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한 회색빛 가을비가 그치자마자 기온이 뚝 떨어졌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괜스레 이런저런 걱정이 앞서고 주변의 불우한 이웃을 돌아보게 되는 요즈음이다.
지난해부터 본사와 공동으로 ‘북한 어린이 돕기’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는 중앙장로교회 박준로 목사와 다른 몇몇 목회자들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의 생활상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서 탈북자가 줄을 잇고 있으며 그 탈북자들의 생활도 상상하기 어려운 고초에 처해 있다고 한다. 그들을 돕기위해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북한을 방문하고 중국 옌지에 탈북자를 위한 고아원을 설립, 선교사를 파송해 그들의 갱생을 돕고있는 박 목사나, 탈북자 지원단체인 한국 두리하나선교회 소속으로 8개월간 중국에 구속됐다가 풀려난 천기원(46)전도사 등 선교단체의 얘기를 들으면서 ‘사랑’이라는 것의 힘을 다시 생각케 된다.
기독교 정신의 모체가 사랑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어디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그래서 성서에서도 ‘행함’의 중요성을 천국의 조건으로 가르치고 있지않은가. 그 ‘행함의 사랑’이 우리들을 감동시키고 한 민족으로서의 ‘형제애’와 ‘생명’의 존엄을 일깨우는‘북한 동포 돕기 운동’에 우리 모두가 한 마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계식량계획(WFP)의 존 파월 아시아 지역국장은 최근 “올해 북한에서는 주민 640만명이 굶주릴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들을 위해 61만t의 식량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얼마전 13일간 북한의 6개 도시에 있는 WFP의 배급시설을 둘러보고 온 그는 “WFP는 미국과 한국, 핀란드 등의 지원을 받지만 현재 목표량의 절반도 확보하지 못했다”면서 끔찍한 식량위기 가능성을 경고했다. 그리고 그는 ‘지금 북한 (식량)상황에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한 세대가 없어져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정부는 주민 한사람당 하루에 300g의 곡물을 배급했는데 이 배급량은 앞으로 200g으로 줄어들 것이다. 국제난민들조차 유엔의 식량농업기구(FAO)가 규정하고 있는 생존에 필요한 1인당 최소 500g의 배급을 받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일반 북 주민들의 식량사정이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생존을 위해 죽음을 무릎쓰고 탈북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탈북자들은 어떻게 북한을 탈출하며 중국에서 체포되어 북한으로 송환되면 어떠한 처벌을 받게 되는가. 그리고 그들은 왜 또다시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하는가?"
지난 5월 ‘길수가족 구명을 위한 긴급 기자회견’에서 내외신 기자들이 이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탈북자들이 북한에 송환되면 어떻게 되는가?" 여기에 대한 대답은 분명하다. “살아 남기 어렵다."
미국 민간단체나 천기원 전도사에 의하면 탈북자들은 숨어살기 때문에 정확한 측정 조사를 할 수는 없지만, 현재 중국 내에 10만에서 30만 여명이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이나 자유로운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탈북자라는 말을 그저 ‘국경을 넘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들이 국경을 넘는 과정은‘한편의 영화 같다’고 할 만큼 파란만장하다.
이들은 국경을 넘기까지 죽음의 고비를 몇 번씩 넘은 사람들이고,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덮쳐오는 체포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에서 체포되면 북한으로 송환되고 송환되었던 사람들 중 40%정도가 살아서 재(再)탈북을 한다고 알려진다. 그렇다면 송환된 나머지 60%는 죽었단 말인가? 한번 잡히고 혹독한 처벌을 받았으면서 왜 또 다시 그들은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하는 것일까? 이러한 의구심에 굳이 설명이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탈북자 돕기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한 목회자는 “우리는 지난 몇 년간 북한동포돕기 운동을 해 왔다. 그것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역사적 소명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라며 “이 일을 통해 우리의 역사와 역사적 정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고, 분단현실에 대해서도 새삼 고민하였다”면서 그는 분단의 아픔에 자지러지고 몸서리쳐야 했다고 말했다.
북한 핵 문제로 남·북, 그리고 북·미 관계가 극도로 냉각되어 있는 지금, 탈북자에 대한 문제는 단기처방이나 일회적 미봉책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우며 남북관계와 국제외교관계가 동시에 다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미주 한인들도 한·미 정부와 민간단체의 협조 속에 전체 탈북자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생명은 이 세상 그 어느것과 바꿀 수 없는 존귀한 것이며 자연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발명(發明)임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생명의 존엄성을 일깨우고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누리는 일에 미주 한인들도 적극 나서야 한다. 절망속에 하루 하루를 힘들게 살아가는 탈북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워주고 생명의 존엄성을 일깨워주는 일이 오늘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탈북자가 남이 아니라 우리 형제라는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으며 어려운 때 일수록 나눔과 헌신의 정신이 필요하겠다.
생명에 관한 기본권이 짓밟히고 있고 통탄할 만한 불의와 억압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북한의 오늘날, 우리는 인간 생명의 가치와 불가침성을 분명하게 재인식하며, 인간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하고 사랑하며 이를 위해 인간 생명에 봉사하는 새로운 문화의 지평을 우리 스스로 열어야 하겠다.
<편집·취재부장> ejlee@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