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해가 간다. 마지막 남은 햇살 몇 가닥만 서쪽 창에 눈부시다. 일년은 지내놓고 보면 금방이다. 일생도 그러할 것이다.
전나무 숲에 내리는 눈발, 혹은 난로 위의 찻물 등이 자연스런 연말정서일지 몰라도 이런 ‘겨울동화’와는 무관하게 지금도 일에 묻혀 사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마음을 내려 놓고 캐롤 한 번 들은 적 없는 것 같은데 크리스마스도 후딱 지나갔다.
밥을 번다는 것은 항상 당당하고, 대의명분 있는 일이지만 이럴 때는 구차하다는 느낌도 없지 않다.
매출이 신통찮았던 타운상인들은 재고소진을 위해서라도 막판 애프터 크리스마스 세일에 부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한 사람 뿐인 웨이트리스는 결근한 채 점심시간을 맞은 타운 칼국수집 아줌마 앞에서 연말 운운은 분위기상 맞지 않는 말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올해가 생각하고 싶지 않은 한 해일지 모른다. 정몽준씨나 증권 브로커들이 이 범주에 들지 않을까. 로토라도 한 장 당첨됐더라면 ‘더도 말고 덜 도 말고 올해만 같아라’는 소리가 나올 만 하다.
한해를 보내는 상상력이란게 기껏 이런 수준이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살다가, 다양한 감회로 한 해를 매듭짓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감동도 없고, 동화도 없고, 재미는 더구나 없는 경제도 올해 이 정도에서 마무리되는 것 같다.
올 경제는 지난해 연말 그렸던 것과는 많은 면에서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었다.
무엇보다 회복세가 기대이하였다. “아슬아슬했다”고 올 경제 인상기를 전하는 이들도 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로는 증시가 단연 으뜸이다. 이 정도로는 죽을 쑤지 않았어야 했다! 겨울철새처럼 월급쟁이들의 401(k)도 날아간 한 해였다. 부동산은 그 반대였다. 지난해 시장이 워낙 좋아 좀 내리겠지 했으나 판을 깨고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타운경기 저점설을 말하며, 걱정하는 이도 있지만 여전히 거리는 분주하다. CD 한 장을 사러 들른 타운상가에는 차 세울 데가 마땅찮아 반칙 주차라도 해야 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에 행복·희망 이런 말만 쓰여져 있는 것은 아니나 피곤에 전 모습보다는 맑고, 밝은 얼굴이 압도적이다.
만나면 인사처럼 주고받는 것이 “타운 경기 어때요”라는 것이다. 서로 별다른 대답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만나자 말자 본론으로 들어가기도 그렇고 하니까 한 번 해보는 소리들이다. “다운타운이 힘들다면서요”라는 이야기도 흔히 한다.
그러고 보니 타운에서 돈 벌었다는 이야기, 다운타운이 잘 된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도 타운업소는 늘어나고, 다운타운을 오가는 벤즈는 갈수록 그 수를 더한다. 이런 현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내년 경기 어떨 것 같아요”라는 이야기도 인사처럼 하고 지내지만 미국 경제의 앞날을 어느 용하다는 족집게 도사가 알아 맞추랴. 올해 보다 나쁠 게 없다는 이야기가 대세지만 연말에 나오는 경제전망에는 언제나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희망이 조금씩 섞여 있다.
한 해가 거의 저물었다. 끝이 없으면 시작도 없으므로 새해를 맞기 위해서라도 헌 해는 얼른 가야 한다. 새해 경제는 헌 해 보다는 분명 나을 것이다! “너희가 경제를 아느냐”는 호통이 들리는 것 같아 머리 뒤가 근질근질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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