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제법 늦은 저녁시간에 친구를 기다리느라 한 한국식당 바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때 역시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던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미국여인이 “지금 시간이 몇시나 되었습니까?”하고 기가 막히게 유창한 한국말로 물어보는 것이었다. 너무 유창한 한국말에 놀라서 시간을 말해주기 전에 “어떻게 그토록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십니까?” 물어볼 수 밖에 없었다.
이러다 말동무가 되어 합석을 하고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처음에는 선교사의 가족으로 한국에 오래 살다 온 사람이거나 아니면 평화봉사단으로 갔다 온 사람이겠지 짐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여인은 한번도 한국엘 다녀온 적이 없고 더하여 학교나 혹은 어떤 교육기관에서도 정식으로 한국어를 배운 적이 없이 독학으로 공부했다는 것이었다. 서양사람에게는 한국어처럼 배우기 어려운 언어가 없을 터인데 독학으로 이 정도 수준까지 한국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었다.
이 여인은 보스턴대학에서 상업미술을 전공했고 최근 뉴욕에 직장을 얻어 이사한지 몇개월 된다고 했다. 이 여인은 외모로 보기에는 그냥 흔한 미국여성이지만 사실 자기는 아메리칸 인디언의 후손이며 인디언의 피를 타고 난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선조의 전통과 문화에 크게 관심을 갖게 되었고 선조의 원래 선조는 동양인이며 자기는 한국인이나 일본인이 자기의 오리지널 선조라고 믿는다는 것이었다. 그런 연유로 한국어 뿐 아니라 일본어까지 공부하게 된 것이라는데 한국어를 공부하다 보니 여러가지 한국에 관한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또 한국식당을 즐겨 찾는다는 것이었다.
10년 가까이 독학으로 공부했다는 이 여인의 한국어와 일본어 실력은 놀라운 수준이었으며 비단 언어 뿐 아니라 한국 문화 일반에 관해서 꽤 깊은 상식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아메리칸 인디언의 풍습이나 문화의 많은 곳에서 한국과 닮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때 식당의 스피커에서 한국에서 히트를 하고 있던 ‘한 오백년’이란 노래가 흘러나왔다. 대화를 갑자기 멈춘 이 여인의 표정이 굳어지는가 싶더니 내 손을 왈칵 잡으면서 “바로 이겁니다. 이것이 바로 아메리칸 인디언의 멜로디란 말입니다.
“나는 일찍부터 한국의 전통음악이 아메리칸 인디언의 멜로디와 닮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 노래처럼 닮은 멜로디는 처음 들어봅니다”라고 하며 노래를 배우고 싶으니 가사를 적어달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그 노래를 알고는 있었지만 가사는 모르고 있었다. 식당에 부탁해서 그 노래를 거의 열번 정도 되풀이해 듣고 난 다음에야 겨우 가사를 받아 적을 수 있었다. 놀라운 일은 내가 가사를 겨우 다 적어놓았을 때에 이 여인은 이미 그 노래를 다 외우고 같이 흥얼거리고 있었고 눈물이라도 고일듯 하던 이 여인의 환희에 차있던 모습은 잊을 수 없다.
‘한 오백년’의 멜로디는 우리의 전통적 한이 담긴 음률로서 옛부터 우리 어머니 할머니들이 즐겨 흥얼거리던 전형적인 멜로디이다. 귀 기울여 들어보면 이런 아름다운 우리의 소리가 있었구나 싶다. 그런데 이 멜로디가 아메리칸 인디언의 멜로디란다. 생각해 보니 서부영화에서 인디언들이 무슨 축제같은 행사를 할 때 이들이 부르는 소리는 어쩌면 우리 소리와 닮은 곳이 많다고 느껴왔다.
나는 이때까지 우리의 전통적인 멜로디를 그냥 듣고만 왔지 조상 대대로 이어온 우리 고유의 음이 이토록 아름답다고 생각해 본적이 별로 없다. 그러다 생각지도 않은 아메리칸 인디언 여인을 만나 우리의 토속 음률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후로 나는 새삼 이처럼 아름다운 우리 전통음악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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