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호세 머큐리지, 이종문회장 자선활동 크게 보도
’목적과 함께 한 자선 사업’
산호세 머큐리지는 "자신과 가족, 그리고 주위에서만 맴돌고 있는 폐쇄적이고 소극적인 자세를 갖고 있는 아시안들중 몇몇은 지역 사회에 귀감이 되고 있는 모범적인 자선사업가로 활동하고 있다"며 이들중 한인 이종문 회장(엠백스 벤처 그룹)이 활동상을 높이 치켜세웠다.
머큐리지는 12일자 신문에 1면과 뒷면에 이종문 회장의 자선 사업 활동상을 자세히 게재하고 그는 "부의 사회 환원을 통해 재능은 있으나 가정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의 기능을 살려주는 사회사업실천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즉 자선 사업으로 혜택 받는 사회 구성원들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의미이다.
이종문 회장도 자신의 자선 사업 목적을 "돈 버는 목적은 돈을 벌어서 자식에게 유산으로 남기는 것보다는 사회에 공헌하기 위함"이며 또한 "알몸으로 태어나 한 평생 살고 죽으면 그 알몸도 버리고 간다"는 의미를 실천하고 있다고 사석에서 밝힌 바 있다.
자신이 번 재산으로 경제적으로 혜택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동등한 교육 실천을 통해 모범적인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선 사업을 하고 있다는 이종문 회장은 이에 대한 실례로 최근 대학에 진학하려는 한인 학생 30명에 각 7,000 달러의 장학금을 수여했으며 또한 아시아 파운데이션에도 1백만달러의 기금을 지원, 의학과 정보통신 분야에서 선진 기술을 습득하려는 북한 학생들을 위해 혜택을 주고 있다.
또한 뉴욕 한인 청소년 갱 단원의 갱생 프로그램도 지원하고 있고 아시안 박물관에 1천7백만달러의 거금을 희사, 아시아와 미 주류사회의 문화를 접목시키는데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동 신문은 전했다.
특히 이 회장은 잘 나가는 첨단산업분야의 기업가,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탈리스트, 교육 문화 자선사업가, 스탠포드 대학 아시아 태평양 연구소 교수, 아시아 태평양 정보통신위원회 위원장등 그의 이름 앞에 붙여진 다양한 수식어보다는 지역 사회를 위해 한국인이 이런 발자취를 남겼다는 그 의미를 더 두고 싶어한 것으로 주위에서는 말하고 있다.
1928년생인 이종문 회장은 한국 종근당 이종근 회장의 실제로 지난 56년 유학 길에 오르면서 미국에 첫 발을 내딛었다. 서울국립도서관 사서관과 연세대 교수로 교편 경력을 가졌던 이 회장은 벤터필드 대학에서 정부 장학금으로 공부를 마친 뒤 골프채 수출로 1백20만달러의 수익을 남긴 능력 있는 사업가로 변신한다.
그러나 82년 다이아몬드라는 컴퓨터 회사를 설립했으나 결국 제품 개발의 실패로 가산은 탕진됐고 가정마저 풍지박산이 나고 말았던 그는 ‘세 번이나 권총을 머리에 대고 자살을 생각했었지만 용기가 없어 그만두었다’는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이종문 회장은 89년 개발된 그래픽카드가 히트를 치면서 서서히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기 시작했고 90년부터는 매상이 눈덩이처럼 불어났으며 94년에는 잉크지가 선정한 초고속성장 미국 5백대 기업중 18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는등 그의 나이 66세에 거금을 거머지는 기업가로 성공했었다.
<홍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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