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기는 해도 노무현 당선자는 요즘 고민이 많을 것 같다.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현실은 그의 뜻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는 대통령 당선자로서 정권인수와 함께 자신의 뜻을 마음껏 펼치고 싶은 의욕에 넘쳐 있을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을 통해 정말 살 맛 나는 세상을 만들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의 생각만큼 움직여 주지 않고 있다. 마음이야 대통령 취임 전에 자신이 속한 민주당부터 개혁하고, 그동안 제기된 국민적 의혹들도 속 시원히 밝혀 내고 싶겠지만 그것이 쉽지 않은 것이다.
도대체 차기 대통령당선자로서 제대로 ‘말발’이 먹히지 않는 형국이다.
공약한 대로 개혁을 하긴 해야겠는데 시작부터 이리 걸리고 저리 걸리고, 멀리서 보기에도 여간 갑갑해 보이지 않는다.
노 당선자가 직면하고 있는 이런 현실의 벽은 그가 ‘민주당 후보’로써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태생적 한계’에서 비롯된다.
대통령선거 직전까지만 해도 정치인 노무현씨는 ‘돈’도 ‘조직’도 없는 ‘필마단기’와 다르지 않았다. 그가 가진 강점이라고는 뚜렷한 정치적 소신과, 개혁적인 성향, 부산 출신이라는 것 밖에 없었다.
그동안의 정치풍토를 감안한다면 솔직히 그는 대통령이 되기 어려운 여건이었다. 더구나 국민적 지탄을 받던 민주당 후보로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개인적인 ‘참신성’을 인정하면서도 그에게 표를 찍지 않은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노무현씨를 거부했다기보다는 그가 속한 기존의 집권세력을 싫어했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악조건을 딛고 기적처럼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것을 선천적으로 가능케 한 것이 지금 ‘개혁 대상’으로 몰리고 있는 민주당 수구세력이었고 그 중심에 김대중 대통령이 있다.
정치인 노무현의 개인적인 강점과 시대적 요구를 간파한 집권세력의 적절한 ‘간택’과 치밀하고 용의주도한 현실적 ‘지원’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싶게 말하면 노무현 당선자는 김대중 대통령 측에게 너무 큰 ‘신세’를 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도움을 준 쪽에 개혁의 칼을 들이대기란 원천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노무현 당선자는 자신을 도와준 그들에게 칼을 휘두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 정치적 숙명을 가지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가 이회창씨를 이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변화’를 바라는 국민적 바람이었다. 그가 현실에 굴하지 않고 어려운 ‘개혁’을 해낼 수 있는 ‘성질’ 있는 정치인임을 젊은 유권자들이 믿어준 것이다. 본인 스스로도 무엇보다 그것을 자신의 정치적 ‘브랜드’로 내세웠다.
그러나 대선 승리 후 노 당선자가 취하고 있는 자세는 너무나 조심스럽다. 과연 노 당선자가 그 ‘작업’을 해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그것이 ‘전략’인지, ‘한계’인지 조금 두고 보아야겠지만 몸을 사리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개혁의 주체가 자신은 초연한 듯하며 당사자들이 알아서 하라는 식의 자세라면 개혁은 난망이다. 구 정권이 저질러 놓은 일들은 자신들이 모두 해결하고 떠나라는 요구는 너무 무책임하다.
현실 정치가 밀어 부친다고 다 되는 일은 아닌 줄 잘 안다. 아직은 대통령 취임전이라 무리하기 않고 싶은 것도 이해한다.
그렇지만 돌아가는 상황이 너무 실망스럽다. 집권당인 민주당 개혁이 지지부진한 것도 그렇지만, ‘4천억 대북 뒷거래’까지 어물쩍 넘기려 하고 있다. 후세인 독재하의 이라크도 아니고 개명 천지에 어떻게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을 구렁이 담 넘어 가듯 넘어갈 수 있는 것인지 국민들은 개탄하고 있다.
이제 시작인데 시작부터 이러니 앞으로 더 큰 일은 어떻게 처리하겠다는 말인가. 취임도 하기 전부터 ‘노무현도 별 수 없다’는 얘기가 인터넷을 도배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에 표를 준 많은 사람들이 이회창씨가 좋아서가 아니다. 민주당이 재집권하면 수많은 비리 의혹들이 그냥 덮어질 수밖에 없어서였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 우려가 정권이 인수인계 되기도 전부터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아직은 좀 더 두고 보아야겠지만 어째 벌써부터 조짐이 수상하다.
열쇠는 노무현 당선자가 가지고 있다. 그가 어떤 의지를 가지고 임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노 당선자가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자신의 ‘태생적 한계’를 뛰어 넘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그는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노 당선자가 과연 그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지금 국민들은 그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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