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이 지쳐있었다.
나는 딸 아이 기꾸가 일요일 저녁에 도착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어느 일요일인지 조차도 확실치 않았다. 평상시 같으면 비행기 스케줄이 사무실로 팩스가 들어오고, 또 email로도 들어오고도 남았을 테인데 아무런 소식이 없었던 것이다. 토요일 밤늦어서야 연락이 왔다.
"엄마 나 내일 도착 하는거 알아요?" 하고 말이다. "비행기 번호는?" 하고 묻기도 전에 엄마 이번 예약은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겠어요. 저녁 8시 반쯤이라는 것만을 알아요. Southwest 비행기이고요.
"괜찮다고 했다. 비행기가 피닉스 아리조나에서 매시간 운행되는 것이 아니니까 알아서 마중 가겠다고 했다. 그러고도 그리 대답하고 있는 내가 이상스러웠다. 모든 것이 분명해야 하는 내가, 확실치 않은 시간을 가지고 비행기 번호도 모르면서 나가 기다리겠다고 한 내가 이상스러웠다.
비행기장 그라지에 차를 파킹하니 저녁 8시 15분이었다. 보통 걸음으로 대합실을 향하여 도착 스케줄을 조심스러이 읽어보았다. 8:30, 8:45... 좀 더 아래를 보니 9시 45분에 도착한다고 씌여있지 않은가. 잡지까지 사 읽다가 의자에서 잠까지 자며 기꾸를 기다렸다.
나는 여지껏 기꾸가 온다면 정확한 시간에 도착했던 것이다. 길어야 10분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 비행기는 밤 10시나 되어서야 도착했고, 기꾸의 여행가방은 10시 50분이 되어서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오니 밤11시 반이 넘어서고 있었다.
기꾸와 나는 만나면 서로 누구의 키가 더 큰가를 재빨리 살핀다. 얼마만 있으면 다시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눈재음이기 때문이다. 아직 엄마가 크네? 했다. 기꾸는 아니라 했다. 자기가 더 크단다. 말을 할 때 내가 너를 아직 내려보는 기분이라 했다. 현명한 기꾸는 고집스런 엄마의 말을 가만히 미소와 함께 받아 주었다.
이토록 딸아이를 기다리며 마중한 적이 없었다. 기꾸는 나이가 어림에도 불구하고 현명한 대답을 가지고 있는 아이다. 언젠가는 내가 사무실에 있는 한 사람이 보기 싫어 다른 회사로 옮길까 한다니까 기꾸는 엄마, 어딜 가도 그런 사람은 있어요 했던 것이다.
나는 기꾸의 바쁜 생활을 듣고 싶었다. 듣고는 지쳐있던 나를 위로하고 싶었다.
학교 생활에 대해 듣고 싶었고 오보에를 얼마나 맹연습하고 있는지도 듣고 싶었다.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으니까 밥은 잘 지어먹는지, 점심은 집에서 만들어 간다고 했는데 아직도 그러한지, 집안은 엄마집 보다도 더 깨끗하게 하고 살고 있는지, 빨래는 제때 제때하고 지내는지, 차는 문제없이 잘 움직여 주는지 모든 것을 기꾸의 목소리로 듣고 싶었다.
어떻게 그 많은 것을 하고도 잘 지내는 마냥 듣고 싶었다. 그러나 기꾸는 힘들다고 했다. 또 피닉스를 떠나는 날 아디숀을 했는데 합격이 되었는지 아닌지 모른다고 했다. 언제 알게되냐니까 봄 방학이 끝나야 알게된다고 했다. 얼마나 초조하겠니? 하니, 매우 초조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기다림과 초조함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드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 나는 이러한 딸의 모습이 보고싶어 이번의 만남을 더욱 기다렸던 것이다. 나는 이러한 딸의 태도에서 위로를 받고 싶었던 것이다. 간혹 가다 던져주는 딸의 몇 마디의 말에서 위로와 지혜를 얻기를 갈구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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