댁의 자녀가 TV나 컴퓨터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을수록 무언가 잃어버리는 것이 있습니다.」이 경고는 미국의 보건당국이 자녀를 둔 부모에게「내 아이가 있어야 할 곳」이란 질의(質議)와 함께「VERB」라는 트레이드 마크를 내 걸고 전국적으로 일으킨 캠페인의 요지이다.
동화(童話) 듣기와 동요(童謠) 부르기가 유일한 과외 활동이요, 동네 공터의 시새 밭 흙모래 밭이 유일한 놀이터였던 시절. 남자아이는 “씨름과 무등 타기", 여자아이는 “줄넘기와 공기" 그리고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께 …", 이것이 그 시절 그 때의 동심(童心)의 전부요 휴식처였다.
불과 2세대 5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흙 대신 밀폐된 방에서 점수와 컴퓨터와 싸우고, TV에 푹 빠진 창백한 어린이들을 보고 있는 것이다. 과연 부모가 바라는 자녀상(子女像)은 무엇일까. 지능(知能-IQ)에 뛰어난 똑똑한 아이일까, 지능보다 정서(情緖-EQ)에 뛰어난 슬기로운 아이일까. 아니면 어떤 것이 선행(先行) 되어야 할까.
유럽 사람들은 하루 평균 3시간 내외, 미국 사람들은 하루 평균 7시간 내외 TV를 시청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덩달아 어린이들의 주당
TV 시청은 1,680분(하루 4시간 꼴), 여기에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까지 합치면 어른들과 같은 7시간 내외가 될 것으로 추산된다. 반면 부모들과의 대화는 주당 38.5분(하루 5.5분 내외)으로 나타났다.
오늘날 대부분의 컴퓨터 특히 TV의 영상물은 아이들에게 획일적인 속물(俗物)이 되어 달라고 몹시도 보채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머리의 회전이 빨라지고, 깊이보다 넓이가 넓어지고 그리고 수평적 사고력이 발달했지만 내용보다 표면적인
감각만 추구하고, 노력보다 손쉽고 편하고 편리한 것만 찾고, 꾸준히 생각하는 힘과 옳고 그른 가치에 대한 판단력을 잃고 있다.
이렇게 해서 아이들은 밖으로 점수와 세속에 쫓기고, 안으로 자기 자신을 잃고 멋 없이 덧 없이 자라고 있는 것이다.
본국에서 몇 주전에 점수와 과외에 시달린 초등학교 5학년 남학생이 “나도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유서를 남겨 놓고 갔다. 그리고 청소년 정신 건강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 어린이 4명 중 1명이 자살충동을 느꼈고, 2명 중 1명이 가출충동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결국 도덕을 키우는 학교, 정서를 순화시키는 학교, 전인교육을 시키는 학교는 공중에 떠 있는 고무풍선이 된 셈이다. 교육의 본질보다는 점수가 삶의 전부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에게 필요한 것은 ‘방정식의 해법’ 같은 지능(IQ)만이 아니다. 일생을 지배할 ‘도덕’도 배워야 하고, ‘자립정신’도 키워야 하고, ‘체력’도 다져야 하고, 예능에 소질이 있다면 이것도 익혀야 한다.
왜냐하면 이같은 정서면(EQ)이 사회적 행동뿐만 아니라 지능 유발에도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음악감상이 수리 능력을 키운다는 사실은 다만 학설에서만 펴는 얘기가 아니다.
도덕(道德)을 예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전 카터 대통령은 자기의 일생을 통해 소중한 정신적 기둥이 되어 준 여선생에게 두고두고 감사를 했다. 그는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까지 그 여선생 얘기를 했다. “나의 고교시절의 선생님 ‘줄리아 콜만’은 입버릇 삼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변화하는 세상에 맞춰 살아야 하지만 불변의 도의(道義)도 지켜야 합니다."
자립정신(自立精神)을 예로, 명필(名筆) 한석봉(韓石峯)의 어머니가 먼 곳에서 서도(書道) 공부를 하고 어머니가 보고싶어 돌아 온 아들에게 초롱불을 끄고 글씨를 쓰게 하는 동안 자신은 떡가래를 썰었다. 몇 줄의 글씨를 쓰게 한 다음 두껍고 얇고의 차이가 없이 썰어진 자신의 떡두께를 보여주고 다시 아들을 서당으로 쫓아보냈다. 말없
이 스스로 하지 않을 수 없게 한 불립문자(不立文字)의 표본이요, 자립정신의 지혜라 아니할 수 없다.
체력(體力)을 예로,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곳은 45분간 공부하는 교실이 아니고, 10분간 쉬는 운동장이다. 한 학기 내내 공부하다가 여름 방학 책을 받아들고 집으로 달려가던 때를 회상해 볼 것이다.
최근 미국 보건당국이「내 아이가 있어야 할 곳」을 찾기 위해 트레이드마크 「VERB」를 내 건 사연도 "TV와 컴퓨터 앞에서 명사(名詞) 구실만 하지 말고 동네 공터에서 몸을 다지는 동사(動詞) 구실도 하라"는 주문이다.
모든 것이 시작되는 봄, 그리고 탈선하기 쉬운 봄방학 전후를 맞이하여 자녀에게 무엇이 가치 있는 생각이고, 무엇이 보람있는 행동인지를 가르치는 것은 이제 부모의 몫이다.
가족여행을 통하여 폭 넓게 자녀와 대화하는 것도 좋고, 자녀의 취미생활에 동참하거나 좋은 영화를 같이 관람하거나 양서(良書) 한 권을 권하여 읽게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친구 집에서 하룻밤 보낼 경우 집안에 이들을 감독할 어른이 있는지 꼭 사전에 확인할 일이다.
지혜의 구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꿰어야 할 튼튼한 줄이 없거나 잘못 꿰었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는가.
멤피스 한인사 편찬위원장
/ikhchang@a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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