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살 원이의 드라마 읽기] MBC ‘죽도록 사랑해’
노동자 인권 운동을 하는 딸 ‘광숙’(김여진 분)을 걱정하는 엿장수(임현식 분).
“아침도 안 먹고 나갔는데 단신 투쟁이 웬 말이냐”고 한숨 쉰다. 그를 위로하던 연탄장수는 그에게 우동 한 그릇을 산다.
안 넘어가는 우동을 깨작대던 엿장수는 분신 자살한 전태일의 이야기를 듣고 “집에 석유 반말 받아 놓았는데 확인을 안 해봤네”라며 허둥지둥 집으로 달려간다.
무사한 석유통을 간신히 찾은 그는 석유통을 끌어안고 털썩 주저앉으며 말한다. “광숙아! 고맙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MBC TV 주말드라마 <죽도록 사랑해>의 지난 일요일 한 장면이다.
혼자 이 장면을 본 나는 예상치 못한 감동에 당황하며 밥 위로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 얘기를 들은 친구들은 “역시 넌 70년대 감성이다”며 나를 놀려댔다.
하지만 난 인터넷으로 <죽도록 사랑해> 지난 회 보기를 하다가 발견한 또 다른 감동의 폭탄, 광숙의 독백에 이르자 쓰러지고 말았다.
공장에서 일하다가 친구 손가락이 잘려나갔는데도 보상은커녕 욕만 얻어들은 사건을 계기로 노동자 인권 운동을 하던 광숙은 대학생이자 우익주의자인 ‘재국’의 초대로 파티에 갔다.
거기서 그 녀는 독재정권에 대항해 민주화 운동을 하는 한 대학생의 연설을 듣게 된다. 그리고 그 날 밤, 친구와 함께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던 광숙은 자기는 그 대학생이 용감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말문을 연다.
“마이크 잡고 떠들어봤자 똑같은 거 아니니? 걔들은 먹고 사는 문제 갖고 그러는 거 아니잖아. 걔들은 잡혀가도 구류 며칠 살면 되지만, 우리는 회사 짤리면 끝이야. 그런데도 우리가 해 뜨면 또 나가서 으?X으?X 해야 되니?”
매끄럽고 솜씨 좋은 드라마 <죽도록 사랑해>는 <그 집 앞>의 선율을 타고 전해지는 70년대의 풍경과 아저씨 같긴 하지만 무척 착한 ‘재섭’의 순정적인 사랑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나는 순정에도 관심이 없고, 70년대의 향수를 느끼기에도 너무 늦게 태어났지만 앞으로 이 드라마가 줄 또 다른 감동에 눈물 흘릴 준비가 돼 있다.
달라질 듯 달라지지 않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입장과 신념의 차이를 조심스럽게 디디며 자신을 찾는, 어렵고 힘든 삶을 버텨낼 수 있는 건 ‘죽지 않고 살아주어서 고마운’ 사랑이 있어서라는, <죽도록 사랑해>의 강렬한 고백을 믿고 싶기 때문이다.
하자작업장 학생,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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