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산(三角山) 백운대(白雲臺) 정상에는 갈라진 ‘뜀바위’가 있고, 개성 천마산 정상에는 등을 대고 돌아야 하는 ‘등돌이바위’가 있다. 현기증 나는 이 바위는 성인의 담력을 시험하는 현장으로 이 바위를 뛰어넘거나 등돌이에 성공해야만 정식 성인이 되어 품값도 제대로 받고 결혼 조건도 되지만 무엇보다 영광스러운 것은 어른으로부터 담력을 상징하는 자(字)를 받는 일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갖는 것이 이름(名)이요, 성년식을 치르고나서 받는 것이 자(字)이다 그리고 멋스러운 별칭으로 호(號)가 있고, 학자나 공신이 죽은 뒤 나라에서 받는 시호(諡號)가 있다. 이이(李珥)의 어릴 때 이름은 견용(見龍),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 시호는 문성(文成)인 것과 같다.
태어나서 갖는 이름(名)은 자(字)와 함께 항상 소중하게 여겨 함부로 짓거나 부르지 않았다. 어른 이름을 물을 때는 ‘존함(尊啣)이 어떻게 되십니까’라고 하지 ‘이름이 뭐죠’라고 하면 예의에 벗어나는 말이 된다. 그리고 어른 존함을 말할 때는 ‘하늘 천(天)’ ‘따 지(地)’라고 하듯이, 한자 한자 띠어서 부르고, 아들이나 딸에게 그 부모의 존함을 물을 때는 “춘부장(아버지) 존함이 어떻게…" “자당(어머니) 존함이 어떻게…라고 물어야 한다.
왜 이렇게 까다롭게 부르느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사람에 인격이 있드시 그 사람을 대신하는 이름에도 품격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나라가 아버지에게도 유(you)라고 말하는 그러한 상(常) 스러운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 이민 온 사람 중 상당수가 미국식 이름을 갖고 있다. 영어를 웬만큼 하게 되면 미국인들과 이래저래 대화를 해야 하는데 발음도 어렵고 철자도 까다로운 우리 이름으로는 여러 가지로 곤란을 겪기 예사다. 그래서 남자는 ‘마이크’ ‘데이빗’ ‘잔’, 여자는 ‘제시카’ ‘제인’ ‘케이시’ 와 같이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쉬운 이름을 짓게 된다. 다들 더불어 살기 위해서다.
다음은 미국식 이름을 지은 재미동포 두 사람의 대화다. “김형, 미국 이름 지었소?" “예, 부르기 좋고 외우기 좋아야 한다니 ‘밥’ (BOB)이라고 할 랍니다. ‘로버트(ROBERT)를 줄인 것이지요. 그런데 이형은 어떻게?" “그러세요. 이거 우연치 않게 되었습니다. 난 더그라스(DOUGLAS)의 약칭인 ‘더그/덕/떡(DOUG)으로 할 까 합니다"
그런데 우리 재래식 이름의 경우 올바른 영문 표기에 있어 예컨대 김숙자인 경우 KIM, SUKJA가 옳은가, KIM, SUK JA가 옳은가에 대한 것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서양 사람들 이름은 이름(First Name), 중간명(Middle Name), 성(Last Name)으로 구성돼 있고, 그 순서대로 호칭 및 표기를 한다. 문제는 우리 이름에는 ‘중간명’이 없는데도 이름의 두 글자를 하나씩 띄어서 마치 ‘이름’과 ‘중간명’이 따로 있는 것처럼 나누어 표기하는데 있다.
따라서 위의 경우 우리 나라 영문표기법 상 SUKJA가 옳고, SUK JA는 옳지 않다. 잘못의 시작은 여권 등 영문으로 된 신청서 양식에 억매이다보니 그렇게 된 듯 싶다. 이 경우 이름(First Name)난에 SUKJA라고 표기하면 된다.
이곳 한인주소록에 기재된 이름 중 옳게 표기된 것은 100명 중 6명 정도이다. 그리고 이름을 띄어 쓰되 S. J. 식으로 약자화(略字化) 하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이다.
이름은 한 개인이 태어나서 늙어 죽을 때까지의 호칭이며, 죽어서도 남는 것이 이름이다. 그리고 이름은 자신이나 그가 소속된 가문의 명예를 상징한다.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 “거짓말하면 내 성(姓)을 갈겠다"는 말은 이름이 명예를 위한 최고의 담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기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것은 그 집안 어른의 의무요 흐뭇한 긍지이기도 했다. 그리고 건강과 다복을 의미하는 한자(漢字)와 듣기에 좋은 이름들이 동원되었다. 자손이 잘되기를 바라는 소망에서다.
지금 미국에 이민 와서 살고 있는 한국인 자녀 대다수가 한국식 이름을 접어두고 미국식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강제적인 일제의 창씨개명령(創氏改名令)과는 달리 이번에는 자발적이라는 게 다르다. 더불어 살기 위함이겠지만 집에서나마 한국 이름으로 부르고, 한국말로 대화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마이크’니 ‘데이빗’이라고 부르는 할머니나 할아버지의 어감이 격에 맞지 않아서 만은 아니다.
/ikhchang@aol.com
멤피스 한인사 편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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