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그 날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고장난 차고 문을 아무 생각 없이 확 잡아 내렸을 때였다. 아불 싸! 벌어진 문의 틈새에 들어가 있던 양손의 중지와 네 째 손가락들이 그사이에 끼어 버렸다. 입에서는 덫에 걸린 짐승처럼 저절로 신음소리가 났다. 간신히 빼낸 손가락들은 검게 죽어 있었다. 며칠의 아픔 뒤에 다른 손가락들은 살아났다. 등치 큰 왼손 중지 덕분이었다. 손톱사이로 계속 검은 피가 흐르던 왼손 중지는,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손톱 속에 죽은피가 남아있고 손끝은 감각이 없다.
손가락을 보면서 친구 J와 그의 형 생각이 났다. 고향에서 수재 소리 듣던 J에 비해 형은 초등학교만 나와 지금도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데, J는 어려서부터 형이 따돌림을 받게되면 그의 편에 서곤 했다. 지금도 형은 물론 큰조카까지 챙기는 그가 이런 말을 했다. "형이 형제들을 대신해서 멍에를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공부를 잘한 것도 왠지 형 덕분이란 생각도 들고..."
평생 무역업을 해온 그 친구는 선진국이 경제전쟁에서 승리하여 풍족하게 살게되면 상대적으로 다른 국가가 가난하게 살게 된다는 설명을 하다가 한 말이었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에서 안나의 남편은 귀족으로 사회적으로 출세 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정서적으로는 좀 부족한 사람인 듯 싶다. 왜냐하면 자기의 아내가 얼마나 착하고 아름다운 여인인가를 모르기 때문이다. 오히려 <브론스키>라는 청년 장교는 안나를 만남으로 아름다움에 감동하고 무한한 기쁨을 얻는다. 그녀도 열렬히 사랑해주는 총각 때문에 체념의 고리에서 벗어나 사랑의 고리로 꽃처럼 피어난다.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나의 사춘기 시절 무척 감동을 준 영화였다. 파시스트에 대항하는 유격대에 파견된 로버트는 험악한 남자들 사이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마리아와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부모가 학살되고 수용소로 호송되다가 게릴라들이 열차를 습격하여 살려낸 여자였다. 로버트는 그녀가 파시스트들에게 정조를 빼앗겼다는 말을 듣고도 정신적으로 순결한 그녀를 사랑한다. 총을 들고 바위틈에서 서로의 체온을 나누고 있지만 내일을 예측 할 수 없는 사랑이었다. 다리를 폭파하고 철수 하다가 부상을 당하고 쓰러진 로버트는 함께 남겠다는 마리아에게 말한다.
"우리 둘은 이젠 당신 속으로 들어가는 거야....... 자 당신은 우리 둘을 위해서 어서 가 줘. 정말이야. 이제 우리들은 당신 속으로 들어가는 거야"
로버트가 추격자들을 막는 사이에 마리아는 다른 유격대에 의해 강제로 말에 태워져 떠난다. 로버트는 죽어도 그와의 고리, 마리아는 살아서 로버트를 가슴에 품고 산다.
죽음은 끝나도 관계는 계속 된다는 말을 사랑은 계속 된다는 말로 바꾸고 싶다.
다음은 인터넷에서 떠온 이야기이다. 유명한 식당에 아침 일찍 초등학교 5학년쯤 되어 보이는 거지 소녀가 눈먼 아버지 손을 잡고 들어 왔다. 주인이 나가라고 하자 "오늘이 저희 아빠 생일이니 여기서 밥을 먹게 해주세요. 돈은 드릴께요" 설렁탕 두 그릇을 시켰다. "아빠 소금 타 드릴께요" 그러고는 제 밥그릇에서 고기를 건져서 아버지 밥그릇에 조심스럽게 넣어 주었다. 남루한 거지 아버지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큰 식당의 직원들은 사장님과 함께 이 광경을 숙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덕분에 아버지 생일날 따뜻한 밥을 먹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딸애는 카운터 옆에 가서 아버지 손을 놓고 돈을 꺼내 주인에게 주었다. 그리고 아빠의 손을 잡고 그곳을 떠났다.
엊그제 미주판 신문에는 송기성목사가 미 해병대원으로 이락 전장에 가 있는 아들의 편지를 소개했다. "여기서 고생 많이 해도 집에 있는 사랑하는 친구들과 식구들은 고생 안하게 하기 위하여 기쁘게 날마다 살고 있습니다." 문장은 서툴지만 어떤 미사어구보다 내게는 감동적이었다.
세상만사는 서로서로 어떤 고리로 연결 되어있다. 같은 고리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 감성의 차이로 행복과 불행으로 나누어진다.
이제 당신에게 다가온 불행이 어디에선가 당신과 한 고리로 연결되어있는 이에게는 행복으로 다가서고 있다면 당신의 고통을 행복으로 터닝 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불행을 행복으로 전환시킨다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성사되는 순간은 명작 명화에서처럼 최고의 감동이다. 우리와 악연의 고리 때문에 2천년 전 십자가를 선택한 어떤 분처럼.
손을 내려다본다. "고맙다 중지(中指)야" 다른 손가락들이 상처 난 손가락을 따듯하게 보듬어 줄 때마다, 미흡한 나 때문에 고통을 받는 이를 떠올리고 용서를 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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