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최초의 말도 엄마지만 최후의 말도 어머니다. 어느 민족의 언어사(言語史)를 보든 그렇다. 싸움터에 나가 빗발치듯 퍼붓는 총탄 속을 호랑이처럼 내딛던 젊은 사나이 였지만 마지막 순간에 그가 더듬던 말은 "어- 머 - 니- "란 세 마디였다.
잘 익은 열무 김치나 토실토실한 참조기만 보아도 어머니 생각이 난다고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문학을 꿈꾸던 소년·소녀시절, 대개는 어머니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무언가 어머니에 대해 기록에 남기고 싶은 간절함이 문학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그 소년이 누군가의 남편이 되고 또 그 소녀가 누군가의 아내가 된 뒤에도 잘 익은 열무 김치나 짭짤한 굴비만 보아도 어머니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어머니 가슴속에 있고, 어머니가 내 가슴속에 있기 때문이다.
미국여성들의 어머니에 대한 생각은 어떠할까. ‘머빈즈 캘리포니아 아메리칸 우민즈 프로필’ 조사에 의하면 4-50대 여성의 74%가 자신들의 어머니를 역활 모델(이상적인 상)의 제1순위로 꼽았으며 2-30대 여성의 86%가 똑 같은 평가를 내렸다.
그리고 10명 중 8명의 미국여성이 세계적으로 어떤 유명한 여성보다 자신들의 어머니를 첫째가는 역활 모델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일에 쫓기고 내 자식 사랑하다 보면 어머니 얼굴 잊어버리기 쉬운 것이 지금의 세태요 세정이다. 이민 생활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더러는 하루도 부모를 잊은 적이 없다는 효도 맹렬파도 있지만 품 밖의 자식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마음은 언제나 슬프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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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0년대에 시골 장터에서 가마니를 깔고 보았던 연극으로 “불효자는 웁니다"가 있었다. 가난에 찌들고 나라마저 잃은 설움을 눈물로 달래 주던 소위 신파극(新派劇)이다. 금지옥엽(金枝玉葉) 키운 아들과 생이별을 한 뒤 10년 후 자신의 집 앞에서 객사한 사람이 어머니임을 안 그 사내는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 대성통곡을 한다. ‘불러 봐도 울어 봐도 못 오실 어머님을 이 못난 자식은 …’ 이런 식으로 이어진다. 그 순간 객석의 관객은 누구나 다 운다. 누구나 다 불효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어머니상」하면 20여년 동안 MBC 농촌 드라마 「전원일기(田園日記)」에서 보여준 김회장의 안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린다는 사람이 많다. 『남편에게 순종하고, 자식 위해 몸 바쳐 일하고, 시부모 공양 잘하고. 이런 모습이 한국의 어머니상이 아닐까요』 안사람의 말이다.
누구든 어머니의 심상(心相)을 헤아릴 수는 있지만 그 깊은 심지(心地)는 알 수 없는 것이다. 그 심지를 아는 것은 어머니 자신뿐이다. 따라서 “어머니만 아는 어머니의 상이 진짜 어머니의 상"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으로도 갚을 길 없는 어머니의 은혜’가 어머니의 상이라고도 말하지만 그것도 역부족이다. 다만 우리가 말 할수 있는 것은 어머니를 다만 “어머니"로 부를 다름이다.
지난 97년 여름 괌에서 KAL기 사고로 참사한 신(辛, 58) 국회의원의 어머니 박(朴·93) 여사에 대한 생각이 난다.
신의원 부부가 같이 갔던 당원 21명과 함께 변을 당했다는 얘기를 신 의원의 형(70)이 울음을 감추고 모친에게 말하자 모친은 『그렇다면 내 아들도 잘 죽었네. 데리고 갔던 사람들이 다 죽었는데, 혼자 살았다면 죄스럽지 않은가. 이제 울지 말게 자네나 나나 세상 떠날 날이 멀지 않았으니 저 세상에 가서 모두 만나세』
그렇게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인 어머니는 눈물을 둔채 곡기를 끊었고, 아들이 세상을 떠난지 꼭 49제가 지난 다음 날에 눈을 감았다. 한국의 옛 어른들이 어떤 자세로 세상을 살아왔고, 자식을 키웠는지를 짐작케하는 감동의 서정시다.
여기 서양 어머니의 모정은 어떨까. 한국 어머니와 같을까 다를까. 물론 모정은 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모정의 표출에서 추리해 볼 수 있겠다.
지금 아기를 향해 사나운 개가 달려들고 있다 하자. 이를 본 서양 어머니는 아기를 등뒤로 밀치고 개와 정면 대결한다. 반면에 한국의 어머니는 아기를 끌어안고 개에 자기 등을 돌린다.
기차가 달려오는데 철길에서 놀고 있는 아기를 보았다면 서양 어머니는 그 아기를 낚아채기에 모자가 함께 죽는 일이 없다. 그런데, 한국의 어머니는 일단 끌어안고 웅크리는 바람에 모자가 같이 죽는 사고가 발생한다. 「내가 죽고 네가 살았어야…」하는 공식이 한국 어머니의 상(像)인 것이다. 무슨 보상을 바라는 모정(母情)이 아니다. 바라는 모정이라면 죽음을 초월할 수 없다. 그런 어머니에게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해 드리고 있나, 어머니 날을 계기로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어머니날의 기원은 이렇다. 「머더링 선데이」가 영국에 있었지만, 지금의 『어머니 날』(Mother’s Day)을 세상에 번지게 한 것은 웨스트 버지니아의 젊은 여선생인 안나 자비스(Anna M. Jarvis·1864-1948)가 어머니의 제삿날 자신의 집에서 추모 제사를 가진 것을 발단으로 어머니 날 제정 운동을 전개, 1914년 5월 9일 윌슨 대통령으로 하여금 5월 둘째 주 일요일로 선포하는데 성공했다.
미국의 경우 이날 받는 꽃다발이 1,000만 다발, 주고받는 카드가 1억5000만 장, 외식을 하는 가족수가 전가정의 3분의 1로 일년 중 1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어머니날을 탄생시킨 자비스 양은 사랑에 배반 받고 독신으로 어머니가 돼 보지도 못한 채 눈먼 언니와 같이 살다가 너싱 홈에서 84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 ikhchang@aol.com
멤피스 한인사 편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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