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만 단정하게 입어도 취직이 된다"는 본국에서 퍼진 말, 이 말은 취업 인터뷰에 응하는 대학 졸업생들이 입은 옷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눈에 거슬려, 회사 중역들이 당혹스러운 말끝에 나온 말이다. 옷을 제대로 입기 위해선 때와 장소 그리고 경우에 따라 어떤 옷을 어떻게 입느냐에 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먹고, 입고, 사는 인간의 기본조건을 의(衣)·식(食)·주(住)라는 순서로 표현한데 대해 논쟁이 벌어졌다. 갑(甲)이 말하기를 “입는 옷을 식욕보다 선행시킨 것은 유교 사상의 산물이며 사람의 본능을 외면한 허구"라고 비판하자, 을(乙)이 “시장끼가 나도 옷차림에 결례될 소지가 있을 때는 밥 한끼 정도는 굶을 수 있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갑(甲)이 기다렸다는 듯이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양반이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응수하자, 을(乙)이 “자고로 입은 거지는 얻어먹어도, 벗은 거지는 얻어먹지 못한다"고 받아 넘겼다.
경험상 우리들의 경우라면 어떤 쪽일까. 옷차림에 결례될 소지가 있을 때 옷차림을 먼저 하는가, 아니면 예의 없이 우선 밥상머리에 먼저 앉는가 …, 그래서 우리가 무심코 말하는 의식주의 차례에서 의를 선행시킨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옷차림에 대한 전통적인 생각은 예의(Manner)에 근본을 두고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지금은 예의보다는 감각(fashion)에 비중을 더 두고 “나를 남에게 어떻게 보일 것인가"로 초점이 바뀌었다.
물론 사람은 공동체 사회에서 그때그때 시속에 순응하면서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게 마련이다. 어떤 유행이 그때의 공동체 의식이라면 그 유행을 외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 유행물이 분수의 벽을 넘어 유별나다면 좋건 나쁘건 시선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입고 있는 옷이 격에도 맞지 않고 지나친 사치성 유행물이라면 일단은 마음이 풍선같이 붕 떠 있는 상태로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옷은 언제나 잘 생각해서 입어야 한다. 사람의 눈은 그 시각이 묘해서 무슨 옷을 어떻게 입느냐에 따라 같은 사람도 그때그때 격이 달라 보이게 마련이다. ‘내가 보는 나’가 아니라 ‘남이 보는 나’를 의식 안 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유행에만 따를 것인가. 정장을 하든 캐주얼을 입든 깔끔하고 편하게 입을 것인가. 아니면 유행을 따르면서 깔끔하고 편하게 입을 것인가.
누군가는 『지금 세상은 유행과 반유행(Fashion is unfashionable)이 동시에 교차하는 세상』이라고 말했다. 이젠 유행을 쫓는 그런 유행, 그런 유행조차도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뜻일 것이다.
독립운동가 고당(古堂) 조만식(曺萬植) 선생은 특이한 그의 ‘고당 두루마기’로도 유명하다. 입성에 대해 유행을 거부하고 오직 실용주의를 내세운 그의 두루마기 자락은 무릎을 덥지 못할 만큼 짧았고, 처지게 마련인 소매 폭은 홀대처럼 좁게 했으며, 옷고름 대신 단추다. 이 ‘반코트식 두루마기’는 그만큼 옷감을 절약하고 활동을 간편하게 하자는 고당식 캐주얼 철학이요 지금의 개량 한복의 기원이랄 수도 있겠다.
고당이 평양에서 살았을 때 일이다. 딸이 서울로 수학여행을 간다고 돈을 달라고 했다. 고당은 기차 삯이며 여관비며 모두가 일본 사람 호주머니에 들어간다고 만류하면서 대신 조선 목화로 짠 베로 조선 사람이 지은 간편한 조선옷 한 벌을 맞추어 주었다. 그리고 서울 구경 대신 묘향산 단풍 구경을 했다. 고당의 딸(조선영)에게 들은 얘기다.
‘내가 나에게 무관심한 것 중에 하나가 몸에 걸쳐야 할 입성이다. 일제말 전시 때란 시국 탓도 있겠지만 교복·국민복 일색인 학창시절이 그렇고, 품위를 염두에 두어야 할 훈장 시절이 그렇다. 한참 나이에 이렇게 멋도 없이 지낸 것은 그 이유만은 아니다. 「옷을 자기의 중요한 부분으로 삼는 사람은 그 옷 값어치 이상은 안 된다」는 당시 대학가에 퍼진 말에도 연고가 있다. 영국의 평론가 ‘윌리엄 해즈리트’가 한 말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달라지다보니 꽤나 많은 옷들이 옷장에 걸려있다. 나이가 들어 고집도 꺾이고, 노추(老醜)를 감추려는 속 셈도 있겠지만 아내와 딸들의 등쌀이 그렇고, 검소한 것만이 품위가 아니라는 유혹도 그렇다. 그런데 옷장을 열때마다 생각나는 것은 한때 전성기도 있었든 그 옷들이 유행에 밀려 처량하게 걸려 있는 모습이다. 「나를 외면하신 주인님! 그게 세월 탓이 아니겠습니까. 유행은 돌고 돈다는 데 혹여 다시 좋은 세월이 오면 다시 저를 찾아 주십시오. 영영 제가 싫으시면 양로원으로 보내 주시면 그곳에서 제 구실을 하면서 한동안 저를 아껴 주신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 입다 벗은 옷일지라도 그 옷에는 그 사람의 정기가 묻어 있다는 민속 설화가 있기에 하는 얘기다.
멤피스 한인사 편찬위원장 /ikhchang@a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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