감과 매우 대조적이다. 내가 한국에 간다고 하니, 많은 미국인 동료들이 “너 지금 한국에 나가도 되느냐? 다시 생각해 보라"고 정말 나를 위해 걱정을 해주었다. 이럴 때 내가 “정작 당사자인 한국인들은 전혀 걱정 안 한다."고 응수하면 그들은 매우 놀라워했다.)
내가 젊은 기사와 나이 든 기사 중 어느 쪽에 동조하는가는 여기에서 얘기할 필요가 없다. 다만 미국을 내 나라로 선택해서 살지만 한국을 가슴속에 안고 사는 사람으로서, 실리를 생각하지 못하고 ‘명분’과 ‘오기’의 주변을 맴도는 반미 논조와 이미 반미의 대가를 치르기 시작한 고국의 형편에 관해서는 안타까움을 금하기 어렵고, 이런 한국을 보는 미국의 심정이 매우 착잡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미국은 50년 동안 한반도에 평화를 이룩하고 유지시키는데 동맹국으로서 한국과 긴밀히 공조해 왔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언제인가부터 이 젊은 택시 기사분처럼 미국이 한국의 번영과 미래에 방해물이며 걸림돌이라는 주장이 한국 안에서 목소리를 높이게 되었고, 이에 미국은 경악하고 배신감마저도 느끼게 되었다. 또 북한이 더 위험한데 왜 이락부터 치느냐고 의아해 한 미국인들도 많다. 게다가 북한은 핵보유 인정까지 하니 한국에 투자한 것을 팔아치우거나 새로 투자하기를 꺼리는 것은 당연하고, 한국은 미국에게 ‘포기해도 좋은 나라’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이렇게 한국에서 나는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신문과 방송을 접할 때마다, 젊은 세대 대(對) 나이 든 세대, 가진 자 對 못 가진 자, 노동자 對 고용자, ‘미군 나가라!’ 對 ‘제발 있어주오’, ‘민족 공조 對 한미 공조, 햇볕 對 채찍, ‘계속 더 퍼주기’ 對 ‘절대 더 못 줘!,’ 노무현을 사모함 對 노무현에 대한 냉담... 등으로 한국이 양분화되었다는 느낌을 아주 강렬하게 받았다. 양분화 현상은 언제나 있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이제 그 중간층이 없다는 것과 이 양극 사이의 골이 한없이 깊다는 것이다.
서로 “나만 옳다"는 아집에 빠져 있고, 거의 전투 심리에 가까운 적대감이 형성되어 있는 것 같다. 매우 우려되는 사회 기류라고 하겠다. ‘코드가 맞지 않는’ 사람들과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이고, 다양한 의견들을 수용하고 이견을 좁혀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코드가 맞는’ 끼리끼리만 모이고 그렇지 못한 상대는 내치는 사회는 분열과 후퇴를 거듭할 뿐일 것이다. 지금 한국의 양분화(양극화)는 일시적인 현상이고 발전적으로 극복될 수 있는 문제이길 간절히 믿고 바란다.
/애팔래치안대 정보기술 시스템 분석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