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문학자 칼럼]
▶ 조경근 교수(스탠포드대 객원 연구원)
얼마 전에 나온 <오늘의 기독교신앙>(Christianity Today) 5월호에서 호주의 필립 젠슨(Phillip Jensen) 목사는 미국-이라크전쟁에 대한 기독교인의 다섯 가지 시각을 약간의 비평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구분의 기준과 내용에 모호한 점이 있긴 하지만 들어볼만 하다.
첫째, 모든 전쟁과 폭력에 반대하는 평화주의 시각으로서 어떤 문제든 무력사용이 해결 방법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따라서 이라크전쟁도 당연히 반대다. 젠슨은 우리 모두가 이런 관점에 심정적으로 동의하지만, 우리가 현재 에덴동산이나 천국이 아닌 인간 죄성(罪性)의 세상에 살고 있다는 점에서 평화주의는 신앙인의 실수라고 꼬집었다.
둘째, 늘 전쟁을 강구하고 이익을 위해 폭력사용을 개의치 않는 매파의 시각이다. 그는 이번 전쟁에서 즐거움이나 쾌감을 느낀 자들은 하나님에게서 벗어나 있는 자들이므로 이들에게 회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셋째,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다"는 성경 구절처럼 전쟁이 불가피한 경우가 있지만, 미국의 침공은 이라크가 주변국을 침략한 것도 아니고 테러지원이나 대량살상무기의 증거가 나온 것도 아니므로 ‘때가 아닌’(not yet) 전쟁이었다고 보는 견해이다. 젠슨은 이에 대해 우리가 뽑은 정부의 선택을 우리 스스로 존중해야 하지만, 이 전쟁이 하나님의 전쟁은 아니라고 못 박았다.
넷째, 이번 전쟁이 행동해야할 때 행동한 시의적절(時宜適切)한 전쟁이었다고 보는 견해이다. 그는 이 견해에 대해서도 이번 전쟁이 우리의 전쟁이지 하나님의 전쟁은 아님을 강조하면서, 이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말과 평가에 계속 귀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섯째, 입장이 없는 각이다. 사담 후세인의 정권이 지속되는 것도 또한 전쟁이 일어나는 것도 원치 않는다는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그는 이들이 정치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몰라도 기도는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젠슨 목사는 이 다섯 가지 시각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성경적이라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아마 더 정확히 말해서, 그런 결론을 내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다만 기도할 뿐이다"는 말로 글을 마치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예견되면서 이것이 과연 하버드대학의 헌팅턴(Samuel P. Huntington) 교수가 말한 ‘문명간의 충돌’인가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이 논쟁은 부시 대통령이 처음부터 이 전쟁의 성격을 ‘악에 대한 선의 응징’으로 규정지으면서 일어난 것인데, 당사자인 헌팅턴은 문명간의 충돌 현상이 아니라고 딱 잘라 말했다.
우리가 주의해야할 것은 이번 전쟁을 성전(聖戰)으로 규정하려는 시각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대통령이 기독교인이고 그가 전쟁에서 신앙을 앞세웠다고 해서 인간 전쟁이 곧 성전이 되지는 않는다. 신앙에 대한 부시의 강조는 미국이 기독교 국가인 점과 상호 상승작용을 하면서 미국식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신앙과 혼돈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부시가 그 점을 염두에 두었을지도 모르는데, 사실상 인류 정치사에서 지도자나 집권세력이 신앙을 통치 수단의 하나로 이용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둘째, 전쟁을 두고 기도했다고 해서 사람의 전쟁이 하나님의 전쟁으로 바뀌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은 이번 전쟁에 임하면서 국가적 기도일을 정했고 또 정부와 부시 주변에도 수많은 기도 모임이 만들어졌다. 전쟁을 하게 된 자기 국가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교인들에게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미국이 낳은 세계적 사회학자 밀즈(C. W. Mills)의 지적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역작 <파워엘리트>에서 교회 지도자들이 권력자들이 저지른 전쟁과 이에 따른 희생을 정당화하고 미화해주는 수단적 역할을 해왔다고 비판했다. 교회 지도자들은 정치와 기업과 군대의 엘리트들이 추구하는 이익의 좁은 시야를 넘어서서, 성경말씀으로 인류사회를 정화하고 인도하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아울러 지적되어야 할 것은 기도했다는 사실과 전쟁에서의 승리를 단선 연결시켜 이 전쟁이 하나님이 원하신 전쟁이었다고 단정하고 싶은 유혹을 조심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의 복이 나중의 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성경 교훈의 하나다.
셋째, 전쟁 동기에 있어서 이라크전이 미국의 경제적, 전략적 이익추구에서 시작되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성경 속에서 하나님이 개입하신 전쟁의 역사를 보면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정말 성전의 의미가 분명할 때는 전리품에 대해 매우 엄격한 태도를 요구하신 것을 기억한다. 미국이 전리품에 대해 자유로울 수 있는가? 미국이 그 전리품을 미국보다 이라크를 위해 더 많이 사용하려고 하는가?
넷째, 이번 전쟁이 성전이면 이는 곧 이 전쟁이 문명간의 충돌임을 의미한다. 만약 그렇다면 이 전쟁은 엄청난 인류 비극을 미국이 스스로 시작한 결과가 된다. 어떤 이는 이를 요한계시록이 말한 재앙의 시작 즉 첫 번째 인을 뗀 사건과 연관 지우려 한다. 첫 번째 인을 떼었을 때 흰말을 탄 자가 활을 가지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고 기록된 부분이다. 그러나 경제적, 전략적 이익의 동기가 분명한 미국이 선의 궁극적 실현을 위해 그리스도가 내보낸 그 흰말을 탄 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성전으로 해석하고 떠벌리는 것은 인류를 기독교권과 이슬람권으로 편 가르고 대립과 갈등을 부추겨 결과적으로 인류 재앙을 자초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는 기독교신앙으로 볼 때도 사람의 이기심에 하나님의 이름을 판 심각한 잘못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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