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의 아비 부(父)는 양손에 회초리를 들고 있는 형상이며, 어미 모(母)는 두개의 점을 어미의 가슴으로 보고, 자식을 자애롭게 안고 젖을 먹이는 형상이다. 그런데 자애로워야 할 어머니로부터 56세까지 매를 맞고 자랐다면 이 모자의 관계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전과 같이 어머님의 매에 원기가 없습니다. 늙어 가시는 어머님이 슬프기만 합니다.』백범 김구(白凡 金九) 선생이 연로한 어머니의 힘없는 매를 맞고 소리 높여 울었다. 회초리를 든 곽낙원(郭樂園) 여사도 아들을 부등껴안고 흐느꼈다.
옆에서 보고 있던 도산 안창호 선생의 부인이 『50이 넘은 자식을 말로 하시지 왜 매를 드십니까』이렇게 말하자『김구가 늙었으면 나도 그만치 늙었겠지』하며 오히려 반박했다.
그 어머니가 10년 뒤인 76세 때 환갑이 다된 아들을 중국으로 찾아와서 『나는 이제부터 ‘너’ 대신 ‘자네’라고 하고, 회초리 대신 말로 책하겠네』라고 말하자 백범은 『그저 황송합니다』라고 몇 번씩 아뢰며 큰절을 하였다. 군관학교를 세워 남의 사표가 된 아들의 체면을 보아준다는 당당한 선언이다.
온갖 고초 속에서도 아들을 상해임시정부의 수석 자리까지 키워 낸 추상같은 어머니의 기상과 그 어머니를 소중히 받든 아들의 효심이 지금도 상념으로 남아 잊혀지지 않는다.
백범의 자당만이 아니다. 옛 어머니들은 서당 훈장에게 산에 가서 싸리나무 회초리 감 한아름씩 잘라다 받치는 것이 관례였다. 그 바람에 훈장은 남은 싸리로 마당비를 만들어 팔아 생계에 보태기도 하였다. 신화 같은 얘기지만 그 스승의 그 어머니이니 그 사이에 아이들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세대만 하더라도 회초리 많이 맞고 자랐다. 학교에서도 맞고 집에서도 맞았다. 이렇게 맞고 자랐지만 그 선생님이 존경 스럽고, 내 아버지가 고맙게 생각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렇게 맞고 자랐어도 한국 사람들이 다 삐뚤어진 것도 아니고, 체벌이 금지된 이곳에서 자랐다고 그들 미국인 전부가 모범시민이 된 것도 아니다.
남의 나라인 싱가폴에서 스프레이 페인트로 다른 사람의 차에 페인트를 뿌려 덴 못된 미국 18세 소년의 볼기에 몽둥이질 태형(笞刑)이 선고되었다.
자존심이 강한 일부 미국인은 야만적인 형벌이라고 노발대발하였고, 그 당시 클린턴 대통령까지 나서서 사정을 했으나 싱가폴법원의 의지를 꺾지 못하고 그 소년은 4대의 곤장을 호되게 얻어맞았다. 당시의 여론은 조그마한 소국이지만 단단한 나라요 용감히 잘 해 치웠다는 추세였다
매를 든다는 것은 자녀에게 각별한 관심과 사랑을 쏟는다는 의미의 다른 표현이지만 미국에선 매를 들다간 망신을 당할 수 있다. 그러나 요즘의 살벌한 세태를 걱정하는 여론은 그렇지도 않다.
이웃 미시시피 주(州)는 얼마 전에 싱가폴의 태형제도를 도입했다. 날로 증가하는 청소년 범죄를 걱정하는 부모들이 미국의 자존심을 제쳐 두고 찬(贊) 표를 던진 것이다.
여하튼 아버지들은 자식을 올 바로 가르쳐서 사람을 만들려고 하지만 성사하기는 쉽지 않다. 한두 번 타이르다가 듣지 않으면 흔히 뺨이나 머리 같은 치욕감각대(恥辱感覺帶)를 얻어맞기가 일쑤다. 중국 전국시대의 학자 순자(筍子)도 아무리 효자라도 아버지에게 뺨을 맞으면 동물적인 반감이 일어난다고 했다.
얻어맞고 기분이 상기 된 자식은「아버지도 그렇고 그런데, 왜 내가 얻어맞아야 해…」이런 식으로 반항한다. 집안의 어른이 보다못해 아이를 나무라고, "종아리를 때리지…" 타이르지만 눈치만 보일뿐 별무소득이다.
그래서 지금의 아이들은 자신과 거리가 먼 아버지를 "아빠’ ‘바빠’ ‘나빠 !" 란 식으로 빗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의 세태이다.
페스탈로치도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고 했고, 우리 속담에도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주고, 고운 자식 매 하나 더 때린다."던 가 "매 끝에 정든다."는 말이 있지만 지금은 이 훈계가 먹히지도 않고 설사 매를 든다해도 실효를 얻기란 힘든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매는 어디까지나 물리적으로 신체에 가하는 무술요법(武術療法)으로 차선의 방법도 아니고, 최후의 방법도 될 수 없다. 가슴에 와 닿게 하는 것은 오직 가슴이지 가슴 이외의 그 어느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버지들은 아이들이 자신들과 거리가 먼 아빠를 "아빠’ 바빠’ 나빠 !"란 식으로 빗대고 있는 것에 대해 고민하여야 한다. 매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다.
아버지란 무엇인가. "아버지란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 사람이다." 이리 뛰고 저리 뛰다보니 "바빠, 나빠 !"의 누명을 뒤집어 쓴 아버지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허나 바쁘고 피곤하다는 것은 이해는 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구실로 아이를 그대로 방치하면 탈선의 확률은 그만큼 커지고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딘가 문제가 있는 아이가 되기 쉽다.
실상은 우리의 습관과 분위기가 아이들과 대화하는 것에 익숙지 않다는 탓도 있다. TV를 보는 시간, 밖에 나가 있는 시간을 좀 줄여서라도 자녀와 함께 세상 살아가는 얘기로 서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 어떨까 싶다. /ikhchang @aol.com 멤피스 한인사 편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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