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에 출전한 미국 대표팀 스탭진에는 한국팀의 전력파악을 주임무로 하는 ‘스파이’가 한명 끼어 있다. 미국팀의 보조코치인 데이브 사라찬이 문제의 인물이다.
사라찬은 지난해 11월부터 한국팀이 치른 평가전을 단 한 경기도 빼놓지 않고 지켜보며 2002년 한일월드컵 조별리그의 두 번째 상대인 한국선수들의 장단점과 기량을 일일이 체크했다.
지난 9일밤 대구에서 벌어진 한국과의 조별리그 경기를 앞두고 사라찬은 미국팀의 총사령탑인 브루스 어리나 감독에게 “한국의 응원단인 ‘붉은 악마’들이 내뿜는 관중석의 외풍을 최소화하고, 이를 한국선수들을 압박하는 역풍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초반강공으로 선취득점을 시도해야 한다”고 진언했다.
그는 대구지역의 경기당일 예상 일기에서부터 16강 진출이라는 한국민의 여망을 양어깨에 걸머진 거스 히딩크 감독과 선수들의 심리적 중압감에 이르기까지 조목조목 짚어가며 이리나 감독에게 정보브리핑을 했다고 한다.
LA타임스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사라찬은 미국 대표팀의 빼어난 정보요원이었다.
물론 사라찬과 같은 ‘스파이’는 미국팀에만 있는 게 아니다. 한국을 비롯한 월드컵 출전국들은 너나없이 상대의 전력과 전술을 탐지하고 분석하는 스탭을 두고 있다.
월드컵 대회는 32개 출전국의 국민들이 선수들의 뒤에 서서 함께 싸우는 국가간의 ‘축구전쟁’이다. 문헌에 따르면 축구는 원래 로마의 군인들이 즐기던 공놀이였다. 로마인들은 그리스인들 사이에 유행하던 에피스키로스라는 공놀이를 군사경기로 채택해 널리 보급했다.
에피스키로스에서 하르파스툼으로 이름이 바뀐 이 놀이는 영국을 침공한 로마군들에 의해 색슨족에게 전파해졌고, 영국인들에 의해 오늘날과 같은 경기형태로 체계화됐다. 축구 자체가 태생적으로 전쟁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셈이다.
예나 이제나 전쟁에 이기려면 우선 상대부터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적을 알고 스스로를 알면 백번 싸워 백번 이긴다”는게 병서의 고전인 ‘손자병법’의 핵심적인 가르침이다, 상대방의 동태를 손금보듯 훤하게 꿰고 있다면 백전백승을 거두지는 못한다 해도 최소한 뒤통수를 맞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정보력은 개인이나 기업은 물론 국가의 생존능력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중 하나다. 2차 대전 발발후 미국은 일본 해군의 움직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막대한 희생을 치러야 했다. 1941년 12월7일 미 태평양사령부가 자리잡은 하와이의 진주만은 일본해군 함재기의 기습공격으로 삽시간에 쑥밭이 되어 버렸고, 태평양함대의 주력선단은 거의 대부분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당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이날은 오명의 날로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며 진주만의 치욕을 잊지 말자고 호소했으나 그로부터 70년이 흐른 지금, 미국은 정보시스템의 허점으로 또다시 홍역을 앓고 있다. 관료화한 정보기관들 사이의 알력으로 9·11테러를 사전에 방지하지 못했다는 증거가 나온 것. 테러관련 사전정보를 청취하고도 이렇다할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부시 대통령까지 궁지로 몰리고 있는 판이다. 정보관리의 부재가 낳은 후유증이다.
이번 월드컵에 대비해 한국팀은 상대팀들의 장단점을 철저히 파악한 듯이 보인다. 과거의 주먹구구식 경기운영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기량과 체력 역시 예전과는 비교할수 없을만큼 향상된 것 같다. 이대로만 간다면 4년후 또 한번 ‘월드컵 신바람’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적어도 이제까지 수집한 개인 정보에 따르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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