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오월이니까 예년 같으면 지금쯤 초여름일텐데 베이지역은 아직도 하루걸러 비가 오고 구름 낀 날씨에 쌀쌀한 기온이 풀리지 않아 짜증스러운 기분이 든다. 마치 요즘처럼 어쩐지 불안하고 편치만은 않은 우리의 심정을 대변해 주는 것 같다. 이라크 전쟁이 우리를 불안하게 하더니 갑자기 사스라는 전염병이 겁을 주고있다. 게다가 캘리포니아는 경제침체로 주정부예산적자가 삼 백 억불이 넘고 금년에 대학을 졸업하는 젊은이들이 갈 곳이 별로 없다. 우리아이도 이번 여름에 대학원을 마치는데 옛날 같으면 졸업 전 인터뷰요청이 쇄도하는데 학교캠퍼스에 고급학력을 차출하러오는 회사가 한 회사도 없다고 한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걱정 없이 좀 편히 살고 싶은데 주위의 여건들이 편안하게 살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요즘의 생활은 잘 맞지 않는 신발을 신은 것처럼 왜 이렇게 거북스럽고 쪼이는지 모르겠다. 몇 주 전 토요일 오후, 비 내리는 창가에 서서 앞뜰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늦은 봄 분홍빛 튤립은 이미 피었다가 지었고 앞뜰 앵두나무에는 하얀 꽃이 활짝 피어 봄비를 머금으며 웃고있는 모습이 금년에는 열매를 많이 맺을 테니까 기운을 내라며 나의 우울한 기분을 달래 주려는 듯 하다. 작년에는 몇 개 안 달린 앵두열매를 새들이 와서 다 쪼아먹었는데 금년에는 앵두가 얼마나 열릴지 기대가 된다. 역시 나무들은 우리에게 자기들처럼 꾸준하게 그리고 꿋꿋이 살아가라고 희망을 준다.
이렇게 계절은 때를 따라 말없이 반복하며 꽃들은 해마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시 찾아오지만 우리의 인생은 한번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 올 수 없는 일방통행 직선코스에 놓여있다. 그리고 이 길은 우리가 지상의 삶을 마친 후에 가야 할 영원한 길,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로 연결된다. 그러니까 이 땅에서의 삶은 우리가 세상을 떠난 후에 가야 할 천국과 지옥 중 어느 한 길을 선택하기 위한 준비과정이기 때문에 삶이 고달프다고 해서 오늘을 아무렇게나 살수는 없는 것이다.
얼마 전 타임지에서 보니까 사후에 천국과 지옥을 믿느냐는 설문조사에서 천국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 80%, 그리고 지옥을 믿는 사람이 60% 이었다. 그런데 천국과 지옥이 어떤 곳인지에 대해서는 추상적인 개념일 뿐 아무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요즘에는 좀 뜸한 것 같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사이비 종교집단들이 신도들을 유혹하여 이 세상에서 고생하며 살지 말고 천국으로 가자고 하면서 집단으로 자살하는 사건들이 종종 있었다. 그러나 세상이 싫어졌다고 스스로 천국 가는 길을 택한다고 해서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우리는 고향을 떠나 지상의 천국이라고 하는 미국에 와서 산다. 아부라함처럼 고향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분명한 계시가 있어서 미국으로 온 것은 아닐지라도 주를 믿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이민생활이 어떠했는지 생활여건이 어려운 이 때에 영적인 차원에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에 와서 살고있는 우리 이민 일세들은 대부분 한국에서 6.25동란의 어려운 고비를 겪은 사람들이다. 미국에 온 동기를 물어보면 모두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잘 살기 위해서 왔다고 한다. 그 동안 열심히 일해서 내 집을 장만하고 사업체를 이루고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그 동안 낯설기만 했던 미국의 이질문화가 좋게만 보여지고 영적인 분별력을 상실한 체 여기가 좋사오니 하면서 이방풍속에 종속되어 버리기 쉽다. 하기야 이제는 한국도 미국처럼 도덕성이 타락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요즘 한국의 젊은이들의 이혼율이 미국을 능가하고 있고 인어아가씨 또는 야인시대 등 대중드라마들의 소재가 불륜이 아니면 폭력이고 이런 이야기가 아니면 인기가 없다고 한다. 그래도 이곳에 뿌리내리고 사는 우리 이민일세들은 한국을 떠나올 때 가지고 온 한국의 60/70년대의 소박한 정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하니 다행이라면 다행일 것이다.
어쨌거나 우리의 미국생활의 목적이 육신의 평안과 물질의 풍성함을 누리는데 있다면 삶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 역사를 볼 때 육신의 안녕 만을 추구하는 생활은 지옥으로 향하는 지름길이었다. 적어도 나의 미국생활이 하나님의 인도 하에 이루어 졌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사는 곳에 하나님나라의 열매가 맺어지도록 창조적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도 삶이 답답하고 쪼들릴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누구를 원망하고 세상을 탓하기보다는 하늘을 쳐다보며 한번 허허하고 웃으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누가 그랬다. 이제 조금 기분이 풀리는 것 같다. 역시 웃음은 최고의 명약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